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그레이] '애드 아스트라' 그곳에 이르도록...
[제임스 그레이] '애드 아스트라' 그곳에 이르도록...
  • 배명현
  • 승인 2021.09.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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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깊이, 태도의 넓이, 감정의 높이"

'제임스 그레이'(James Gray)가 주목하는 것은 '정동'(情動)이지 사실의 재현이 아니다. 그의 결단은 <애드 아스트라>(2019)를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난다. 그는 영화에 맞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과학적 이론과 고증을 어느 정도 포기했다고 DVD 코멘터리를 통해 직접 이야기했다. <애드 아스트라>가 SF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이전 작품인 <잃어버린 도시 Z>(2016)에서도 그랬고 <이민자>(2013)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투 러버스>(2008)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전으로 돌아가 <위 오운 더 나잇>(2007)에서 그레이만의 정동의 시작을 발견할 수 있다. 스크린 속 공기를 피부로 본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촉감으로 느껴지는 건조함은 관객의 심정을 잡고 늘어진다.

그의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 그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 제임스 그레이는 영화로 보여주지만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관객의 심장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을 어디론가 이주시킨다. 그리고 이주한 장소에 도착한 인물들의 삶을 카메라로 담는다.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 그리고 서사는 의외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향하는 장소 혹은 추구하는 바이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욕망을 이루어내려 하는가, 그리고 그 욕망을 성취했는가 혹은 실패하였는가 이다. 하지만 가장 중점적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지점까지 도달하는 과정에 있는 인물의 내면이다.

거칠게 나누자면 서사를 다루는 감독이 있으면, 인물을 다루는 감독이 있다. 전자의 유형은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현하는데 장점이 있다면, 후자의 유형은 내밀한 개인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형상화하는데 장점이 있다. 제임스 그레이는 내면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함으로서 서사에 집중하는 대신 인물 감정을 유기적으로―그리고 탁월하게―연결 짓는다. 재미있는 점은 '개인으로'라는 길을 향해 가는 그가 선택한 이동수단이 장르에 있다는 것이다. 보통의 감독들이 영화적 혹은 문학적 수단을 활용해 '개인으로' 향하는데 반해 제임스 그레이는 장르를 활용한다. <애드 아스트라>는 SF였고 <잃어버린 도시 Z>와 <이민자>는 역사물이었으며 <위 오운 더 나잇>은 범죄 스릴러였다. 그가 이토록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장르'는 아까도 설명했듯이 목표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형식으로 존재하고 그 안에는 인간으로 가득하다.

 

무한의 공간 속에서도 개인은 작은 빛을 품는다

그 위에 <애드 아스트라>가 있다. 시작은 우주이다.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안테나를 수리하기 위해 거대 구조물의 벽을 타고 내려간다. 곧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지구로 추락한다. 그는 낙하 하지 않았다. 그는 추락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고 목숨을 잃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적정 고도에 이르자 그는 낙하산을 편다. 하지만 지구 위에 안착하진 않는다. 매우 거칠게 지구 위로 던져진다. 그는 지구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구도 그를 마냥 반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력이라는 우주의 힘이 운명적으로 그를 지구의 표면 위로 던져놓긴 하지만, 로이와 지구, 지구와 로이 두 관계 사이에 인력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오히려 척력이 발생한다. 로이는 1급 기밀 임무를 받고 달로 밀려나게 된다. 우주여행을 꿈꾸었으나 로이를 맞이하는 것은 음료수와 티셔츠 판매점이라 말한다. 대사가 보여주는 건조함이 암시하듯 그는 달에서도 머물 수 없다. 애초에 화성으로 가기 위함이긴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공간과 인간, 이 두 가지 만남과 결별이 반복되고 여기에 그의 심리 상태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영화 속 건조함은 더욱 증폭된다. 그는 그 무엇과도 관계 맺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안착하지 못한 인간은 위태롭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심박수를 80으로 낮게 유지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로이는 조용하게 동요했다고. 심박수가 80으로 유지된다고 해서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게 아니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감정 자체는 인식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오랜 시간, 아마 평생을 아버지 없는 살아온 그는 어딘가 결여되어 있다. 단지 아버지가 없어서 결여된 것이 아니다. 우주 영웅이라는 우상이 아버지라는 자리를 대체하고, 남은 빈자리가 그를 왜곡시켰다. 그에게 감정의 동요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그는 아버지처럼 영웅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상황과 상태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강박이 그를 살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강박이 그를 죽였다. 지구에서 '커피'는 보기 싫은 것이라고 말한 그는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 자신을 찾는다.

