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유어 맨' 나는 당신에게 누구인가
'아임 유어 맨' 나는 당신에게 누구인가
  • 이현동
  • 승인 2021.09.23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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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인간이 기계가 되고, 기계가 인간이 되는 세계에서"

독일의 시인 릴케가 쓴 시 '가을날'이 인용되는 알마(마렌 에거트)와 톰(댄 스티븐스)의 첫 만남은 <아임 유어 맨>(2021)이 담고 있는 주제를 명시적으로 혹은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문현미 시인에 의하면, 릴케의 시 '가을날'에서 시의 구조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주께 간구하는 인간과 고독한 가운데 불안에 떠는 인간의 대조라 밝혔다. 인간은 불안과 실존, 그 어느 너머에 존재하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간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 불안의 중심에는 '혼자'라는 상태가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톰은 알마는 대화 도중에 확률상으로도 가능성이 전무한 시스템 오류를 겪게 되면서 읊조리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완료형으로 전달되지 않으며 어떤 정지된 결여의 형국으로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영화의 방향성을 지시한다.

 

"Ich bin(나는), Ich bin(나는), Ich bin(나는)……"

이 반복적인 문장은 그렇게 다음 문장으로 도달하게 될 또 하나의 단어와 합일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Ich bin dein Mann'이다. 어떻게 Ich bin(나는)이 dein Mann(너의 남자)으로 완결될 수 있는지를 '기계적인 인간'인 알마와 '인간적인 기계'인 톰과의 입체적인 마주함 속에 제법 다채로운 논평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영화다. 인간이 기계가 진실로 남녀 간에 가질 수 있는 애정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진중하게 대답한 영화가 있다면 <바이센테니얼 맨>(1999)과 <Her>(2013)를 대표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을 통해 로봇이 감정을 소유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개체와의 관계적인 가능성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이제 다른 차원의 감정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닐성싶다. 앞으로 새롭게 도래하게 될 '만남'은 인습을 탈주하여 인간의 근본적인 실체를 선명하게 표증하게 될 것임을 예상하게 된다.

 

ⓒ (주)라이크콘텐츠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해

<바이센테니얼 맨>이 마치 단군신화와 같이 '동물'이 '인간'이 되는 신화적이면서 우화적인 지점들을 내포하고 있다면, <아이 유어 맨>은 원칙을 고수하는 기계와도 같은 인간이 인륜성을 어떻게 복권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펼쳐진다. 먼저 톰은 정교한 연애 프로그래밍으로 설계된 로봇이며 그 알고리즘은 적확하게 '알마'의 알고리즘 정보를 통해 구현된 인공지능 프로세서이기도 하다. 톰은 알마와 3주 동안의 테스트 과정을 거쳐 로봇이 유효한지를 점검을 받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알마와 함께 거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알마의 모든 습관과 관심 분야를 캐치하고 있던 톰은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일어나 집을 정돈하고, 아침을 만든다. 그러나 알마는 톰에게 다시 원상대로 복구하라고 지시하고, 원래 자신은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영국인 억양을 왜 쓰냐고 물어보는 알마에게 톰은 그것이 당신의 취향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미루어 보아 알마는 기계에게는 절대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자신의 원칙을 기계처럼 실행하는 사람이다. 기계에 대한 감정을 '무의미'에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알마와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하는 톰은 남녀의 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감정의 깊이가 무엇인지를 의미화한다. 그 둘에게 통념을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무엇일까. 남녀가 감정을 교감한다는 것 이외에 육체적인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임 유어 맨>에서는 알마가 톰에게 섹스를 요청하는 장면이 두 번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알마가 자신의 고고학의 연구가 다른 지역에서 이미 연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상실한 마음으로 술을 잔뜩 마시고, 만취한 채 호기심으로 톰에게 요청하는 경우인데, 이때는 톰이 이런 (로맨틱하지 않은)분위기에서 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한다.

