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주근깨의 공주' 야수와 미녀라는 이름
'용과 주근깨의 공주' 야수와 미녀라는 이름
  • 이현동
  • 승인 2021.10.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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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당신에게 만약 세상을 바꿀 게임이 있다면"

애니메이션의 종류를 구분하자면 고전적인 애니메이션(리얼리즘)이 있고, 네오리얼리즘을 위시한 애니메이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앙드레 바쟁의 인용으로 '재현', '모방'(리얼리즘)의 대상과 '관찰' '주시'의 대상(네오리얼리즘)의 구분을 가리킨다.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을 처음 접하던 시기를 떠올려볼 때, 이러한 구분이 의미가 있는지를 되묻게 되었다. 왜냐하면 애니메이션이라는 영상 매체가 가진 속성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은 실제를 재현하는 촬영 기술에 제한을 받지 않으며 전적으로 모방이란 경향성을 가진 매체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이 시간과 공간이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타임 리프(time leaf)물로 그간 유래가 전무했던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평가하면서 동시에 바쟁이 말한 간극을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가 이 구분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뚜렷하게 관망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왜일까? 살펴보면 호소다 마모루는 특이한 이력들이 있는데, 애초에 그가 애니메이션을 창작하고자 하는 불타는 욕구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레오 카락스의 프랑스 영화에 매료되어 영화적 관심이 높았던 그는 개성적인 비디오 아트를 제작하기도 했다는 지점은 그가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연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영향인지 대표적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비롯한 <썸머 워즈>(2009)와 같은 작품들에서 시간과 공간이 다른 세계와의 어떤 균열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미학적인 스타일들은 마치 초현실주의적인 효과를 일으키면서 영화에서 체험하지 못한 무차별적인 색의 섬광들이 그의 작품의 특성을 독특하게 대변한다.

 

ⓒ 와이드 릴리즈(주)
ⓒ 와이드 릴리즈(주)

호소다 마모루의 6번째 장편영화 <용과 주근깨의 공주>(2021)는 전작인 <괴물의 아이>(2015)의 흥행 수익 58.5억 엔을 넘어섰고, 칸 영화제 프리미어 부분에 초청되기도 하는 등 그의 필모에 있어서 기록적인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비주얼적으로 화려한 완성도를 선보이며 평단에서 이를 주요한 장점으로 평가하지만, 그 장점에 비해 서사적인 측면이 약화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필자가 이 작품을 고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단연 기능적인 연출이 작품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 쪽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그 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 어떤 면에서 서사적으로 불충분하다는 평가를 조금은 이해하면서도 박한 평점에는 솔직히 동의하지 못하겠다.

아이폰3가 일본에 최초로 발매된 무렵에 완성된 <썸머 워즈>가 인터넷(게임)이라는 테크놀로지를 오브제로 활용하여 인류의 발전이 어떠한 영화적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개인적이며 특정한 공동체를 중심으로 드러냈다면 대략 10년후 개봉된 <용과 주근깨의 소녀>에서 등장하는 메타버스라는 세계, 이제는 그보다 간소화된 장치로 전 세계의 50억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접촉하며 감각적이며 시각적인 체감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지점에서 이번 영화는 진화하고 가능성의 역동적인 영역들을 확장하면서 그것을 연출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용과 주근깨의 공주>는 어린 시절 제법 음악의 재능이 있는 아이였으나 그녀의 엄마가 한 아이를 개울가에서 구조하려던 중에 불의의 사고로 익사하게 되고, 그 이후 트라우마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잃게 된 불우한 소녀 나이토 스즈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그 트라우마를 역설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으니 그것은 가상세계인 'U'다. 가상세계는 또 다른 '나'를 생성하는 방출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스즈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특히 그녀의 외모에서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주근깨가 U에서는 그녀를 상징하는 특성으로 치부되면서 프랑스어로 아름다움이라는 뜻을 가진 Bell(e)이라는 상징적인 존재로 서사를 축조하는 밑그림이 된다.

