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한국영화가 없는 당신을 위해
볼만한 한국영화가 없는 당신을 위해
  • 선민혁
  • 승인 2021.09.13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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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혁의 영화가 필요한 시간]

한국영화의 위상이 매해 높아지고,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영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영화'라는 카테고리가 의미 있게 다뤄지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아직도 새롭게 개봉하는 한국영화에 기대를 하지 않곤 한다. 실망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과잉되는 장면이 비슷한 유형으로 여러 영화에서 나오는 것을 '신파'라고 부르며 피로감을 호소하고 '어디에서 본 듯한' 전형적인 장면들에 실망하기도 하며 노골적인 메시지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 한국영화는 웬만하면 관람하지 않으려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

이 글을 통해 한국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국영화의 우수함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애국심을 가지고 국산품을 이용하듯, 한국인으로서 한국영화를 관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온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한국영화를 보았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재미도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영화 중, 흥미로웠던 정도에 비해 사람들에게 덜 주목받았다고 판단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봉된 지 오래되지 않은 작품 중, 전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영화들로 선정하였다.

 

<돌연변이> 권오광|2015

ⓒ 필라멘트 픽쳐스
ⓒ 필라멘트 픽쳐스

최근 <싱크홀>(2021)을 통해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배우 이광수가 생선의 얼굴을 가진 남자를 연기한다. 이 인물은 영화 <프랭크>(2014)의 주인공처럼 탈을 쓴 것이 아니라 진짜 머리가 생선이다. 이 남자의 이름은 '박구'로 돈을 벌기 위해 생체실험에 참여했다가 반신이 생선으로 변해버렸다. 튀는 소재로 취업 문제 등 청년세대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만 같았던 영화는 이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부조리들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주제와 SF적 소재는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섬세하게 짜인 캐릭터들은 스토리를 흥미롭게 진행한다.

 

<나의 독재자> 이해준|2014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씨표류기>(2009)를 연출한 이해준 감독의 작품으로 김일성이 되어버린 한 남자와 그 아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여러 이야기를 한다. <김씨표류기>와는 또 다른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행하는 부정에 대해 다루며 한국의 어느 시대를 비추면서 동시에 예술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나의 독재자>는 한국 영화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재로 꽤 많은 주제를 다루는데 산만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클라이막스씬에서 배우 설경구가 펼치는 강렬한 연기는 이 영화가 기록한 관객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김성호|2014

ⓒ 리틀빅픽처스 , (주)대명문화공장
ⓒ 리틀빅픽처스 , (주)대명문화공장

집이 없어 차 안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이 있다. 장녀 지소(이레)는 공인중개사무소 창문에 적힌'평당 500만 원'이라는 글자를 평당이라는 곳에 500만원짜리 집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500만 원을 조달하기 위한 범죄를 계획한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극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흔하지 않은 이 영화는 어린이들이 가진 '순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어린이들의 '순수'한 시선에 담긴 비극적인 상황은 따뜻한 색감과 동화적 분위기로 연출되며 아이러니를 이끌어낸다.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동기는 명확하며 스토리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그리고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로봇, 소리> 이호재|2015

ⓒ 롯데엔터테인먼트

딸을 잃어버린 한 아버지가 딸을 찾으러 다니다가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진 인공위성을 만난다. 이 위성은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어 소통이 가능하고,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아버지는 이 위성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딸을 함께 찾으러 다니며 교감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편견을 계속해서 부순다.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그저 그런 단순한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했던 SF요소는 충분히 참신한 소재로 다뤄졌으며 서사구조는 탄탄하다. 또한 부모와 자식, 국가와 개인이라는 주제의식을 노골적이거나 뻔하지 않게, 유연하게 전달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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