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지상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언더그라운드' 지상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 이현동
  • 승인 2021.08.2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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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노동의 반복적인 운동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도착지점을 찾아서"

선생님으로 보이는 어른이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다. 세팅된 액자 모형 뒤에 서서 아이들은 각각 포즈를 취한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미소를 요구한다. 그들의 프로필을 위해 관성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어른과 아이들의 관계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노동'이란 프레임이 분명하다. 끊임없이 인류의 생성과 변화를 이끌었던 그 노동. 마르크스가 외쳤던 "노동이 인간을 만들었다"라는 그 노동. 노동이란 무형의 존재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긴밀하고도 밀접하게 접촉한다. 필자는 노동이란 단어에서 프리츠 랑의 <메트로 폴리스>(1927)의 오프닝 장면에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인위적이며 가공된 움직임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1936)에서 공장의 기계로 변모한 인간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 (주)시네마달
ⓒ (주)시네마달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어떨까.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찬미하는 영화일까. 아니면 필자가 바로 떠올렸던 노동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묘사일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프레임 속에 결박되어 있는 아이들의 미소는 <언더그라운드>의 농밀하게 박제된 인간의 상태, 바로 노동이라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인간이란 존재를 반영하듯 펼쳐진다. 아이들은 직업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기계에 대한 실습과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성운이라는 학생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인부들의 모습은 <언더그라운드>가 시종일관 암시하는 현재의 노동의 방향성을 묻게 된다. 김정근 감독과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터뷰들, 빛과 불통하는 인부들의 이미지들은 시대가 자문하는 노동의 음영이다.

지하철 문이 일제히 개방되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비좁은 사이를 교차하는 장면, 계단을 오가며 정처 없이 떠도는 시선의 행방은 온통 노동이란 도정위에 좌초한 건조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와 동시에 열차의 이곳저곳을 쪼이고, 치고, 푸는 인부들의 손길과 그 위를 잠잠히 횡단하는 책임 감수, 안전운행이라는 표지판은 은밀하게 코드화되어 있는 노동의 표지들이다. 바퀴의 공정을 담당하는 청년의 최초 인터뷰에서 그는 손가락을 심하게 다칠 뻔했다고 말한다. 그동안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아래의 세상은 어느새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지상과 또 다른 지상을 잇는 소외된 장소로 여겨졌던 <언더그라운드>의 골격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이 공간의 구성은 어떤 스타일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지하는 비밀, 밀폐된 공간이 아닌 익숙한 노동의 풍경으로 구현되면서, 지상과 지하의 구분은 온전히 일소된다.

 

ⓒ (주)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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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지하철에 존재하는 계단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나름 자부심이 있다. 그게 노동의 숭고함과 거창한 말은 아니지만, 분명히 노동에 할애하고 있는 그들의 미소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유머다. 쉬는 시간에 오손도손 모여 밥을 먹고, 좁은 방에서 낮잠을 청하기도 하며, 감독이 인터뷰를 청할 때, 유쾌하게 대답한다. 이 시퀀스가 지나면 곧 CCTV가 버려진 음식들과 쓰레기들을 보고 임무를 하달하는 장면, 기관사가 마지막 열차를 이끌고 퇴근하는 쇼트들이 서로 교차되며 지하와 지상의 광경이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진입한다. 기관사가 퇴근하면 반대로 어둠을 향해 진입하는 사람들이 있다. 철도 레일을 확인하는 인부들의 일상은 지하철이 운영되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지하철의 안전을 담보로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건강을 헌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마스크를 쓰고, 지하의 오염된 공기를 필연적으로 흡입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그들은 생존, 그러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반부에서 <언더그라운드>는 감독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노동자 대우의 개선에 관한 이야기. 정규직 전환에 관한 이야기다. 노조 활동에 대한 내용을 듣는 노조원들에게 마지막에 구호 제창을 요청하는 임원의 목소리는 힘이 있지만 노조원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강요된 몽타주로만 잔재한다. 그들은 외친다. "제대로 된 정규직화 우리 힘으로 쟁취하자" 이 구호는 이제부터 영화의 주제로 메아리치기 시작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분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팀장을 맡고 있는 인부의 인터뷰가 서늘한 현실을 겨냥한다. 가족들을 부양하기에 턱 없이 부족한 비정규직 임금(170~180만 원)에 이 어려운 일을 누가 하겠냐며 간절하게 호소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팀장이 다른 인부들에게 '즐겁게 놀자’라고 말하는 쇼트에서 침식된 노동의 아이러니들이 부조리하게 드러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분에 대한 토로들, 출근과 퇴근하는 지하철에 잔존하는 노동자들의 반복적인 손길들의 쇼트들은 노조의 구호들이 마찰하면서 주제의식을 일구어낸다.

 

ⓒ (주)시네마달

<언더그라운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학생 성운은 처음에는 취업할 생각이 없었지만, 선생님께 상담을 받고 취업 상담회에서 직업을 선택하기도 한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당위적인 성운의 움직임 속에 노동은 이제는 시각화되고, 노동의 실태를 직시하게 한다. 게다가 무인화로 인해 매표소와 같은 업무들이 사망 산업으로 치부되는 과정에서 해고되는 사람들의 인터뷰들은 영화 후반부의 아카이빙과 적확하게 접합한다. 공장을 매매하는 전단지, 기계, 안전모, 그리고 공장을 미들 숏과 롱숏으로 번갈아 보여주는 쇼트들. 취직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직업 교육을 받는 플롯은 음울한 현실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컴퓨터 화면에 비친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빠른 속도로 누르는 연습을 한다. 언젠간 소멸될 수 있는 손길을 의지하면서 있는 힘껏 속도를 내서 버튼을 눌러본다. 엔딩에서 <언더그라운드>의 열차는 지상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달린다. 노동과 노동을 연결하기 위해. 편재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든 증명하기 위해.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주)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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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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