[파올로 소렌티노] '그레이트 뷰티' 예술이란 속임수가 투영하는 삶의 예술
[파올로 소렌티노] '그레이트 뷰티' 예술이란 속임수가 투영하는 삶의 예술
  • 이현동
  • 승인 2021.10.06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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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늙음이 아무것도 화답하지 못할 때"

'파올로 소렌티노'(Paolo Sorrentino)의 등장은 잠시 주춤했던 이탈리아 영화사를 다시금 요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사조를 이끌었던 인물 중의 한 명인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의 영향을 받은 그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1960)에 경도된 기억을 복권하여 <그레이트 뷰티>(2013)와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참고로 펠리니는 <달콤한 인생>을 촬영하기 전에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 경험을 통해 당시 팽배했던 유미주의적 세계관 속에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권태와 불안, 소외와 같은 감정을 체험하면서 영화적 동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레이트 뷰티>와 <달콤한 인생>에서 주요 배경이 되었던 '로마'라는 상징적인 장소는 상류층의 전유물이 된 현대인의 소외로써 어떻게 영화라는 매체가 삶의 의미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통상적인 방식이 아닌 불규칙한 이미지, 분열된 기호, 내러티브의 붕괴, 해체주의적 방식으로 영화란 매체의 해방, 혹은 파괴를 기술하는 기예적인 방식의 특징을 선보인다. 이전의 네오리얼리즘 전기 영화들이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음영을 주로 탐구했다면 후기에는 인간의 욕망을 탐미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던 주제 의식을 소렌티노는 한층 더 발전시키고 계승한 감독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가령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초기 작품들 <강박 관념>(1942), <흔들리는 대지>(1947)와 그의 마지막 작품인 <순수한 사람들>(1976)이 강조하는 메시지와 스타일의 효과는 전연 다른 차원의 것들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이 글은 소렌티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그레이트 뷰티>(2013)에서 그의 영화의 주요한 특징으로 점철되는 수사법과 불가해적인 이미지들이 하나의 성질로 재현되는 것을 주목하면서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 영화사 진진

스타일리스트 소렌티노, 감정이란 속임수 : 영화

소렌티노는 스타일이 과도하다는 평을 듣고는 "혁신은 내용보다 형식에 찾아온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인터뷰에 나는 몇몇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 Angelopoulos)의 <영원과 하루>(1998)라던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거울>(1975)이라든지,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의 <히든>(2005), 구로사와 기요시(Kurosawa Kiyoshi)의 <절규>(2006) 등, 그 외에도 서사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억압을 받지 않는 스타일리스트들의 작품들.

그중에 필자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영화는 단연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의 영화들이었다. 최근에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을 감상하면서 체감했던 형용할 수 없는 영화적 경이로움과 한편으로는 기괴한, 그 형체를 식별할 수 없는 무균질한 이미지의 파편들은 영화의 정의에 관한 물음과도 직결된 어떤 알 수 없는 '섬광'과도 같은 것이었다. 필자는 그 답을 초기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가 <미치광이 피에로>(1965)에서 사뮤엘 풀러(Samuel Fuller)을 통해 언급했던 영화의 최종적 정의가 '감정'이었던 것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전쟁터요. 사랑, 증오, 액션, 폭력, 죽음, 한마디로 감정들을 담고 있으니까"

 

ⓒ 영화사 진진

감정은 보편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액체성과도 구별된다. 오히려 감정은 가짜이면서 진짜이고, 진짜이면서 가짜인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이다. 라캉은 인간의 '감정'을 모두 속임수라 말했다. 우리의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만족들은 그 기원이 명확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영화란 광의적이며 무의식과 의식의 바깥에 있다. 그것은 형식화할 수는 있지만, 형상화할 수는 없는 속성이다. <그레이트 뷰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젭 감바르델라(토니 세르빌로)의 상념에서 돌연 등장하는 대사는 무언의 깨달음으로 우리에게 점멸한다. "죽음 이전에 삶이 먼저 있었다. 어쩌고저쩌고. 밑에 숨겨진 채 온갖 잡담과 소음 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 저 너머엔 저 너머의 것이 있다. 난 저 너머에 있는 건 다루지 않으련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시작된다. 결국 다 속임수다. 그래 다 속임수다."

