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BIFAN] '내 마음속의 사사키' 오늘의 어제, 어제의 오늘
[25th BIFAN] '내 마음속의 사사키' 오늘의 어제, 어제의 오늘
  • 오세준
  • 승인 2021.09.2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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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뜨겁게 뛰게 만드는 영화의 활기 가득한 리듬"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수작(秀作)을 만났다. 영화의 모든 이미지는 마치 긴 겨울이 지난 뒤에 찾아오는 봄의 따스한 볕 아래 푸르른 식물들과 같이 생기로웠다. 영화는 실제로 그랬다. 도쿄의 새벽 아래 식어버린 사랑을 품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의 전개는 갑작스레 과거로 향하더니, 기타선이 끊어질 듯 한 강렬한 록 음악과 함께 달리는 지하철 옆으로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학생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활기를 두른 영화의 묘한 리듬은 분명 태동하는 봄의 생명력과 닮았다.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보는 이의 마음을 뛰게 만드는 신비로운 작품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필자의 마음을 뒤흔들었는가.

영화는 조금만 뜯어보면 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음에 생각을 기울게 한다. 으레 신인 감독들의 작품들은 감정에 치우쳐 지나치게 과잉되거나 비약이 심하고, 또 안전한 노선을 찾아 고루한 영화문법을 따르기 마련.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 <내 마음속의 사사키>도 자칫 이러한 신인들이 보여주는 실수 아닌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나 싶다. 물론, 꽤 길어질 필자의 이 글은 그러한 영화의 헐거운 측면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헐거움이 얼마나 묵직하게 필자에게 다가왔는지 서술하는 것이 목표다.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지는 구조, 그 안에 품고 있는 플래시백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장황하게 써볼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새벽

요란법석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고, 흰 글씨의 영화제목이 화면 가득 메운다. 이어지는 숏으로 짙은 푸른빛이 내려앉은 도쿄의 한 마을. 어두운 밤을 버틴 몇몇 건물들의 노란 불빛들이 별과 같이 곳곳에 수 놓이며 퍼런 새벽과 대조를 이룬다. 잠에서 깨어나기에는 이른 시간. 주인공 유지(후지와라 키세츠)는 새벽이 찾아오기도 전에 잠에서 깼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다. 곧이어 잠에서 깬 그의 여자친구 유키(하기와라 미노리)가 잠에서 깬다. "어떤 세상이었어?"라는 그의 질문에 그녀는 불행을 암시하는 듯 알 수 없는 꿈을 얘기한다. 그러고는 그녀는 겨울이 되면 집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반면에 어떠한 것도 결정하지 못한 유지. 순간 카메라는 손바닥 남짓 떨어진 두 사람의 이불과 이불 사이로 향한다. 거기에는 막 잠에서 깨어난 상대방의 꿈이 펼쳐낸 세상을 궁금해하는 친밀감이 아닌, 관계의 끝에 서 있는 한 연인의 관성적인 사랑만이 자리한다.

스물일곱 살 유지는 배우의 꿈을 안고 도쿄로 왔지만, 공장에서 박스를 접으며 파트타이머로 위태로이 생활 중이다. 그는 후배인 유지로부터 대본을 건네받으며 오랜만에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었지만,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이다. 어느 날 자신이 일하는 공장에 업무차 들린 고등학교 동창 타다(유야 신타로)와 우연히 마주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랜만에 '사사키'(호소카와 가쿠)의 소식을 접한다. 이때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밤새 술을 마신 두 사람이 온통 푸른빛으로 덮인 도시의 거리를 걷는 장면 뒤로 '흥미로운 장면'을 접합한다. 교복을 입은 유지와 타다, 기무라 그리고 사사키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를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 누가 봐도 시간이 과거로 향했음을 알 수 있는 이 장면, 영화가 보여준 첫 플래시백이다. 여기서 영화는 이 플래시백을 이어가지 않고 현재로 돌아와 집에 돌아온 유지가 유키에게 밝게 미소를 지으며 사사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또 과거로 향하는 전개를 보여준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쳐낸다. 1시간가량은 유지의 현재와 그와 사사키의 과거를, 이후에는 사사키가 죽기 전에 겪은 어느 하루를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의 불규칙적인 전개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도리어 현재와 과거를 끊임없이 연결하면서 인물들의 감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관객에게 시선을 내어준다. 또 유지가 왜 사사키에게 연락할 수 없었는지, 또 사사키는 자신의 아픔과 외로움을 친구들에게 꺼내놓을 수 없었는지, 더 나아가 유지와 유키, 사사키와 이시이 각각 관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영화가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큰 이유에는 현재와 과거의 연쇄와 충돌 속에서 '청춘'이라는 정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지나간 일(과거)을 현재라는 시간 위에 소환하면서, 다시 현재의 일을 미래로 향하도록 하는 영화의 운동이 일으킨 효과이다.

