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나이트> 멈추지 않는 운명의 수레바퀴
<그린 나이트> 멈추지 않는 운명의 수레바퀴
  • 이지영
  • 승인 2021.08.13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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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믿어라. 덕성은 파도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

 

'데이빗 로워리'는 전복된 영웅의 초상을 어떻게 그렸는가

카롤루스 보빌루스의 <지혜에 대하여>(Liber de sapiente, 1510)

마키아벨리는 그의 유명한 대표 저서 <군주론>에서, 군주가 되려는 자가 비르투(탁월함, 용기)로 포르투나(운명)를 제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1) 위 그림은 그와 동시대를 살아간 프랑스 사상가 샤를 드 보벨의 책에 나와 있는 목판화로, 운명의 여신과 지혜의 여신이 마주 보며 앉아있는 그림이다. 운명의 여신은 두 눈을 가리고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고, 지혜의 여신은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고 있다. 한편, "비르투를 믿어라. 포르투나는 파도보다 더 순식간에 사라진다."라는 뜻의 현판은 마키아벨리의 지론과도 일맥상통한다.2) 이는 인간의 능력과 덕목으로 운명을 이길 수 있다는 근대적 믿음이며, 인본주의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2021)에서는 이 유명한 개념을 다시 전복하여 왕위에 오를 자에게 기사로서 비르투를 요구하는 사회적인 게임, 그리고 이 규칙을 압도하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고스트 스토리>(2017)를 포함하여 전작에서 삶과 죽음의 역설에 천착했던 로워리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이라는 불가분의 관계를 조망한다.


 1) <Niccolò Machiavelli>, Stand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19.05.28

 2)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2)] <포르투나와 비르투>, 경향신문, 2013.05.31

 

1. 중세 기사도의 안티테제

중세에서부터 오늘날까지도 영웅 서사는 복잡한 난제를 주고 그것을 영웅의 능력이나 덕성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을 주로 그렸다. 용맹, 자비, 인고, 의리, 순결까지의 덕목들이 가웨인(데브 파텔)에게도 단계마다 요구되지만, 그는 어떤 과업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그는 매음촌에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하는 한량 귀족 자제로, 아서왕에게 바칠 기사로서의 무용담이 전무한 상태이다. 하지만 왕좌에 욕심이 있던 그는 후일을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모험에 지원한다.

 

ⓒ 찬란

이 주인공은 출정을 떠나자마자, (아마도 스스로는 하찮게 생각했을) 자비를 베풀어 달라던 부랑자(배리 키오건) 무리에게 강도를 당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기사라는 사실을 허무하게 부정한다. 성 위니프레드라는 유령의 머리를 찾아달라고 했을 때는 그에 대한 대가를 바랬기 때문에 자비의 덕목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다. 마지막 성에 머물며 옛 연인 에셀의 얼굴을 한 성주 아내(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유혹에 넘어가고 순결과 정직이라는 미덕을 지키지 못하며, 생명을 부지해주는 노끈을 받아서 용맹하지 못함을 증명하기도 한다. 녹색 기사를 다시 조우하는 대미를 장식할 순간조차 자신의 죽음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친다.

스스로 용맹한 기사임을 증명해야 했던 이 여정은 성주의 아내가 "당신은 기사가 아니에요."라고 선언하는 한 줄 대사처럼, '기사가 아님'을 증명하는 여정이 되어 버린다. 마키아벨리에서 포르투나는 여우라는 동물에 비유되는데, 그를 녹색 예배당으로 인도하던 운명의 화신 같던 여우마저도 마지막 순간에는 '죽음의 길' 밖에는 없다고 그를 일깨우고 동행을 포기한다. 모든 측면에서 영화는 중세 기사도 영웅 서사의 안티테제이다.