변모하지 않은 첫사랑의 생생한 육체와 젭의 퇴화된 신체의 형상을 대비하며 읊조리는 이 대사는 단지 젊음이라는 아름다움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만이 <그레이트 뷰티>의 주제가 아님을 명시하면서 저 너머라는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이란 '형식'과 접촉한다. 아름다움 너머 존재하는 '어쩌고저쩌고'는 프레임을 벗어난 감정의 외주화다. 끝끝내 이 영화가 추궁해왔던 형상화할 수 없는 의미의 속임수들. 나는 이걸 '감정'으로 관찰했다. 결과적으로 <그레이트 뷰티>의 담론은 정체되어 있지 않다. 영화는 시작되고 또 시작되는 이미지의 부름과 연관되어 있다. 사회, 문화, 정치, 예술의 장르가 혼재된 영화인 동시에 내러티브와 이미지는 정돈되어 있지 않지만, 그 외피에는 '로마'라는 도시의 역사에 축조된 젊음과 늙음이 주제를 담지하는 어떤 실체로써 묶여있다. 그저 젊음을 긍정적으로 관조하는 측면이 아닌 고양된 어느 '감정'의 상태로 말이다.

 

이미지와 음악의 병렬 : 예술

로마를 지시하는 유구한 문명을 자랑하는 건축 문화재의 풍경들과 스탠더드 한 클래식 음악이 프레임을 유려하게 장악한 이후 인간의 욕망으로 가득 찬 클럽의 인파들은 각자의 무도로 무용을 뽐내고 그 인파들을 관통하는 전자 음악들과의 반복적인 병렬은 지난 세기가 함구하고 있었던 데카당스의 반복적 추종에서 현존하는 '예술'의 의미를 시사한다. 단적인 예로 <그레이트 뷰티>에서 과거와 현대의 배경을 주도하는 클래식과 현대음악의 음조, 그것들이 디제틱 사운드인지, 비디제틱 사운드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모호함 이란 건 젊음과 늙음이라는 이미지와의 중첩과는 방향을 달리한다. 이는 과거의 아름다움을 상쇄하고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전파하거나 재정의하려는 시도도 아니고, 오히려 소렌티노는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어떤 '에너지'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영화사 진진

<그레이트 뷰티>에 종종 등장하는 '퍼포먼스'적 행위는 이러한 충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오브제들이다. 대표적으로 유적지인 포로 로마노에서의 나체의 여자가 힘껏 달려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퍼포먼스와 어린 소녀가 형형색색의 물감을 큰 도화지에 뿌려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을 채색한다든지 하는 묘사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에 예술이란 장르에 손을 댈 수 없었던 '여자'(현대)가 유적지(과거)의 벽과 충돌하면서 대중들의 박수를 받거나 '여자' 이자 소녀가 과거에 도무지 예술이라 칭할 수 없는 원근법을 완전히 무시한 그림을 진중하게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과거를 보는 것도 아니고, 현재를 보는 것도 아니다. 어디인가 위치한 예술을 보는 것이다.

끊임없이 병렬되는 이 영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젭이 첫사랑의 육체를 내면에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비록 노쇠했지만, 육체를 탐닉하지 않고, 젊음과 늙음의 탐욕의 실체에도 그 중심을 잃지 않았다. 그것의 정체는 속임수다.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 Portoles)의 유작인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에서 중년의 남자 마티유(페르난도 레이)가 하녀로 고용된 콘치타(캐롤 부케, 앙헬라 몰리나)를 향한 끊임 없는 성적 욕망이 끝끝내 그를 구원해 줄 수는 없었던 것처럼 욕망은 그 자체로 모호하며 결여된 상태로 남는다는 점을 젭은 극복한 셈이다.

필자는 <그레이트 뷰티>에서 상류층이 모여 논구하는 귀족의 문화들, 예를 들어 피란델로 스타일, 에티오피아 재즈에 음악적 취향을 논한다든지, 로마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가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라든지, 소명 의식, 자본주의, 우월의식 비판 등의 논의들은 아무런 흥미도 야기되지 않았다. 이러한 논의들은 장 르누아르(Jean Renoir)의 <게임의 규칙>(1939)이라는 훌륭한 각주가 있지 않은가. 오히려 한 노부부의 평범한 일상을 잠잠히 응시했던 젭의 시선이 잊혀지지 않는다. 소렌티노가 어린 시절에 가스 누출 사고로 부모님을 잃어버린 사건으로 인한 일상의 손실은 마치 젭이 소설을 쓰지 않던 그 기간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젭의 고민을 들어주던 난쟁이와의 일상적인 대화와 소소한 음식들이 숨겨진 의미로서의 진정한 <그레이트 뷰티>는 아닐까.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영화사 진진

그레이트 뷰티
The Great Beauty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
Paolo Sorrentino

 

출연
토니 세르빌로
Toni Servillo
사브리나 페릴리Sabrina Ferilli
세레나 그랜디Serena Grandi
이사벨라 페라리Isabella Ferrari
카를로 베르도네Carlo Verdone
조르지오 파소티Giorgio Pasotti
루카 마리넬리Luca Marinelli
마시모 팝폴리지오Massimo Popolizio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제작연도 2013
상영시간 141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14.06.12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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