시청각적 회고로 사용되는 플래시백 기법은 대체로 과거의 이야기를 서술하며, 옛 기억을 떠올리는 느낌으로 표현된다. <내 마음속의 사사키> 속에는 두 가지 역할을 가진 플래시백이 존재한다. 첫째로 (유지의 시점으로) 현재의 이야기를 유예하기 위함, 둘째로 '사사키'라는 인물의 이해를 위한 보완이다. 전자가 유지와 사사키의 학창시절을 그린다면, 후자는 친구들 앞에서 보여준 쾌활한 모습과 달리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진 사사키의 이면을 보여주는 한 일화를 그린다. 여기서 냉철히 생각해봐야 하는 건, '플래시백'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다. 영화 속에서 현실과 과거는 오직 주인공들의 의상과 분장,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의 차이만으로 대비되어 진다. 즉, 현재와 과거는 같은 조명(빛) 아래 카메라에 담긴다. 영화의 무대 위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시간의 교차됨의 힘은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내 마음속의 사사키>의 첫 플래시백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 타다와 밤새 술을 마시고 헤어지는 유지의 뒷모습에 이이서 등장하는 유지와 친구들의 자전거 질주 장면이다. 앞서 언급한 이 장면은 유지의 마음속에서 잊고 있었던, 아니 부단히 잊고자 노력했던 '사사키'와의 추억을 떠올리도록 일깨운다. 이들의 격동적인 몸짓. 이것은 '청춘', '우정', '사랑' 등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또 느낄 수 있도록 반작용을 일으켜 시각적으로 그 형상을 스크린 위에 구체화 시킨다. 그리고 도시를 재운 컴컴한 어둠에 아직 떠오르는 태양의 옅은 빛이 섞인 푸른 새벽의 도쿄는 어제(과거)와 오늘(현재)의 구분이 모호해질 만큼이나 신비로운 장소로 변한다. 그렇기에 영화의 첫 플래시백은 계속 언급을 해야 할 만큼 중요하다. 더 넓게는 그 새벽의 빛은 유지와 친구들의 질주하는 공간까지 뻗어―이 장면이 과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자연스레 그날 아침의 어떤 순간으로 보이도록 착란을 일으킨다.

 

ⓒ <내 마음속의 사사키> 제작위원회

'플래시백'이라는 편지

그렇다면 첫 플래시백을 시작으로 현재와 교차되어 보여주는 영화의 과거는—감독의 시점으로 서술되지만—유지의 회상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배우가 꿈인 유지를 응원했던 사사키, 친구들과 함께 보낸 학창시절, 또 아버지의 잃고 혼자 남은 사사키를 지켜만 봐야 했던 시간까지. 이러한 과거들은 유지가 무대에서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과 계속해서 교차된다. 유지가 준비하는 연극의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포인트가 있다면, 자신이 맡은 '실버'라 불리는 인물을 이해해야 하는 유지의 고민이 드러날 때이다. 극 내에서 "혼자 있게 해줘"라고 말하는 실버의 친구 연기하는 상대배우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든지, 점차 바닥으로 침잠하는 친구를 향해 다가가는 실버의 모습을 연기하면서, 아버지의 상실로 힘들어하는 사사키에게 다가가지 못한 과거를 떠올리며 현실과의 괴리에 빠지는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유지가 올라서야 하는 무대는 과거와 현실이 공존하는 영화의 무대(공간)를 압축해 놓은 듯하다.

