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그레이] '잃어버린 도시 Z' 인물에 대한 믿음과 영화의 물질성
[제임스 그레이] '잃어버린 도시 Z' 인물에 대한 믿음과 영화의 물질성
  • 배명현
  • 승인 2021.09.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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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가"

스크린에 빛은 들어오지 않고 소리만이 관객을 맞이한다. 새 울음소리와 무언가가 날아가는 소리 풀숲 사이를 바람이 통과하는 소리가 들리고 양서류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잠시 후 검은 화면에 빛이 들어온다. 타오르는 불이 보이고 여기서 나온 빛이 정글의 원주민 형상을 역광으로 비춘다. 빛은 일정하지 않다. 심장이 박동하듯 밝게 빛나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어두워지는 순간엔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듯 위태롭다. 하지만 곧 다시 그 빛을 키운다. 그리고 이를 반복한다.

<잃어버린 도시 Z>는 영국군 소령 '퍼시 포셋'(찰리 허냄)을 보여주며 다시 시작한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그는 아내와 아이를 보며 웃음 짓는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사슴 사냥에 성공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성공했는가'이다. 그는 길이 없는 곳으로 달려간다. 병사가 그곳에는 길이 없다고 여러 번 소리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총을 잡아 들고 사슴을 맞춘다. 그는 감탄하며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부하들에게 말한다. "죽음이 삶에 풍미를 더하지" 그다음은 더욱 재미있다. 사냥 성공을 자축하며 아들을 번쩍 안아 들고 그는 말한다.

"언젠가 우리 둘이 사냥 나가자"

 

퍼시 포셋(찰리 허냄) ⓒ (주)영화사 빅
니나 포셋(시에나 밀러), 잭 포셋 ⓒ (주)영화사 빅

<잃어버린 도시 Z>는 시작부터 영화 전체를 암시한다. 영화는 오로지 퍼시 포셋과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성과 형식을 두 가지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데, 한 가지는 '운명'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둘이 함께 있는 것이 가능한가. 인물에게 운명이 주어졌다면 그 인물에겐 의지가 필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취하거나 실패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인물에게 의지가 있다면 운명을 거스르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인물의 의지와 운명의 방향이 같다면 이는 운명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므로 이는 한 가지로 수렴한다) 논리적으로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면 그것은 운명이 아니게 된다. 운명은 인물이 거스를 수 없을 때 운명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어쩌면 공존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두 개념이 영화를 가장 아래서부터 지탱해주고 있다.

영화는 탐험의 과정을 보여준다. 첫 시작은 명령으로 시작한다. 그는 영국 지리학회에서 지도의 빈 곳을 메꾸라는 명령을 받고 측량을 목표로 탐험을 시작한다. 그러나 남미에 도착한 그는 정반대의 소식을 듣는다. 브라질과 볼리비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낌새가 있으니 복귀하라는 명령이다. 그는 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 도시Z는 그에게 운명으로 찾아왔고 그는 손을 뻗어 운명을 잡아챘다. 그리고 이어지는 탐험의 과정은 우리가 알 듯 지난하다. 원주민의 습격을 받기도 하고 식량이 떨어져 고생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곳'에 도착한다.

총 세 번의 탐험 과정이 등장하고 갈 때마다 퍼시 포셋을 제외한 인물이 바뀐다. 그리고 그 과정은 모두 의미가 다르다. 첫 여행에서 그는 고대의 문명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인식의 변화를 겪는다. 야만인이라고 부르던 그들이 오히려 자신들보다 오래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는 더 이상 야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원주민'이라 부른다. 두 번째 탐사는 그가 설득으로 시작한다. 학회 사람들의 조롱에도 그는 탁월한 언변능력으로 설득한다. 그의 의지가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이끈다.

여기에서 배제된 것은 그의 아내인 '니나 포셋'(시에나 밀러)인데, 그녀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증거를 찾았음에도 동료로서 함께하기를 거절당한다. 성별 때문이다. 퍼시 포셋과 니나 포셋의 대화를 미루어 보았을 때, 포셋은 평소 니나를 동등한 관계로 대했으므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는 성별의 격차를 언급하며 동행하기를 거부한다. 물론, 이는 성차별적 발언이다. 실례로 21시기까지 들어가면서 많은 여성탐험가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말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함께 갈 수 없다' 말했지만, '제임스 머레이'(앵거스 맥페이든)는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함께 간다.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는 전제에 그녀는 사람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인종에 대한 생각은 열려있었지만 성별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시대적 한계라 말해야 할까.

