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에거스] 우리가 본 것들과 여러 질문(들)
[로버트 에거스] 우리가 본 것들과 여러 질문(들)
  • 배명현
  • 승인 2021.09.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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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진실의 방향"

당신이 영화를 통해 본 것은 무엇인가. '로버트 에거스'(Robert Eggers)가 영화로 던진 물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건 선택에 대한 문제이다. 그는 영화 안에 한 가지 길만 만들어 놓지 않았다. 심지어 감독 자신조차 모르는 수많은 독해법이 있다. 어떤 독자와 만나느냐에 따라 미처 상상하지 못한 의미가 창조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의 관점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은 항상 그것이 배제시키는 것의 관점에서 정의되며"라고 말한 들뢰즈의 말을 떠올려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이러이러해서 이렇다'고 말하는 행위는 그 이외의 모든 것. 그러니까 선택된 것 그 이외의 모든 것을 배격하는 행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총체를 말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건 불가능하니까. 대상에 부여된 본질·정의가 그 대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에 불가하다고 해서 그 대상의 내제와 외제 모두를 포괄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로버트 에거스의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의 관점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관점 모두를 포기하는 행위이기에.

 

영화 <더 위치> ⓒ A24
영화 <더 라이트하우스> ⓒ A24

<더 위치>(2015)와 <더 라이트하우스>(2019)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전자가 한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기묘한 왜곡으로 비틀어 찍었다면, 후자의 영화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왜곡되는 인간의 욕망을 찍었다. 꽤나 거칠지만 영화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에거스의 작품은 요약할 수 없는 것들로 성립되는 영화이다. 요컨대 <더 위치>의 마지막 씬과 <더 라이트하우스>에서 라이트를 앞에 둔 윈슬로우-하워드가 굴러 떨어지는 씬과 이어지는 그 다음 쇼트. 이 두 씬은 영화 전체를 이상하게 바꾸어 놓는다. 그러니까, 관객이 지금까지 '본 것'을 모두 부정 혹은 전복시킨다.

<더 위치>에서 토마신은 가족의 일원으로 살던 곳을 떠나 오지로 온다.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다.(어머니와 남매에게도) 이 가족의 선택권은 오직 아버지만이 가지고 있다. 처음 이 가족이 자신의 자리를 떠난 것은 종교적 이유였지만 이 이유는 어째서인지 점점 가부장적 권력의 유지를 위한 몸부림으로 이동해간다. 자신의 무능을 거짓말로, 심지어 자식에게 덮어씌운다. 이런 회피는 장작 패기를 반복하는 자아 퇴행의 형태로 나아가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다른 인물들은 어떠한가. 토마신은 사무엘의 실종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한 사람이다. 하지만 목격자는 아니다. 아이와 놀이를 하는 도중, 사무엘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우리가 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그 도구는 카메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토마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 정도이다. 하지만 다시 말해보자. 우리가 본 것은 정말로 사실인가.

로버트 에거스는 영화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환상을 삽입해 넣었다. 악취미에 가까운―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를 포함해―의도성이 짙은 편집은 관객의 인식에 균열을 만든다. 그리고 이 균열은 영화가 결말에 다가갈수록 깊어지고 확장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가. 그 '영화적 증거'를 이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걸까. 특히, 케일럽이 '마녀'에게 잡혀갔을 때, (암시로만 남겨있긴 하지만) 마녀에게 해를 당한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다시 물어,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쇼트'에서 등한한 마녀가 케일럽에게 저주를 내렸다고?

삽입된 그 쇼트는 영화가 '보여준 것'이긴 하지만 사실의 영역에 둘 수 없는 쇼트이다. 우리가 본 쇼트는 마치 '환상'처럼 편집되었다. 더욱이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가족 간의 불신은 그 크기를 키워 끔찍한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마치 이 엔딩이 되어야만 하는 것 같은, 일종의 자연스러운 귀결로까지 보인다. 그리고 <더 위치>에서 가장 환상성에 가까운 씬인 엔딩에서 우리는 결국 우리가 본 것이 환상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에거스는 관객에게 일종의 게임을 제안한 것이다.

 

영화 <더 위치> ⓒ A24
영화 <더 라이트하우스> ⓒ A24

이런 유의 게임에 능통했던 감독은 역시 '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이다. 그는 <비디오드롬>(1983)에서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다. 영화 초반엔 이 둘을 가르는 경계가 명확하게 존재하지만 영화 후반에 갈수록 이 경계는 모호해지더니 종국엔 가상이 현실을―혹은 그 역이―침범해버린다. 관객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경계의 벽을 허무하게 바라보다 어쩔 수 없이 결말을 인정해버리고 만다. 감독이 의도한 그로테스크한 덫에 폭력적으로 먹혀버리는 것이다. 로버트 에거스는 크로넨버그가 만들어둔 '경계 허물기'를 자신의 영화에서 효과적으로 응용한다. 이를 방증하듯 그의 두 번째 장편작인 <라이트하우스>에서도 이 포인트가 잘 살아있다.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기대어 있었던 '벽'을 잃어버린 관객은 허무하게 넘어져버리고 만다. 우리가 그동안 보았던 토마신의 모습은 무엇이었나. 설사, 그 결말이 현실이라 하더라도 그녀가 과연 어떻게 마녀들의 세계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일까. <라이트하우스>에서 빛을 바라보며 광기에 휩싸인 윈슬로우-하워드가 왜 러닝타임의 끝에서 새들의 먹이가 된 것일까. 애거스는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지점과 보여준 것을 교묘하게 엮어 놓는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감독은 같은 영화를 두 번 찍은 것이라고.

그의 영화는 원인과 결과가 직렬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는 의도적으로 이 연결을 회피한다. 그러나 이것이 영화적 플롯에서의 정합성을 깨진 않는다. 오히려 이 이상한 접촉은 장르적으로 새로운 지점에 도달했다. 그의 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진실은 우리가 본 것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곳에 가기 위해서는 영화가 끝난 이후에 찾을 수 있다. 그는 미로를 제시했고 이 미로는 러닝타임 이후에도 유효하다. 이 미로의 끝은 관객에게 달려있다.(물론, 감독이 선호하는 엔딩이 존재야 하겠다만)

 

영화 <더 라이트하우스> ⓒ A24

로버트 에거스는 '영화를 추동하게 하는 힘'을 영화 안뿐만 아이라 밖에서도 가져온다. 관객에게 빌린 그 상상력이란 힘은 그의 영화를 더욱더 고차원적이고 심도 깊은 그 무엇으로 만들어준다. 여기서 필자는 애거스 감독의 영화적 야심이 엿보인다. 기본적으로 공포 계열의 영화는 어떻게 보여주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출발한다. 그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공포 영화가 아닌 점프스퀘어로 가득한 짜증 덩어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거스는 보여주고 시작한다. 그리고 위에서 반복해서 말했듯 영화 엔딩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역접 시켜버린다. 그는 공포라는 법칙은 유지하되 형식이라는 원칙을 뒤집어 새로운 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에거스의 영화에 대한 질문은 곧 감독의 세계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아직, 답을 명확하게 얻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감독의 다음 영화는 10세기에 기반하고 있는 역사물이라고 한다. 거기에 서사는 복수극이라고 한다. 2022년에 개봉하는 이 영화는 공포감독 에거스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그리고 그 공통점을 중심으로 어떤 차이들이 있을지, 필자는 궁금하다. 다음 영화에서는 이 질문들에 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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