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베킷' 어딜 그렇게 가려는가
[NETFLIX] '베킷' 어딜 그렇게 가려는가
  • 이현동
  • 승인 2021.08.1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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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동분서주하는 베킷의 발걸음이 부여하는 의미들"

첫번쨰 장편영화 <안토니아>(2015)로 제50회 카를로비바리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이틸리아 감독 페르디난도 시토 필로마리노(Ferdinando Cito Filomarino)의 영화는 그의 주목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국내에는 덜 소개됐다. 화면의 움직임을 주축으로 내러티브와의 어떤 기묘한 관계를 단조롭고도 환상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독특한 특성은 앞으로도 그의 역량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기조로 비평가들의 좋은 평을 끌어냈다. 그의 두 번째 장편인 <베킷>(2021)은 이전 작품보다 대중성을 가미한 것으로 순간순간 번뜩이는 감독의 재치들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킷>은 혹평을 받을만한 치명적인 단점도 동시에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두 번째로 추락과 상승이라는 반복되는 쇼트의 의미, 마지막으로 맥거핀 효과(Macguffin effect)에 의거해서 부정적인 측면을 서술하고자 한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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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이 사회를 구원하는 신의 선택이란 기로에 서서

베킷(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그의 여자친구 에이프릴(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낭만적인 여행은 그리스의 '아오 아니나'라는 관광도시에 위치한 어느 호텔에서 시작된다. 둘 사이의 스킨십과 교차하는 쇼트로 "신탁은 무엇이었는가"(What did the Oracle say?)라는 문장과 에이프릴이 베킷에게 새겨주는 하트 문양에서 묘연하면서도 어떤 총체화 할 수 없는 의미에 대해서 묻게 된다. 신화적 공간으로 총칭되는 그리스는 앞으로 베킷이 경험하게 될 사건에 대한 신탁의 필연성을 지시하고, 더 나아가 에이프릴의 낙서는 그녀 자신의 생명을 베킷에게 전가함으로 신의 뜻에 적합한 일을 돕는 역할로써 일부 레테르적인 요소가 있다고도 느꼈다.(필자는 이를 맥거핀(Macguffin)이라 생각하지만, 맞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다음과 그다음 쇼트에서 파괴된 신전과 그리스의 시위 현장이 TV에서 방영되는 이 일련의 쇼트들의 강조점은 파괴되어 있는 현실을 조율하고 교정하는 역할을 하게 될 베킷의 역할을 은연중에 예고하는 쇼트들이다. 다른 숙소로 이동하는 에이프릴과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면 베킷은 지극히 개인적인 인물이다. 에이프릴이 도착할 숙소에 늦었으니 연락을 미리 하자고 하자 베킷은 그 사람들 일이라며 연락을 만류하기도 한다.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진 베킷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사회를 구원하는 인물로 변모하는 지점에서, 그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봉합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졸음운전으로 여자친구를 잃게 된 베킷이 그 현장에서 목격한 것은 '카라스'라는 부호의 아들인―납지되었다고 알려진―디모스 카라스였다. 사건의 발단이자 원흉인 디모스의 행방은 서사의 흐름에 있어서 실낱같은 단서이며, 베킷이 당도하게 될 최종적인 목적지가 될 것을 예고한다. 결국 베킷은 자신 때문에 여자친구를 잃었다는 죄책감으로 자신이 이전에 처방받았던 '졸피뎀'이란 약으로 에이프릴이 사망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 목숨을 끊고자 한다. 바로 그때 마주한 것은 그의 죽음이 아니라 그의 사고를 조사하던 경찰의 총성이었다. 이때부터 영화는 급격하게 서스펜스라는 장르적으로 충만한 활극을 선보이며 속도에 박차를 가한다.

 

2. 추락과 상승, 반복된 쇼트는 무엇을 말하는가? : 과유불급으로

<베킷>에서 '그리스'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기시감 같은 것이 있다. 생각해 보자. 왜 그리스일까. 신화적 공간에서 지상적 공간으로써 이행하며 그 사이에서 추락하는 베킷의 활공은 추락과 상승이라는 반복에 의해 구성된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탁을 받아 인간에게 신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신의 사자로 불리는 헤르메스(Hermes)라는 신이 인간세계로 내려가서 그 목적을 수행하듯이 베킷은 결국 신탁을 수행하는 포지션에 처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만 같다.