그러나 영화의 과거는 사사키와 아버지의 관계도 그리고 있으며, 유지의 시점에 따라 전개되지 않기에 온전히 유지의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감독의 카메라가 유지의 얼굴을 쫓고 있으며 유지의 시선은 계속해서 사사키를 향해 있기에 이 과거에 유지의 감정이 크게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사사키를 연기한 배우 호소카와 가쿠의 학창시절을 원안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고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아무래도 영화로 승화하고 싶었다"며, "사사키를 연기하는 것으로 그 시절 '그 녀석'을 느끼고 상상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유지로부터 시작되는 플래시백(이하 유지의 플래시백)은 극 중 인물의 회고보다는, 더욱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플롯보다는 마치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고백의 성격이 짙다. 배우인 호소카와 가쿠가 글을 쓰고, 감독인 우치야마 타쿠야가 카메라로 담은 일종의 편지처럼.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유지는 갑작스레 걸려온 사사키의 전화로 오랜만에 그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주변 사람에게서 "자기 친구, 곧 뜰 거라고 계속 자랑했어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사사키는 끊임없이 유지를 응원하고 믿고 있었다는 이 말. 지금의 유지에게 너무도 필요했던 이 말. 그제서서야 영화는 유지의 플래시백을 멈춘다. 비로소 '종착지'에 도착한 것이다. 필자는 위에서 유지의 플래시백을 '편지'라 언급했다. 실제로 <내 마음속에 사사키>는 호소카와 가쿠의 실제 친구에 대한 기억으로 빗어졌으며, 유지로부터 시작되는 플래시백은 마치 그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둔 소중한 기억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현재와 과거가 같은 조명 아래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는 것은 영화의 형식 이전에 관객을 넘어 누군가에게로 향하고 있는 영화의 운동성, 다시 말해서 유지의 플래시백이 '부치지 않은 편지'로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치지 않은 편지를 보관하는 것은 그것의 미래를 붙잡아두는 것이다. 쓰지도 않고 보내지도 않은 편지도 특이하지만 (우리는 자주 편지 초안을 썼다가 구겨버리곤 한다) 부칠 생각 없이 편지를 간직하는 것은 정말 특이하다. 편지를 간직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 편지를 결국 '부쳤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편지를 찢어버리는 경우처럼) 편지에 담긴 생각을 포기하거나 말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그것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현실 속 수신자의 응시에 내맡겨지기에는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한다. 현실의 수신자는 편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편지의 가치에 걸맞은 환상 속의 상대자,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제대로 가치 평가를 해주리라 간주하는 사람에게 '보낸'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웅진지식하우스, p.22

끊임없이 전개해 오던 이 편지(유지의 플래시백)가 멈춘 것은 왜일까. 그건 영화가 이것이 더는 부치지 않은 편지가 아닌, 이미 부쳐진 편지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사사키가 유지를 두고 한 말("자기 친구, 곧 뜰 거라고 계속 자랑했어요."),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친구)에게서 찾은 확신 가득한 말. 그것은 반대로 유지에게 부쳐지지 않은 편지이면서 동시에 유지의 부치지 않은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지와 사사키는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었고, 그들에게 자신이 쓴 편지를 가장 잘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감독도, 배우도, 관객도, 심지어 대타자도 아닌 오직 편지를 쓰도록 만든, 어쩌면 꼭 읽어주기를 강렬히 바래왔던 그들 서로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먼 시간 돌아온 두 사람의 재회가 어색하지 않고, 늘 그랬다는 듯 아무런 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미 가 닿아 있었기에.

 

ⓒ <내 마음속의 사사키> 제작위원회

'사사키'라는 컨텍스트

재회도 잠시, 유지는 사사키의 부고를 전해 받는다. 이때 영화는 돌연 멀지 않은 사사키의 과거(이하 사사키의 플래시백)를 보여준다. 일을 하지 않는 사사키는 아침에 일어나 곧장 빠칭코로 향한다. 입장 전 줄을 선 그 앞으로 세 명의 남자들이 새치기를 한다. 이를 마냥 지켜볼 수 없는 그는 그들과 한판 싸움을 벌인다. 덩치가 있는 한 남성이 사사키를 바닥에 던져버리지만, 사사키는 그의 다리를 물고 늘어서면서까지 지지 않는다. 사사키는 그런 인물이다. 그만의 소신이 있는 강한 사람. 영화는 그런 그의 이면을 이어 보여주는데, "같이 부르면 좋겠다 싶어서요"라고 말을 더듬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이시이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푸른 새벽 노래방 앞. 두 사람의 이별이 만남으로 이어졌다는 것, 그래서 사사키의 죽음을 유지에게 알릴 수 있었던 사람이 이시이였다는 것을 사사키의 플래시백은 보여준다.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희한하게 교묘하다. 사사키의 죽음을 듣게 된 새벽에서 사사키가 이시이를 만나는 하루의 아침으로 이어져, 사사키와 이시이의 가슴 설레는 새벽의 헤어짐으로, 또다시 유지가 차를 타고 사사키의 집으로 향하는 새벽의 도로까지. 과거의 새벽과 현재의 새벽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면서 이야기를 더욱더 단단히 구축시키고 매듭지어 나아간다. 그러나 정작 '사사키의 죽음'은 현재와 과거의 교차됨의 끝에서 당혹스럽게 느껴지는데, 그건 유지가 겪어야 하는 시련 혹은 이 이야기의 완성을 위한 희생처럼 다기오기에 더욱더 그렇다. 과거의 찬란한 빛 아래서 옷을 집어 던지고는 신나게 춤을 추던 사사키의 몸짓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과거 그대로 변하지 않는 그의 집에서 창문 너머 작은 빛만이 비추는 더는 움직일 수 없는 정지된 상태의 육신으로 존재한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유지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표정만이 채워진다.