 

ⓒ 와이드 릴리즈(주)

실상은 초라한 소녀가 성장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가상세계를 공격적으로 활공하는 '용'의 역할을 맡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의문의 존재인 '용'은 시종일관 영화에서 목적을 추측하기 어려운 혼재된 상태에 머물게 하는데, 이는 의도적인 배치로 현실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어떻게 강한 존재가 되는지에 대한 잠재적인 이미지로 머물게 한다. 그러나 용은 이러한 허구의 세계에서도 위협을 받는 것을 그치지 않는데, 그의 강함은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연대를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용은 스스로 감금하고, 가상세계로부터 어떠한 자유도 얻지 못한다. 실제 세계에서 10대 초반의 소년인 '용'은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피해자로 묘사되는 것으로 Bell과 용의 메타포는 어쩌면 전형적일 수도 있지만, 가장 안전하고 감흥을 이끌 수 있는 경로로 안착한다.

<용과 주근깨의 공주>는 가부장제의 뒷면에서 남자아이와 그 아이의 동생이 노골적으로 폭력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회의 어두움을 '이름 없음'으로 대변하면서, 인터넷에서 횡행하는 용의 존재를 투사하게 한다. 그들의 무의식에는 폭력이 축적되고, 내면화된 마음의 지면에는 반대로 폭력을 자행하게 하는 목적성이 깃들게 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영화는 '어떻게 연약한 소녀가 이름도 모르는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지'를 다른 차원의 세계와 실제 세계가 연대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감동을 선사한다.

다만, <용과 주근깨의 공주>는 제목을 의식한 것인지(?) 그 주변의 인물은 다소 산만하게 배치되어 있고, 소모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아버지와의 갈등은 쉽사리 공감할 수 없을뿐더러 그 갈등이 봉합되는 과정 또한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감상에는 크게 동요될 정도는 아니다. 비교가 적당한 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가부장제를 극적으로 묘사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2008)에서 사사키 류헤이(카가와 테루유키)가 차에 치여 죽음을 맞이한 것이 확실한 그의 잔상이 아침에 부활하여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의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체감되는 황당함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관습적으로 추종되는 서사가 다른 차원으로 전복되는 모호한 순간이 아닐까.

 

ⓒ 와이드 릴리즈(주)
ⓒ 와이드 릴리즈(주)

<용과 주근깨의 공주>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동화 <미녀와 야수>일 것이다. 호소다 마모루는 인터뷰에서 뮤지컬 영화를 염두에 두면서 모티브로 <미녀와 야수>를 차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미녀와 야수>의 이미지에서 '야수'는 변해가는 존재', 미녀는 미녀 자체이기 때문에 그다지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곧이어 그는 현대에서 고전을 재해석하는 과정은 달라진 점과 달라지지 않은 점을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라면서 고전의 흥미로움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다. 여자에게 사랑을 받을 때 저주에서 풀린다는 <미녀와 야수>는 여성 서사적인 측면에서 어쩌면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 세계와 맞닿아 있다.

호소다 마모루가 기본적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서사를 주도했던 것을 상기할 때 <용과 주근깨의 공주>도 그 한 예로 분류할 수 있고, 인터뷰에서 규명하지 않았던 여성의 변화는 <미녀와 야수>에서 구현되지 않았던 '성장'과 '희망'의 메시지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특이하게도 그가 제목에서 '공주'를 뒤편에 두었던 것은 '그 제목 자체로 이 작품에 존재하는 용과 같은 약자들을 우선하여 강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라고 짐작해 본다. U에 접속할 때 '세상을 바꿉시다'라는 구호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이미 연결되어 있음을 선언하며 이 작품은 나와 우리의 세계에 접속한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용과 주근깨 공주
Belle : The Dragon and the Freckled Princess
감독
호소다 마모루
Hosoda Mamoru

 

출연(목소리)
사토 타케루Sato Takeru
나리타 료Ryo Narita
소메타니 쇼타Shota Sometani
타마시로 티나Tina Tamashiro

 

제작 스튜디오 치즈
수입 얼리버드픽쳐스
배급 와이드 릴리즈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1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 2021.09.2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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