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오징어 게임'의 출시를 환영한다
[NETFLIX] '오징어 게임'의 출시를 환영한다
  • 선민혁
  • 승인 2021.10.03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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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충분히 흥미로운 콘텐츠인 것은 확실하다"

<오징어 게임>이 좋은 작품인가 아닌가'에 대하여 한 가지로만 대답해야 한다면 좋은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명확하게 드러나는 단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목숨을 건 게임에서, 주인공 기훈(이정재)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 갇혀 총으로 무장한 관리자들의 통제하에 참가자들 간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설정 자체는 매우 긴박하나, 그 긴박함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참가자들이 진행하는 게임이 긴장감을 느끼기에는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참가자들이 게임을 잘 풀어내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건 게임을 해결하기 위해 세우는 전략으로 앞사람의 등에 숨기, 달고나에 침 바르기, 언변으로 속이기 등 1차원적인 것만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소한 문제이다. 생존을 위한 게임이 단순하다는 것은 오히려 장점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크게 집중할 필요가 없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오징어 게임>에서 등장하는 과거의 어린아이들이 즐기던 게임들은 일관된 분위기를 형성하며 영화의 개성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소하지 않은 문제는 인물에 이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극 중의 인물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훈은 자신 노모의 생일을 쉽게 기억해내지 못한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생각해내는데, 이는 ATM기에서 모친의 카드를 이용해 돈을 빼내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몰래 뺀 돈을 기훈은 경마장에서 도박을 하는 데에 쓴다. 그날은 딸의 생일이다. 기훈이 딸에게 줄 수 있는 생일 선물은 인형뽑기에서 뽑은 장난감과 떡볶이뿐이다. 기훈이 악인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매우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딸에게 아주 잘해주고 심지어 아픈 자신의 모친을 위해 돈까지 빌려주려 하는 전처의 남편을 때려눕힌다. 기훈의 딸이 힘들어하니 그녀를 보러 그만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기훈이 '오징어 게임'에서 처음 만난 노인에게는 아주 친절하게 대한다. 노인과 함께하면 불리해져 게임에서 패배하여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예상되더라도, 노인을 버리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는 다른 이가 죽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줄다리기처럼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게임도 있기에, 게임에서 살아남은 기훈은 다른 이들을 직접적, 간접적으로 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기훈은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른 이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게임 참가 전에도 알고 지내던 동네 친구인 상우를 비난한다. 그리고 게임 참가 이전에 아무 사이도 아니던, 심지어 자신의 돈을 훔쳤던 새벽(정호연)의 안전을 지켜주려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것은 주인공 기훈뿐만이 아니다. 구슬치기 게임이 진행될 때,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지영(이유미)은 새벽과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은 삶에 미련이 없다며 새벽에게 목숨을 양보한다. 그러나 살아남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 지영은 꽤 오래 살아남은 것이다. 지영이 게임을 대충했는데도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달고나 게임에서는 운 좋게 쉬운 모양을 뽑아 살아남았다고 치더라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의 경우 기회가 될 때마다 달리고 중요한 순간에 멈추는 집중력을 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지영은 줄다리기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한다. 그랬던 지영이 '오징어 게임'에서 처음 만났고 별로 이야기도 많이 나눠보지 않은 새벽에게 목숨을 양보한다. 누구보다 생존에 적극적이고, 강한 이의 힘을 빌리는 전략도 계획하여 실행했던 미녀(김주령) 역시 그동안 보여준 캐릭터와는 달리 허무한 죽음을 선택한다.

 <오징어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어렵고 때문에 서사는 그다지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은 몇 가지 주제의식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들은 갑자기 등장하는 목사 캐릭터와 지영의 사연처럼 너무나 노골적이고 깊이가 얕아 보인다. 또한 어색한 대사 등 이외에도 단점들은 많이 있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이 좋은 작품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기가 훨씬 쉽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그러나 누군가 내게 <오징어 게임>을 어떻게 보았냐고 물어본다면 재미있게 보았다고 대답할 것이며 이 작품을 꽤나 좋아한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주위의 이들에게 <오징어 게임>을 보았느냐고 자주 묻는 편이다. <오징어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이들과 나누고 싶은 대화는 이 작품의 구성이나 주제의식, 실험성이나 연출에 관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재미있었던 장면들을 공유하고, 그런 장면들에 나왔던 대사들을 따라 해보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이런 행위들을 하기에 적합하다.

깊은 몰입을 하지 않고도 즐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장면들에 의미를 무겁게 부여하지도 않고 어떤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게 만들면서도, 소재는 자극적이다. 절묘한 메시지나 탁월한 내러티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관 자체가 흥미롭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 게임을 진행하고, 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명확한 욕망을 동기로 움직인다. 이것이 진행되는 공간은 게임의 성질과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이질적인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 시리즈로 진행되는 판타지 영화를 볼 때와 같은 즐거움을 <오징어 게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영화에서 즐거움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은 '배경이 되는 세계가 얼마나 흥미로운 가'인 경우가 많다. 연출, 편집 등 형식적인 요소와 주제의식 마저 훌륭하다면 더할 나위 없으나, 세계관이 흥미롭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시놉시스를 보고 기대했던 즐거움은 크레이그 조벨이 연출한 <헌트>(2020)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으나, 실제로 느꼈던 것은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의 그것과 유사하다.

<오징어 게임>은 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나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문제적인 작품은 아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고, 패러디 등의 재생산이 시청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흥미로운 콘텐츠임은 분명하며 이것이 한 순간의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의 등장을 환영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Squid Game
연출
황동혁

 

출연
이정재
박혜수
정호연
위하준
오영수
김주령
허성태
이유미
아누팜 트리파티

 

제작 싸이런픽처스
제공 NETFLIX
러닝 타임 476분(9부작)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1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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