 

2. 기독교적 알레고리의 변주

<그린 나이트>의 서사는 명징하게 드러나는 기독교적 알레고리도 한번 비튼다. 먼저 영화의 시간적 배경부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이며, 1년 후 녹색 기사와 다시 조우하는 날도 성탄절이다. 광야를 헤매는 가웨인의 여정은 예수의 수난, 광야의 기도를 떠올리도록 한다. 하지만 이 주인공은 마치 유다처럼 누군가를 배신하기도 하고, 베드로처럼 기사도 정신을 부정한다. 즉 그는 잘못 선택받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절대자의 탄생에 대한 블랙 패러디가 아닌가? 

신약에서 예수의 탄생만큼이나 중요한 사건은 그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것을 가웨인의 이야기에 적용해본다면, 군중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만큼이나 비장한 최후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가 홀로 감내해야 하는 두려움과 고통에 대해서는 무심하게 관조한다.(인형극 씬에서 관중은 그가 죽는 장면에서 심지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 찬란

이 모든 고통을 겪도록 한 사람, 운명의 주관자는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이다. 마치 전지전능한 '아버지'가 독생자가 십자가를 지도록 인간세계로 보낸 것처럼, 그녀는 능력도 덕목도 부족한 아들이 불행하게 몰락하게 될 것을, 비전을 통해 보지 않았을까? 알았다면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인가? 두 가지 가설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왕좌에 오르는 것은 원래 지난하고 비열한 과정임을 알고 있었고, 어떤 수단으로든 그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둘째, 아들의 그런 운명마저 거스르지 않고자 한 무심하고도 공정한 자연의 섭리, 대자연 어머니를 스스로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영화의 풍성한 텍스트는 어떠한 해석에도 편들지 않는다.

기사도와 기독교적 알레고리의 전복과 변주는 카메라 움직임과 이미지로도 완성도 높게 구현되었다. 광야에서 쏜살같이 달려가던 카메라는 180도 피보팅 샷으로 시선을 전복한다. 영주의 성에서 부인이 가웨인에게 그려주는 초상은 위아래가 거꾸로 된, 그 자신에 따르면 '어딘가 기묘한 초상'이다. 이것은 그가 출정하기 전에 위엄 있게 그린 초상화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색채의 대비 또한 인상적이다. 서막에서 가웨인은 왕좌에 금빛 왕관, 금빛 옷을 입고, 왕권을 상징하는 보주와 홀을 양손에 들고 있다. 그리고 성스러운 불길이 머리에서 타오르는 장면은 성스러운 기운과 생명력을 내뿜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왕위에 오른 가웨인의 모습은, 서서히 이끼가 끼고 녹슬어가는 오래된 성처럼 초록색 죽음의 색조를 띠고 있다.

 

3. 운명이 주관하는 원형적 시간

영웅이 아닌 인간, 필멸하는 인간이 아무리 가공할 만한 힘으로도 대적할 수 없는 상대는 그가 태어나고 다시 돌아갈, 영원히 재생하는 자연일 것이다. 녹색 기사는 가웨인의 어머니인 마녀 모건 르 페이(사리타 초우드리)가 주술로 소환한 것으로 나온다. 보벨의 목판화에 나오는 두 눈을 가린 운명의 여신처럼 그녀는 흰 천으로 눈을 가리고 불확실성에 그녀의 아들을 던져 넣는다. 운명의 여신이 수레바퀴를 관장하듯이, 모건 르 페이는 주로 원형(圓形)적인 이미지와 연관된다. 그녀가 녹색 기사를 소환하기 위해 주술을 쓸 때, 카메라가 하이 앵글샷으로 둥글게 배열된 재료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 안에서 자연을 상징하는 듯한 작은 이파리 하나가 싹튼다. 영화는 이 장면과, 원탁의 한 가운데서 녹색 기사를 대적하게 된 가웨인(데브 파텔)을 병행 시퀀스로 보여주며 운명 가운데 던져진 그의 처지를 암시한다.