로이는 화성으로 떠난다. 의도치 않은 사고들을 겪으며 그는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망가진 상태이다. 그리고 역시 고요하게 동요한다. 이 동요는 곧 트리거를 만난다. 서지로 인해 망가진 우주선에서 보낸 신호를 받고 구조를 하러 간 로이는 탈출한 개코원숭이의 습격을 받는다. 함께 구조하러 들어간 동료를 잃고 겨우 탈출한 그는 분노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영웅(이라 알려진)이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자기 내면의 빈 공백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진실을 알아가는 서사는 필연적으로 당사자에게 아이러니를 주어야 한다. 그는 진실을 탐구할수록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 연결을 탐구해야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택일 해야 한다. 새로운 진실을 만날 것인가 아니면 그 진실을 품고 평생 침묵할 것인가.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로이는 화성에서 새로운 진실을 듣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우주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팀원 모두를 살해한 뒤 홀로 우주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그를 괴물로 만들었는가. 그는 개인적 공백을 품고 거대한 진실을 마주하러 간다. 천왕성으로 향하는 우주비행선에 몰래 탑승 한다. 그리고 의도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비행선에 탑승한 인원 모두 사망하게 된다. 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일으킨 사건과 묘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그가 들여다보기 시작한 심연은 그 깊이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는 눈 돌리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그는 감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고요하던 심정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한다. 솟구친다는 표현이 능동적이며 역동적이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인물이 화를 낸다거나 격정적인 액션을 취한다는 것이 아니다)그는 그동안 부동의 자세로 서있던 감정을 탐구함으로서 감정을 드러낼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자기도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의 내면을 탐험의 과정과 궤를 같이하며 알아간다. 아버지의 진실을 알아가는 동시에 잠금 되어있던 감정 또한 깨닫는다.

이 과정이 지난하고 조용하기에 관객은 심심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여행의 결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합이 잘 맞는다. 제임스 그레이의 장점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관객이 즐기는 서사의 탄력감은 느슨할지 모르겠으나 긴장감은 언제나 살아있다. 정교하게 짜인 그러나 도식적으로 짜이지 않은 시나리오와 편집은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로이와 아버지의 갈등 그리고 그 아버지가 보이는 정신적 불안과 최후의 선택은 개인의 이야기를 한층 더 다채롭게 만든다. '없는 것만 찾았고 눈앞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한' 그의 아버지와 그는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주의 지적생명체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산(심지어 그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자신이 평생 증명하였음에도)그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그의 태도. 아들은 그런 자신의 거울을 보며 고통스러워한다. 마주한 진실은 고통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결국 손을 놓고 우주 멀리로 그를 떠나보낸다.

로이는 지구로 돌아와 기록을 남긴다. 매우 평온하며 잠도 잘 잤다고 말한다. 이젠 소중한 것에만 집중하며 살 것입니다. 삶이 어디로 흘러갈 진 모르지만 걱정하지 않아요. 난 살아갈 거고 사랑할 겁니다. 그리고 그가 커피를 한 잔을 마시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는 태도의 변화로 삶을 긍정하고 삶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그는 안전하게 지구 위로 안착한다. 지구가 처음으로 그를 인력으로서 환대한다. 이 환대는 인류의 생명을 구원했다는 데에 있지 않다. 방점은 그가 자신을 구원했다는 데에 있다. 인류를 구원한 영웅이 아닌 자신의 파이를 찾고 자신을 살려낸 인물에 있음에 있다. 우주를 횡단하고 돌아온 제임스 그레이의 서사는 외부적으로 광대하지만 그보다 인간의 내면으로 더 깊고 넓고 높고 크고 거대하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애드 아스트라
Ad Astra
감독
제임스 그레이
James Gray

 

출연
브래드 피트
Brad Pitt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
리브 타일러Liv Tyler
루스 네가Ruth Negga
도날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

 

수입|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23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9.09.19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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