영화 속에서 사사키는 대부분 '과거'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 유지와의 잠깐의 재회, 이시이와의 달콤한 만남을 재외하면 현재의 사사키는 죽은 자(혹은 죽게 된 자)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사키는 사토리 세대, 히키코모리, 니트족, 프리타, 초식계 등 버블 붕괴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불경기와 침체, 우울한 사회 분위기를 겪으며 그들만의 생활 태도나 형태를 갖춘 신조어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잔뜩 어질러진 그의 집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여 볼 때, 차이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변함없다. 여기서 '변화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캐릭터성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성장하지 못한 청년세대들의 무위(無爲)를 보여준다. 사사키의 고립은 그의 아버지의 죽음이 기폭제로 작용하는데, 극단적으로 이건 쇼와시대의 종말 이후 헤이세이세대의 단절과 전복을 연상케 한다. 생존과 욕망을 품지 않은 현재의 사사키와 멈추지 않을 듯 거친 몸짓을 보인 과거의 사사키의 차이 또한 그러하다.

 

ⓒ <내 마음속의 사사키> 제작위원회

"사사키는 그 모습 그대로 편한 얼굴이었어." 싸늘한 시채가 된 사사키를 본 타다의 이 말은 잔인하게도 현재의 사사키에게 환원된 유일한 것이다. 과거와 같이 친구들과 함께 뛰어다닐 수 없는 현재에서 사사키가 취할 수 있는 건 자신은 그들을 보지 못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볼 수 있는 엇갈림, 즉 자신의 죽음을 애도할 순간이 유일하다. 달리 말하면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유지라는 인물이 가진 내면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존재로써 그의 과거 속에서 빛나는 사사키라는 인물을 소환하면서 그의 죽음을 통해서 사회 속에서 소외되어가는 개인의 고립을 이야기한다. 청춘, 우정 등이 영화를 밝게 비추고 있는 동시에 외로움, 고독, 우울 등이 영화의 그림자로 어둡게 자리한다. 그러고 보면 유지와 사사키는 과거와 현재 그 어느 곳에서도 안주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듯 느껴진다. 그 예로 두 사람이 시간과 장소가 제각각 분리된 채 여러 모습으로 교차되어 보여진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야말로 응집된 혼란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사사키>는 거품경제, 또 재난 이후의 일본사회 안에서 태동하는 허무주의나 상실감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 일본영화들이 보여줬던 사회문제를 예술로서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이제는 빛바랜 감상이 된 방식의 고루한 자성(自省) 또한 품고 있지 않다. 영화는 '일본의 나', '일본사회 속에서의 나'에서 벗어나, 무(無)장소에 이르러,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 안에서, 또다시 '그러한 나의 모습에서의 나'로 미분화시켜 인물의 변화를 이끌어 나간다. 앞서 설명한 플래시백 사용에 따른 연출형식에서 유지가 사사키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 그러하다. 신기하게도 이건 최근의 일본영화들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아사코>(2018)의 아사코와 료헤이,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의 나와 사치코, <비가 그친 후>(2019)의 타이야키와 코요미 더 넓게는 <너의 이름은>(2016)의 타키와 미즈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의 나와 사쿠라까지.

