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그레이] '이민자' 장소를 따라 움직이는 정조(情調)
[제임스 그레이] '이민자' 장소를 따라 움직이는 정조(情調)
  • 배명현
  • 승인 2021.09.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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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생존하기, 그곳으로 가기, 여기에서 버티기"

'제임스 그레이'(James Gray)가 주목하는 것은 '정동'(情動)이지 사실의 재현이 아니다. (...) 그의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 그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 제임스 그레이는 영화로 보여주지만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관객의 심장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을 어디론가 이주시킨다. 그리고 이주한 장소에 도착한 인물들의 삶을 카메라로 담는다.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 그리고 서사는 의외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향하는 장소 혹은 추구하는 바이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욕망을 이루어내려 하는가, 그리고 그 욕망을 성취했는가 혹은 실패하였는가 이다. 하지만 가장 중점적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지점까지 도달하는 과정에 있는 인물의 내면이다.

[제임스 그레이] <애드 아스트라> 그곳에 이르도록..., 코아르CoAR, 2021.07.08

 

 

영화 <이민자> ⓒ 씨네룩스

1. 미끄러지는 인물들

<이민자>(2013)는 자유의 여신상을 비추며 시작한다. 카메라는 줌 아웃(zoom out)을 하며 멀어진다. 곧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는 '브루노'(호아킨 피닉스)가 보인다. 이 쇼트에서 <이민자>는 이미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브루노는 바라보고 자유의 여신상은 뒷모습만을 허락한다. 두 시선은 마주치지 않고 만나지도 않는다. 자유의 여신상은 늘 그곳에 가만히 서 있고 브루노는 강을 건너 다가갈 수 없다. 자유는 이 땅(미국)에 있지만, 자유의 여신상에게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 아이러니는 영화의 전체를 압축한다. 이 작품 역시 제임스 그레이가 늘 그러했듯, 여기에 있는 인물들을 거기로 이동시키는 영화이다. 서사가 인물의 욕망을 거역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이라 정의했을 때, 이 인물들은 이곳을 욕망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운명적 지시에 가까운 이 움직임은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세계관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다.

세 명의 중심인물. 브루노, 에바(마리옹 코티야르), 올란도(제레미 레너). 이들은 모두 이민자로 외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온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곳에 머물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만다. 에바를 시작으로 시작되는 서사와 영화적 불안은 브루노에게 이어지고, 이 인물 사이의 긴장에 올란도가 끼어든다. 욕망의 연결이 1:1이 아닌 1:1:1일 경우에는 파멸로 이어진다.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본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의 욕망이 어떤 파멸로 이어졌는지. 유일하게 자신의 목적을 성취한 인물은 에바뿐이다. 하지만 그런 에바조차 어딘가 이상한 상실을 피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이제부터 그 원인을 우리는 찾아야 한다.

 

2. '제임스 그레이'가 인물을 이동시키는 방법

제임스 그레이는 <투 러버스>(2008) 이후 <이민자>로 다시 사랑을 영화로 만들었다. 물론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사랑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분명 제임스 그레이는 사랑의 정동이 가진 힘을 이용해 인물을 움직이게 하고 관객에게 이 움직임을 투사한다.

 

영화 <투 러버스> ⓒ (주)수키픽쳐스

잠시 <투 러버스>를 이야기해보자. 레너드(호아킨 피닉스)는 두 사람 사이에서 끼어있다. 그는 심정적, 정신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산드라(비네사 쇼)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미쉘(기네스 펠트로)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는 이성으로는 산드라를 잡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미쉘의 매력에 자꾸만 끌린다. 영화는 레너드에게 집이라는 공간을 부여한 뒤, 이 두 사람 사이를 움직이게 만든다. 여기서 레너드를 움직이게 하는 건 '시선'이다. 산드라는 레너드를 바라보고 레어드는 미쉘을 바라본다. 그리고 미쉘은 이들이 아닌 다른 인물을 바라본다. 시선이 일직선으로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a-b-c). 이는 곧 돌아오지 못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욕망은 다시 돌아와야 결과로 이어진다. 대상에 닿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하는 욕망은 의미를 잃어버린 채 허무하게 미끄러져 버린다.

