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미소에게 허락된 것
<소공녀> 미소에게 허락된 것
  • 선민혁
  • 승인 2021.09.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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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 않으면서도 특색 있는 연출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미소(이솜)의 행복의 조건은 간단하다.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 한솔(안재홍)과 함께하는 시간, 그게 전부이다. 미소는 가사도우미로 파트타임잡을 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이것들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물가가 오르기 시작한다. 담배와 위스키의 가격이 오르고, 집주인은 월세를 올려 달라고 한다. 그래서 미소는 행복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돈이 부족해진다.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할 수 없는 미소는 집을 포기한다. 지인들에게 신세를 지며, 보증금으로 쓸 돈을 모은 다음 월세가 더 싼 집을 구하려는 계획이다. 집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오면서, 미소의 여정은 시작된다.

 

ⓒ CGV 아트하우스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2007)에서처럼, 미소는 과거에 밴드를 함께했던 멤버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밴드 활동을 다시 하자고 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재워 달라는 것이다. 미소의 방문으로 인해 이들의 사연이 하나씩 소개된다. 첫 번째로 찾아간 멤버는 베이스를 치던 문영(강진아)이다. 문영은 대기업에 입사해 일을 하고 있다. 문영의 회사로 찾아간 미소는 안부를 물은 다음, 재워달라고 부탁한다. 오래 머물 수 있게 해주면 고맙지만, 하룻밤만 재워줘도 된다고, 잠만 자고 화장실만 쓰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문영은 거절한다. 혼자 살고 있긴 하지만 예민해서 다른 사람과 잠을 잘 못 잔다며. 미소는 정말 괜찮다고 이야기하고는 다음 멤버를 찾아간다.

키보드를 치던 현정(김국희)이다. 현정과는 미리 하룻밤을 묵게 해주기로 이야기가 되어있는 듯하다. 미소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계란 한 판을 사 들고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들어간다. 현정은 고통스러운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모든 집안일을 혼자 하고 있었으며 시부모는 말이 전혀 없는 편인 것으로 보이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남편과는 자주 다투는 듯하다. 미소와 현정은 과거의 즐거웠던 밴드 동아리 시절을 이야기하다가 잠든다. 다음 날 미소는 요리를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현정을 위해 반찬을 몇 가지 만들어 두고, 다정한 편지를 남긴 뒤 그 집을 떠난다.

 

ⓒ CGV 아트하우스

현정의 집을 떠나 미소가 간 곳은 드럼을 치던 밴드의 막내 대용(이성욱)의 집이다. 아파트에 사는 대용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하게 되었고 슬픔에 빠져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이다. 대용은 미소에게 이 사실을 숨기려 하지만, 쓰레기가 쌓여 있는 집 안의 모습과 울음소리로 인해 들키게 된다. 대용은 아내가 아파트를 원해서 아파트를 매입했는데, 이혼을 하게 되었다며 20년간 대출을 갚아야 한다고, 그러면 이 집이 자기 집이 되는데 그때는 낡은 집이 되어있을 거라고 울분을 토한다. 미소는 대용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고, 집을 치워주고 요리를 해주는 것으로 그를 위로해준다.

대용을 위로해주고 나서 미소가 향한 곳은 보컬 록이(최덕문)의 집이다. 미소보다 나이가 많은 록이는 연로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록이의 부모는 현정의 시부모와는 전혀 다르게 미소를 대한다. 아주 친절하며 모든 것을 미소에게 맞추어 주려고 한다. 담배마저 재떨이를 건네 주며 집 안에서 피우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목적 없는 호의가 아니다. 이들은 미소가 노총각인 아들 록이와 결혼을 하기를 원한다. 록이도 미소에게 결혼을 제안하기도 한다. 미소는 거절하고 다음 날 아침 서둘러 록이의 집을 떠나려 한다. 일어나보니 집 안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문은 모두 밖에서 안으로 잠겨 있다. 미소가 나갈 수 없도록 록이 가족들이 막아 놓은 것이다. 미소는 겨우 잠기지 않은 문 하나를 찾아내 탈출을 하고, 그 와중에 잘해 주셔서 고맙고 건강하라는 편지를 남긴다.

 

ⓒ CGV 아트하우스

미소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멤버는 기타를 치던 정미(김재화)이다. 고급주택에 살고 있는 정미는 안 그래도 남편과 아이, 셋이 살기에는 집이 너무 넓었다며 미소를 환영해주고 오래 머물러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미소에게 정미는 대학 시절 다단계에 잘못 들어가 빚을 지게 된 자신에게 미소가 돈을 꿔준 일을 아직 못 잊는다며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미소는 그걸 기억해줘서 자신이 더 감동이라며 집에 머무르는 동안 자신의 적성을 살려 집안일을 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정미는 미소는 자신의 손님이라며 그냥 편하게 있으라고 한다. 그래서 미소는 편하게 지낸다. 정미의 집에 머무르며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위스키와 담배를 즐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소는 쫓겨난다. 정미의 남편과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눈치 없게 행동했다는 것이 이유이다. 정미는 100만 원을 주며 보증금에 보태서 얼른 방을 구하라고 하지만 미소는 받지 않고 정미의 집을 떠난다.

미소는 방을 구하러 다닌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돈으로는 상태가 매우 안 좋은 집밖에 구할 수가 없었다. 영화는 결말부에서 텐트에서 지내고 있는 미소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소는 백발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있었는데, 이 약에 대한 비용도 구하지 못했는지 결말부의 그녀는 백발이 되어있다.

 

ⓒ CGV 아트하우스

'소공녀'로 표현되기도 하는 미소는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할 만하다. 자신에게 무례한 사람에게도 친절하며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다른 이를 돕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을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화류계 종사 여성이 해고를 통보할 때도, 일자리를 잃은 자신의 상황보다는 자신을 해고할 수밖에 없게 된 고용주의 사정을 공감하며 그녀를 위로해준다. 남자친구 한솔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떠나는 것이 싫지만, 그에게 가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미소는 밴드 멤버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각만 해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런데 타의 모범이 된다고 할 만한 이 인물에게는, 제대로 된 방 한 칸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가까운 사람들을 마냥 아끼는 착한 미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저 '호구'가 될 뿐이다.

미소는 정말 위스키와 담배, 남자친구만 있으면 행복했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미소는 오로지 그것들만을 위해 살지는 않는다. 그것들과 관계없는 것들에도 신경을 쓰며 아무 집에서나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미소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신의 이익 대신 타인을 위하고, 빚을 지는 것이 싫다며 대출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실물 지폐를 차곡차곡 모으는 것만으로 자산을 축적하는 미소에게 결코 많은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선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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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것은 현실을 잊게 해주기도 하고, 더 자세히 보게 해주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부분들을 기억하고 공유하고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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