이 영화들 속의 관계는 특정한 사건(죽음, 사고, 만남, 이별 등)을 중심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차이를 통해서 인물들의 요동치듯 변화하는 내면의 정서를 그린다. 그리고 이들이 가지는 내면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유예함으로써 닫힌 결말이 아닌 지속할 수 있음의 가능성만을 제시한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결말에 자리한 '나'를 향한 사치코의 얼굴, <아사코>와 <비가 그친 후>의 결말에 인물들이 바라보는 흐르는 강물은 결별이 아닌 불안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과거, 즉 본연의 '나'의 모습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자세와의 이별과 문제를 인식하고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담겼다. 유지가 죽은 사사키의 얼굴을 뚫어져 보는 것처럼 이들의 영화들 속 인물들은 자신의 불안에서 피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직시한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아. 그래서 그렇게 멀리 길을 돌아갈 필요가 있었어. 아직도 한참 그러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가만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中 단편 <예스터데이>, 문학동네, p.109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내 마음속의 사사키>의 결말. 유지는 여자친구인 유키에게 "(너와 함께 한 순간들이) 내 안에 잊을 수 없는 추억뿐이라. 잊기 두려웠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완전한 이별을 고한다. 그러고는 사사키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곳으로 향한다. 그는 과거 사사키와 친구들이 신나게 자전거를 타던 도로 위에서 마치 진짜 '실버'가 된 듯 대사를 읊조린다. "지나간 삶을 공포에 질려 응시하고 있지. 묘지를 방황하는 광대처럼. 하지만 이미 끝났어, 조", 이때 영화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의 발자국이 향한 쇼트에 이어서 마스터숏으로 텅 빈 도로 위 한가운데 위치한 그의 뒷모습을 담는다. 다시 그를 미들숏으로 왼쪽에서 살짝 위로, 곧이어 스크린을 찢고 나올 듯 정면을 향해서 돌진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 몸짓의 방향은 첫 플래시백에서 보여준 자전거 질주 장면의 정반대이다. 그리고 이 시퀀스에는 미래(가까운 현재)로 추정되는, 유지가 연극무대로 향하기 직전의 복도를 지나는 모습과 함께 죽은 사사키의 얼굴이 몽타주로 조립됐다.

영화는 다시 또 과거와 현재를 스크린에 뒤섞는다. 앞서 언급한 도로 위를 달리는 유지의 몸짓은 이처럼 영화의 시간성을 온전히 표현해낸다. 이것은 과거의 몸짓과 충돌하면서도, 어긋나지 않고 되려 흡수해내어 관객의 머릿속에 지나간 영화의 이미지들을 소환하도록 한다. 또한, 이 시퀀스에서 드럼 소리가 빠진 사운드는 마치 첫 플래시백에서 강렬히 터트린 드럼의 리듬을 그리워하기라도 하는 듯이 길게 울린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드럼을 상징하는 이는 누구였나. 강렬하게 존재감을 보였던 이는 누구였나. 유지가 다다른 곳에서 죽은 사사키를 싣고 떠나는 차는 갑자기 멈춘다. 그 순간 드럼 소리와 함께 사사키가 등장한다. 유지와 친구들 모두 "사사키, 사사키!"라고 외치며 울부짖는다. 영화는 기어코 시간을 초월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뛰어든다. 유지와 친구들이 간직한 사사키의 분신(分身)이 육체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일까. 맹렬한 기세로 관에서 나와 춤을 추는 사사키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왜일까.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내 마음속의 사사키> 제작위원회

홍상현 영화평론가는 <내 마음속의 사사키>에 대해서 "동세대 청년 영화인들이 캐스트‧스태프로 대거 참여해 '당사자 시점의 젊음'을 그려낸 이 작품은 정형화된 청춘물의 클리셰를 영리하게 뒤집어가다 끝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마저 허물어뜨리는 파격성으로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신인감독상을 거머쥐는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대만, 일본 등 아시아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루한 청춘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운율적인 편집형식으로 시간적 리듬을 형성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결국, 영화는 '사랑'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묻는다.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통로는 어디였을까. 무(無)장소.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아닌, 두려움으로 금기시 한 특정 기억에 자리한다. 영화의 과거에서 현재로의 이행은 그렇게 타다가 유지에게 '사사키'라는 이름을 언급함만으로 충분했다. 영화는 이미 지나간 시절이라 여기는 무뎌진 가슴에 굳은살을 잘라내고 물렁해진 마음에 진동을 일으킨다.

<내 마음속의 사사키>는 데뷔작 <바니타스>(2016)로 피아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킹 누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의 뮤직비디오와 중편 <블루 포레스트>(2018)을 연출한 우치야마 타쿠야 감독의 작품이다. 특히,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굿바이 입술>(2019), <미야모토로부터 너에게>(2019), <드라이브 마이 카>(2021) 등에 참여한 '시노미야 히데토시' 촬영감독의 감각적인 비주얼이 돋보인다.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할 일본영화임으로 기억될 만큼 스타일리시하고 매력적인 작품임에 분명하다.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 '내 마음속의 사사키' 제작위원회
ⓒ <내 마음속의 사사키> 제작위원회
ⓒ <내 마음속의 사사키> 제작위원회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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