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펫졸드] '바바라' 사회라는 거대한 병원에 남은 사람들
[크리스티안 펫졸드] '바바라' 사회라는 거대한 병원에 남은 사람들
  • 이지영
  • 승인 2021.09.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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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지옥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다"

<바바라>의 시대적 배경은 슈타지(STASI, 구 동독의 국가보안부)의 감시와 탄압으로 악명 높았던 1980년대 초반의 동독이다. <트랜짓>(2018)이 2차 대전과 현 시대를 동시대성으로 연결하며 난민이라는 존재를 재탄생시켰 듯, <바바라>도 구 동독이라는 냉혹한 시대에 심리적 난민이 된 사람들의 드라마를 그렸다. 영화의 오프닝은 전철 실내에서 주변을 살피는 바바라(니나 호스)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베를린의 병원에서 시골 병원으로 전출된 첫날 전철을 타고 출근 중이다. 배경이 되는 시골 바닷가 마을은 펫졸드의 <트랜짓>에 나오는 항구 도시와 비슷한 심상을 지닌다. 바다는 전 세계로 그리고 죽음을 향해서 활짝 열려있다. 남루한 도시에는 떠나려는 자와 남겨진 자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바바라는 그 중에서 떠나려는 자이며, 그녀가 지금 막 들어선 곳은 하나의 경유지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프닝에서 만난 '바바라의 시선'은 그 시절을 살아간 개인의 불안, 신경증, 환멸을 드러낸다. 바바라는 이웃의 순수한 선의나 호감이라도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일단은 외면하고 거부한다. 이것은 카메라 프레이밍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다음 씬들을 보자. 병원에 처음 출근한 그녀를 직속 상사 앙드레(로날드 제르펠트)가 창문 밖으로 멀리 내려다 보고 있다. 같은 방 안에는 슈타지인 클라우스(라이너 복)가 있다. 바바라는 반쯤 가린 벤치에 앉아있다가 이내 창문 너머의 풍경에서 사라져버린다. 다음으로, 일하면서 동료들 틈에 어색하게 서 있던 바바라는 식사 시간에 동료들이 모여있는 자리를 피해 멀찍이 앉는다. 이를 본 동료들은 베를린 출신답게 인간미 없고 차가운 성격이라고 한 마디씩 거든다. 바바라는 같은 프레임에 포함되기를, 그리하여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하며 도망친다. 스스로를 곧 떠날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주) 영화사조제

바바라가 있는 프레임 안으로, 달리 말해 그녀의 삶 안으로 갑자기 뛰어드는 인물은 앙드레다. 퇴근길 시퀀스에서 바바라는 버스정류장에 서 있고, 멀리서 앙드레의 차가 급하게 후진해서 그녀의 바로 앞에 선다. 다음엔 집안까지 들어와 피아노 조율사를 부르고 집수리를 돕는 등,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앙드레의 행동은 바바라에게 즉시 거절당한다. 불시에 들이닥치는 집 수색과, 최후의 인간 존엄성마저 짓밟는 몸수색, 어딘가 수상쩍은 집주인과 이웃의 눈초리까지, 사생활 침해 트라우마와 슈타지에 대한 증오 때문일 것이다. 바바라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상쩍은 이들 말고도 순수한 호의를 가진 이들에게도 불미스런 의도를 억지로 읽어내고 내치고 만다.

바바라는 펫졸드식으로 말하면 그녀는 ‘유령’이 되어 떠도는 인물이다. 유령이란 무엇인가? 최근 인터뷰에서 감독은 "유령이란 소속감과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은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헌데 이렇듯 정체성을 드러내줄 직업들은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럴 때 우리 중 누군가는 사회에서 투명하게 보이지 않는 유령이 된다. 한편으로 유령은 사랑하는 대상이 떠나가고 남겨진 자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생각하면 바바라 역시 동독이나 서독으로 가서도 유령이 될 처지다. 동독에서 그녀는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감시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는 집에서 깊은 잠에 들지 못해서 병원에서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반쯤 깨어있는 상태로 돌아다닌다. 서독에 살고 있는 애인은 동독에 잠시 그녀를 보러 왔다가 떠나고, 그년는 언제나 남겨지는 쪽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를 사람을 따라 서독으로 망명하더라도 그녀는 유령같은 삶을 청산하지 못한다. 서독에 가서도 그는 이방인일 뿐 아니라 의사로서의 생명도 끝나기 때문이다.(피로에 시달리는 바바라에게 애인은 자신이 충분히 돈을 벌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라고 하며, 그녀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나 애정을 그리 높이 사지 않는다)

 