 

ⓒ (주)라이크콘텐츠

두 번째는 알마가 자신의 유산 경험을 이야기하며 기계와는 만남을 이어갈 수 없다면서 매몰차게 톰을 떠나보낸 후에 자신을 자책하며 다시 그를 찾아가 전연 로맨틱한 상황과 장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이는 기계와 같았던 알마가 인간으로 변모하는 순간일 것이다. 이후의 장면에서 톰은 '인간'처럼 코를 골고, 이제는 반대로 알마가 아침을 차려준다. 그러던 중에 그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는 이 묘연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발생한다. 결국 테스트에서 하차하겠다는 알마의 말에 다시 한번 톰은 떠나게 되고, 알마는 시간이 흘러 첫사랑이 있었던 장소인 곳에서 톰을 마주하면서 이 영화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서로 동화될 수 있는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한다. 그 자리에 첫사랑이었던 토마스가 아닌 '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가상 세계의 속성이 아닌 현상계로 시각화된 가시적 세계로 막을 내린다는 점에서 그러할 것이다.

 

자연이 즉물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알마의 집 벽의 프레임을 가득 채울만한 거대한 그림은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아임 유어 맨>는 '자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되새김질한다. 그것은 거리감에 대한 고찰로 풀이된다. 인위적으로 축조된 '집'과 근원적인 속성을 상징하는 '자연'은 영화 안에 쇄도하며 명멸한다. 자연은 인간인 알마와 기계인 로봇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외재적으로 발동하는 요소이지만, 이와 반대로 이 그림은 이전의 남편이었던 율리아의 선물이기도 하다. 거대한 이 인위적으로 상정된 자연적 옥쇄가 알마의 시야 속에서 사라질 때 비로써 알마와 톰은 그림에 전시되어 있던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을 만끽한다.

이를 무엇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하면 다름 아닌 '웃음'이라고 생각한다. 초반부 영화의 주변부를 맴도는 아카이브적인 요소가 영화 전체를 블랙 유머를 형성하는 것과 같은 장면이 하나 있는데, 톰이 알마를 연구실밖에 카페에서 기다리는 도중에 어느 커플이 에픽 페일(Epic Fail)비디오를 감상하는 것을 보는 장면이다. 에픽 페일은 쉽게 말해 엄청나게 시끄럽고 창피한 실수를 모아 둔 비디오이다. (어린 시절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퍼니스트 홈 비디오'라는 제목으로 방영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이것을 톰이 옆 사람에게 재미있는 이유를 묻자 '그냥'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냥과 같은 어떤 '즉물적인 방식'으로 인식한다. 자연이 왜 아름다운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웅장한 자연을 관망하면서 그저 압도당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웃음도 이와 같다. <아임 유어 맨>은 알마와 톰의 에픽 페일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 (주)라이크콘텐츠

 

"웃음은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 아마도 언젠가는 진정으로 도달해야 할 상태의 존재가 된 듯이 보이도록 당장에 노력하게끔 하는 것이다" - 앙리 베르그송 <웃음> 中에서

그들이 어찌 보면 인간과 기계라는 존재가 도무지 당도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고민과 갈등들, 그리고 일체가 되는 경험 속에 반복되는 만남과 작별, 나는 <아임 유어 맨>을 통해 인간의 웃음이 '자연'적인 속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불가해한 것처럼 인식되지만 알마와 톰의 미소에 공감할 수 있는 그 거리에서 이 영화는 비로써 dein Mann이 완성된다. 알마만의 dein Mann이 아니라 모두의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밀봉되었던 기억이 다시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사랑 영화는 하나의 가능성의 영역으로, 또 한 가지는 실제화의 영역으로, 두 가지를 개방하며 영화의 메시지는 총체화되어 우리의 감정에 도착한다. 알마와 톰의 만남이 종결되지 않은 채 진행형으로 마무리되는 <아임 유어 맨>은 나는 당신에게 누구였는지에 대한 상념에 잠기게 한다. 훈훈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방식으로.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아임 유어 맨
Ich bin dein Mensch
I'm Your Man
감독
마리아 슈라더
Maria Schrader

 

출연
마렌 에거트
Maren Eggert
댄 스티븐스Dan Stevens
산드라 휠러Sandra Huller
한스 뢰브Hans Low
볼프강 휩쉬Wolfgang Hubsch

 

수입 (주)콘텐츠게이트
배급 (주)라이크콘텐츠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09.16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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