 

ⓒ 찬란
ⓒ 찬란

원형은 매년 돌아오는 계절처럼 시간의 순환적 흐름을 나타내기도 한다. 녹색 기사가 떠난 후, 길거리에서 공연되는 인형극의 뒷배경은 물레처럼 돌아가는 둥근 나무판자인데, 가웨인에게 주어진 유예된 1년을 물성이 있는 장치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가웨인이 부랑자 무리에게 말과 무기를 빼앗기고 몸이 결박당하는 시퀀스에서, 360도 패닝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샷은 근래 본 중에 가장 인상적인 패닝이다. 스위시 팬(퀵 팬)과는 다르게 이 카메라는 자연의 변화를 하나하나 담으며 아주 천천히 이동하다가, 원래 같은 자리로 돌아와서 남아 있는 가웨인의 해골을 비춘다. 특히 중세 정물화에서 유한한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였던 해골의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4. 게임의 역설적인 규칙

잠시 영화 밖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대중의 수요를 재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 나름대로 탁월하다고 해야 할 지, 제작사 A24 필름은 영화를 개봉한 지 오래지 않아 <그린 나이트> RPG 게임을 출시한다. 사실 영화 자체에는 현대인들에게 오락적인 재미를 주는 게임 판타지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그런 장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숲에서 해골로 변했다가 다시 여정을 계속하는 장면은, 게임에서 '죽었다가' 생명을 채워서 다시 게임을 재실행하는 플레이어를 보는 듯한 인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흔한 중세 시대물처럼 지략과 암투가 횡행하는 대신에, 서사의 중추가 되는 '게임'의 룰은 아주 단순하지만 거대한 역설을 품고 있다. 자신의 과업을 마치 저울에 달듯이 똑같이 돌려받는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언뜻 보면 공평한 듯하지만 녹색 기사는 영원불멸하기 때문에, 애초에 공평할 수 없는 게임이다. 결국 이 게임은 자신의 죽음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 증명하는, 덕목에 대한 시험일 것이다. 여기서 큰 모순이 발생하는데, 가웨인은 왕이 되고자 한다면 죽는 길을 택해야 하고, 죽음을 영웅답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왕좌를 차지하지 못한다. 자신의 비열함을 평생 숨기고 살자니 괴롭고, 아무도 모르게 죽자니 억울하고 두렵다. 이 가장 인간적인 번뇌를 보고 녹색 기사는 웃으며 "너의 머리를 두 동강 낼 것"이라고 다정히 말하는데, 이 장면은 영화가 던지는 최고의 유머이다.

 

ⓒ 찬란
ⓒ 찬란

가웨인은 중세 기사도에서 인위적으로 제거해버린 반-덕목들을 그러모아 한 몸에 체화한 반-영웅이다. 그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요행으로 자신이 원하는 권력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는 척하면서 결국은 한 번의 구원을 바라는, 어찌 보면 가장 인간적인 면을 가진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론에서 인용했던 말을 뒤집어보자.

 

"포르투나를 믿어라. 비르투는 파도보다 더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문장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발버둥 쳐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을 믿어라. 한때의 용맹함, 지혜, 자비, 의리, 사랑은 너무도 쉽게 파도에 떠밀려 흩어진다. 원문도 인간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정확한 문장이지만, 뒤집은 문장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다. 21세기에 재탄생한 아서왕 시절의 신화는 더 냉철하고도 현실적인 교훈을 남긴다. 바로 영웅이 찬란히 빛나는 만큼 그에 합당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것, 명예에는 고통이, 생명력에는 부패가 따른다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화는 몰락한 왕국에서 왕관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와 같이, 부패한 퇴적물 위에 새로운 이파리가 또 싹을 틔우면서 운명과 시간의 수레바퀴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돌아갈 것 임을 전망한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감독

데이빗 로워리David Lowery

 

출연

데브 파텔Dev Patel

알리시아 비칸데르Alicia Vikander

조엘 에저튼Joel Edgerton

사리타 초우드리Sarita Choudhury

랄프 이네슨Ralph Ineson

케이트 딕키Kate Dickie

배리 케오간Barry Keoghan

숀 해리스Sean Harris

 

수입 찬란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0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08.05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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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한 문장이지만 사색을 담은 글을 씁니다. 투박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의 일면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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