 

ⓒ (주)영화사 빅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두 번째 탐사에서 퍼시 포셋은 원주민과 직접 만나 소통한다. 여기에서 그는 식인에 대한 의미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 물고기를 필요 이상으로 잡지 않는 것을 본다. 이 다음부터 이어지는 쇼트는 이 지점을 더욱 확고하게 매듭짓는다. 원주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배우가 없는 순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한다. 그는 '문명인'이라 칭했던 자신들의 편협함과 오만함을 자신의 입으로 비판하면서, 'Z'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더 굳힌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는 눈앞에 있는 Z를 놔두고 돌아간다.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나 머레이의 '빌런 짓'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를 제외한 외부의 모든 환경이 다를 Z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돌아간 집에는 아이들이 성장해있다. 이 집에서 아이들에게 그는 낯선 아버지이다. 그가 Z를 위해 희생한 모든 것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전쟁터로 향한다. 그가 향해야 할 곳은 Z지만 운명이 잠시 그를 뒤로 미루어 둔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만난 러시아 점성술사가 그에게 말한다. "그 환영을 외면하지 마세요. 당신이 찾으려는 곳은 위대한 곳이에요. 광활한 땅 보석을 걸친 사람들 그곳을 찾기 전까지 당신은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해요. 그게 당신의 운명이에요" 점성술사의 말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가 전쟁의 승패를 위해 영적 조언을 구하러 왔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대뜸 탐험가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Z를 운명이라 말하지만 동시에 그 환영을 '외면하지 마'라고 말한다. 운명은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주어진 운명에 부응할 의지를, 어쩌면 그 운명을 넘어설 의지를 요구한다.

퍼시 포셋은 다시 한번 Z로 떠난다. 아들 '잭 포셋'(톰 홀랜드)과 함께. 영화 초반에 그의 아들에게 말한 사냥이 바로 이를 의미한 것이었을까. 이 부분에서 문득, 시간을 함축하는 예술인 영화가 일종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아주 긴 시간 사이의 간격을 영화는 조밀하게 만든 뒤 붙여놓았다고, 그리고 이 운명적인 사건을 영화적 운명이라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 (주)영화사 빅

이어 두 사람은 한 원주민의 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영화는 이때 찍은 사진을 마치 실제 역사의 증거인 듯 다룬다. 검은 배경에 사진을 띄우고 (영화적) 시간을 정지시킨다. 영화의 밖에서 보자면 이 사진을 본 사람은 없다. 실제 퍼시 포셋은 아들과 아들의 친구와 함께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탐사를 보내봤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사진은 '감독의 의도'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만 공유할 수 있는 (영화적) 증거는 모종의 의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 인간이 평생을 바라왔던 목적지에 대한 물리적 증거물 말이다. 미국 영화감독 '존 카펜터'(John Carpenter)는 영화를 전신적인 것을 물질화시키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물질성이 영화 안에서 표현된 사진이 아닐까.(위에 언급한 원주민 인서트를 포함하여)

사진 쇼트와 이어지는 쇼트는 니나 포셋이 퍼시 포셋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다. 창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나래이션으로 퍼시 포셋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후의 우리의 운명은 신께 달린 거지 실패할 거란 걱정은 하지 마." 편지의 내용과는 반대로, 디졸브로 연결되는 아마존의 모습은 포셋 부자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공격적인 원주민을 만나고 둘은 도망간다. 곧 다른 원주민들이 두 사람을 구출해주지만, 이들 역시 그리 호의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원주민 추장은 말한다. "저자는 우리 동족이 아니다. 그렇다고 백인의 동족도 아니야. 영혼이 쉴 집을 찾아줘야겠군." 부자는 어두운 밤에 원주민의 지시에 따라 어디론가 움직인다. 그리고 영화는 더 이상 두 사람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나 포셋이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며 학회에 구조를 부탁하고 현관을 나서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점성술사가 이야기한 영혼의 안식을 이루려 원주민 추장은 Z은 그를 데려갔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영화를 본 우리는 그의 운명이 이끄는 동시에 그가 스스로 향한 곳에 도착했을 거라 믿는 수밖에 없다. 끝내 그와 동행하지 못했지만 늘 정글을 염원했던 나나 포셋과 함께. 거울에 비친 환상성은 관객에게 '보여지지만', 그 실체를 우리는 보지 못했기에, 우리는 믿어야 한다. 이 의심들에 하나를 더 해보자면, 영화의 첫 번째 인트로에서 보여준 어둠 속의 원주민들의 모습은 어쩌면 영화 끝에 보여준 영혼의 집을 짓는 그 원주민이 아니었을까. <잃어버린 도시 Z>의 물질성은 인간의 잡히지 않는 의지와 운명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손에 잡히지 않지만 140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통해 관객에게 만지게 해주려 했던 제임스 그레이. 이 영화는 그가 가진 인간, 혹은 개인에 대한 어떤 종류의 믿음이 아니었을까. 공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운명과 의지의 봉합을 그는 보이지 않는 관객의 상상 속에서 마무리 지었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주)영화사 빅

잃어버린 도시 Z

The Lost City of Z

감독

제임스 그레이James Gray

 

출연
찰리 허냄
Charlie Hunnam
로버트 패틴슨Robert Pattinson
시에나 밀러Sienna Miller
톰 홀랜드Tom Holland
에드워드 애슐리Edward Ashley
앵거스 맥페이든Angus MacFadyen
이언 맥디어미드Ian McDiarmid
해리 멜링Harry Melling

 

수입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배급 (주)영화사 빅
제작연도 2016
상영시간 141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7.09.21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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