<베킷>의 이러한 앵글의 움직임은 세 가지의 시퀀스와 내러티브를 관통하는 측면이 존재하는데, 하나의 시퀀스에는 개인주의적인 한 인간이 추락하고, 또 하나의 시퀀스는 쫓기던 그가 살기 위해 땅으로 추락하고, 마지막에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추락한다. 언급했듯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베킷이 자살을 시도하다가 최초에 쫓김을 당하는 장소가 '산'이었던 점,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열차에서 다시 조우한 조직리더의 손아귀를 벗어나 탈출에 성공하여 대사관으로 가는 길도 내리막이었던 점, 후반부에 도주하는 조직 리더를 보며 고층 주차장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그의 도주를 저지했던 점,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모두가 죄를 심판하는 방법으로써의 신탁으로 발화한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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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카메라 움직임과 내러티브를 심층적으로 세공하는 지점에서 주요했던 점 두 가지는 먼저 '한 개인을 추락·추격당하는 주체 혹은 고립된 존재로서의 긴장과 두려움을 어떻게 그려내는가'와 '행위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이유에 대한 해답'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베킷>은 베킷이 추락해야만 하는 이유를 정치적인 맥락, 또 하나는 물질만능주의라는 뻔한 클리셰를 끌어들였고, 이를 이끌어 낸 마지막 장면의 베킷의 몽타주와 대사에는 여자친구인 에이프릴에 대한 죄책감만이 유랑하여 떠돌아다닌다. 영화에 뒤죽박죽 섞여 있는 주제의 기호들은 정처 없이 부유하다가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대중들에게 도달한다. 오죽했으면 <베킷>의 여러 리뷰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말이 '졸음운전을 주의하자'일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이 영화에는 적절한 것 같다.

 

3. 침소봉대 : 이는 맥거핀인가

이제 <베킷>에 '맥거핀'을 이야기할 차례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싸이코(Psycho)>(1960)와 <북북 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1959)와 같은 작품들에서 유래한 맥거핀은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의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 극적인 장치를 뜻한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장치로 대중들의 시선을 교란시키고, 결국에는 서스펜스의 장르를 역동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서두에 상술했듯이 '신탁'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 굳이 이 장면과 연관성 있는 이야기 하자면 스티븐 타이넌(보이드 홀브룩)에게 쫓기던 베킷이 사회주의자들이 근무하는 건물의 벽화가 기도하는 장면이라는 장면이 딱 하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왜 '졸피뎀'을 복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수면장애를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복용하는데, 한 알을 복용한 베킷이 폐차된 차에서 잠을 청하는 부분을 위한 의도에서 먹게 되었는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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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묘연함 들이 축적되어 있는 <베킷>은 분명히 은폐된 진의가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부재한 지평들 때문에 영화에서 할애하는 기능적이면서 서스펜스라는 장르적 쾌감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퇴보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까 기억에서 탈주하는 이미지들을 그저 맥거핀이라고 믿어야 할지, 이를 분명한 상징이 있다고 사유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영화의 막바지에 베킷이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신체의 어떤 결함도 없이 끝까지 범죄자를 생포하는 장면에서 실소를 머금게 된다. 슈퍼 히어로도 아닌 인간인 베킷의 초인적인 능력이 결국에 여자친구를 잃은 죄책감에서 나온 완력이라는 점은 영화가 초반에 쌓아온 장르적인 힘을 순식간에 상실하게 한다. 조금만 차분하게 영화를 집도하면 어땠을까. 다음 영화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아쉽게도 <베킷>은 과유불급에 이어서 침소봉대라는 말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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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킷
Beckett
감독
페르디난도 치토 필로마리노Ferdinando Cito Filomarino

 

출연
존 데이비드 워싱턴John David Washington
알리시아 비칸데르Alicia Vikander
보이드 홀브룩Boyd Holbrook
빅키 크리엡스Vicky Krieps
대프니 알렉산더Daphne Alexander
파노스 코로니스Panos Koronis
레나 키초풀루Lena Kitsopoulou
안드레아스 마리아노스Andreas Marianos
마르크 마르데Marc Marder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8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1.08.13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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