제임스 그레이는 <투 러버스> 다음으로 <이민자>를 만들었다. <이민자>는 전작보다 더 정교해지고 발전된 시선의 교차를 만들어냈다. 영화 초반 에바를 위기에서 구한 건 브루노이다. 그의 정체가 제대로 묘사되기 전까지 돈이 매우 많고 선한 인물로 그려진다. 불쌍한 이민자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그를 에바는 경계하고 칼을 숨겨 놓는다. 그녀의 불안은 계속 이어지지만 그녀는 브루노를 포기할 수 없다. 부르노의 행동에 따라 그녀의 여동생의 입국 거부 결과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대에 오르고 자유의 여신상 코스프레를 하며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결국 브루노의 직업이 밝혀지고 에바도 매매춘에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영화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에바의 욕망은 동생과 함께 사는 것이다. 브루노는 에바의 아름다움을 갈망한다. 그는 이 아름다움을 애정적으로, 사업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올란도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이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통해 얽힌다. 에바는 생존의 필요를 위해 브루노를 선택해야 하지만 동시에 매춘을 해야 한다. 브루노는 그녀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 때문에 에바는 그를 사랑할 수 없다. 올란도는 어떠한가. 그는 낭만적이기는 하나 현실성이 없다. 도박을 해서 얻은 돈으로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모두 현실의 구체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공허하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할 때 문제는 일어난다. 에바는 살기 위해 브루노의 곁에 있어야 하고 그 고통을 그대로 감당한다. 올란도는 에바와 함께 떠나려 하지만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이 죽음은 다시 브루노를 위협한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차례차례 아귀가 맞는다. 그야말로 서사로써 정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정교한 서사로 제임스 그레이는 인물들을 이동시킨다. 감정과 욕망을 연료로 인물들은 이동한다. 하지만 이 움직임은 슬프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교차되는 길 끝에 만나는 목적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비극을 마주한다.

 

 

3. 다시 한번 개인으로

<이민자>의 시작을 잠시 상기해보자.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는 브루노와 뒷모습만을 비추는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직선으로 연결된 이 시선이 엔딩에 가서는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이 시선의 방향과 인물의 방향은 반대이다. 영화는 에바를 보내는 것으로 끝을 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진 않는다. 우리는 이 쇼트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브루노는 에바를 위해 배를 마련해주었고, 에바는 그 배를 탄다. 그다음 쇼트가 바뀌고, 카메라는 줌 인(zoom in) 한다. 브루노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벗어난다. 카메라는 계속 줌인 하면서 창밖을 보려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옆에 놓인 거울에 비친 브루노는 분명 카메라의 시선에서 벗어나 밖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거울의 속성 때문에 브루노와 에바가 같은 곳을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같은 곳을 향하는 게 아니고 그렇게 보인다. '이 이상한 방향성'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영화 내내 '에바'에 집중되던 인물이 영화 끝에 가자 그 뱡향을 틀어 브루노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이 움직임은 오로지 관객만이 볼 수 있다. 에바는 알 수 없다. 대신 에바는 자신이 욕망하는 바를 성취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인물이다. 그러나 아름답게 표현되진 않는다. 바람이 불어오면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만 같은 작은 배로 위태롭게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이 위태로움과 브루노의 방향은 관객에게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거울이 비추는 브루노의 뒷모습은 제임스 그레이의 다음 작품 <잃어버린 도시Z>(2016에서 다시 등장한다. <잃어버린 도시Z>에선 니나 포셋에 대한 욕망의 실현이라는 환상으로 거울을 이용했다. 마찬가지로 <이민자>서는 욕망의 방향성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었다. 제임스 그레이에게 거울은 내면을 비추는 신비로운 도구이다. 동시에 이 거울에 비치는 인물의 뒷모습은 인물의 얼굴이나 표정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울은 인물의 실패한 욕망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그리고 관객에게만 제공되는 이 은밀한 실패의 뒷모습은 '그 인간'이라는 행태로 관객에게 정동을 불러일으킨다. 제임스 그레이는 관객 속으로 들어갈 줄 아는, 그런 감독이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이민자
The Immigrant
감독
제임스 그레이
James Gray

 

출연
마리옹 꼬띠아르
Marion Cotillard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
제레미 레너Jeremy Renner
다그마라 도민칙Dagmara Dominczyk
직키 슈니Jicky Schnee
일리아 볼로크Ilia Volok
안젤라 사라피언Angela Sarafyan
안토니 코론Antoni Corone

 

수입|배급 씨네룩스
제작연도 2013
상영시간 117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5.09.03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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