ⓒ (주) 영화사조제

현재 바바라를 살아있도록 하는 것은 한가지,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집에서 그녀는 무기력하고 불안정해 보이지만, 병원에서 어린 환자들을 대할 때는 더없이 실력 있고 온정적인 의사로서 최선을 다한다. 마지막 긴박한 탈출의 기회에도 앙드레가 도와달라고 부탁한 수술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어린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은 결국 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소속감과도 연결된다. 그녀가 돌보는 스텔라와 앙드레가 돌보는 마리오(야니크 슈먼)는 어린이 병동의 환자들이며 이 넷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병원이라고 했듯, 젊은이들이 앓고 있는 질병은 동독 사회의 환부를, 그리고 점점 어두워지는 미래를 암시한다. 스텔라는 풀숲에 숨어서 탈출하려다 기생충에 감염된다. 노동수용소보다도 병원을 집처럼 생각하고 바바라를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스텔라는 아직 보호가 필요한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그런 아이의 몸에는 기생충이 그리고 또 다른 아이가 자란다. 마리오는 큰 수술 후에 신체 기능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지만 감정과 관련된 인지 행동이 어딘가 비정상적이다. 그는 모든 대화에서 오직 식욕에만 집중한다. 이 인물은 어쩌면 윤리적 불감증을 만성적으로 앓으며 물질적 결핍에 허덕이고 있던 동독 사회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독에서 온 카탈로그를 보던 어린 여자의 선망 어린 눈빛도, 바바라의 서독제 스타킹을 보면서 보이던 앙드레의 쓴 웃음에도 어딜 가나 결핍은 스며들어 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타인의 삶>(2006)과 같이 동독의 인권탄압이나 억압적인 시스템 자체를 비판하고자 했던 영화들과 달리, <바바라>에서 폭력의 주체는 이름이 없다. 이 영화에서는 그저 폭력의 징후만 보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병원에 실려온 스텔라(야스나 프리치 바우어)만 보게 되고, 이름 모를 슈타지에게 폭행 당한 심한 상처만 볼 수 있다. 그녀의 임신이 어쩌면 원치 않았던 것이리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바바라는 창 밖을 내내 의심스럽게 바라보지만, 매번 보이는 것은 자신의 집으로 태평하게 들어가는 이웃 뿐이다.

이처럼 의심과 불신이라는 실체 없는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무엇인지, 영화는 질문한다.

 

ⓒ (주) 영화사조제
ⓒ (주) 영화사조제

타인에 대한 편견이라는 프레임은 일순간 와해된다. 앙드레를 찾으러 갔던 바바라는 그동안 자신을 감시하고 두렵게 했던 클라우스의 집에서 그를 마주친다. 아내의 진찰 결과를 기다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는 바바라를 조사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낯선 모습이다. 바바라는 초라하고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던 그의 실체를 문 프레임 너머로 목격한다. 다음으로 앙드레는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얻어온 채소로 요리를 만들겠다며 바바라를 초대한다. 이로써 그녀는 슈타지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에게서 평범한 인간의 얼굴을 발견하며, 동료이자 감시자였던 사람에게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언제나 길 위에서 동분서주 했던 그녀는, 앙드레의 집에서 평범한 요리를 하고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곳에서도 어쩌면 평범한 일상이 다시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순간 상상했을 수도 있겠다. 동독의 유령과 서독의 유령이 아닌 유령의 삶을 청산하고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 제 3의 옵션이 등장한다.

영화의 결말은 <트랜짓>의 결말이 주는 역설과는 상당히 결이 다르며, 인류애적인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앞서 스텔라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바바라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머리맡에서 읽어주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때 복선으로 암시한 것처럼 어린 스텔라는 바바라의 도움으로 억압을 벗어나 길고 먼 모험을 떠난다. 망망 대해는 그녀를 어디로 데리고 갔을까? 자유롭고 밝은 세계? 혹은 어둡고 차가운 죽음? 영화는 이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푸른 톤의 발트해 바다는 어둡고 거칠지만, 여명은 곧 밝아 오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엔딩에서 마리오의 수술을 마치고 피로에 지친, 클로즈업 된 앙드레의 얼굴에 드디어 한 줄기 빛이 떨어진다. 오프닝에서 하염없이 주변을 떠돌던 바바라의 눈빛은 이제 한 사람을 향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진실한 사랑과 대의를 위해서 지금, 이곳에 남기를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자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따뜻하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주) 영화사조제

 

바바라
Barbara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
Christian Petzold

 

출연
니나 호스
Nina Hoss
로날드 제르필드Ronald Zehrfeld
라이너 복Rainer Bock
야스나 프리치 바우어Jasna Fritzi Bauer
마르크 바쉬케Mark Waschke
야니크 슈먼Jannik Schumann

 

수입|배급 영화사 조제
제작연도 2012
상영시간 10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3.03.21

이지영
이지영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평이한 문장이지만 사색을 담은 글을 씁니다. 투박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의 일면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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