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나이트' 영원회귀의 대서사시
'그린 나이트' 영원회귀의 대서사시
  • 이현동
  • 승인 2021.08.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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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원형'으로 채색하는 확실한 방법에 관하여"

 

프랑스 영화감독 '아벨 강스'(Abel Gance)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 (…) 모든 전설, 모든 신화, 모든 종교의 창시자, 모든 종교까지도 필름을 통해 부활될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 모든 영웅들이 영화의 문전에 몰려들고 있다.

 

 

최초의 영화라는 매체가 등장하고 나서 현재까지 기존 서사를 부활시키는 방식의 영화가 아벨 강스가 예고했듯이 이어져왔다.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가 영화를 "초당 24개의 진실"이라 함과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가 이를 전복하여 "초당 24개의 거짓"이라 설파함은 다름 아닌 영화라는 매체가 이 중간 사이의 경로에서 유랑하는 무의식적 탈선의 극치를 이루기 있기 때문이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가 이렇게 말했다. "진리(사실)는 없고, 해석만 존재한다"(Tatsachen gibt es nicht, nur Interpretationen)고.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니체의 이 격언은 끊임없이 부활한다.

영화라는 매체에서 동일하게 통용되어 생생하게 축적되는 시각적 이미지들은 진실로 남지 않고 해석으로 남는다. 필름 매직은 결국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생의 아포리아를 체험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파 하면서 영화는 살거나 혹은 죽거나 부활한다. 아벨 강스의 말처럼 영화는 어떤, 그 모든 것으로 대중들의 문전 앞을 서성거리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연료를 장착한 채 다가오는 열차처럼 움직인다. 여기 그런 영화가 있다. 문전을 서성거리는 것도 모자라 문을 뚫고 내면에 스며들어와 인장을 새기는 그런 영화. <그린 나이트>(2021)가 바로 그 예가 될 것이다.

 

ⓒ 찬란

데이비드 로워리(David Lowery)의 <그린 나이트>는 침식되어 있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맺는 범지구적인 이야기를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라는 중세 서사를 전복하여 진격한다. 그리고 온전한 방식으로 동시대성을 부여하며 부활한다. 우선, 그의 전작인 <고스트 스토리>(2017)와 <그린 나이트>에는 일원화된 지평들이 내재하고 있다는 측면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유령이 차용되는 방식은 '신체'를 활용하지 않는다. CG를 통해 식별되지 않는 유령을 묘사함으로 '공포'를 극대화하거나 혹은 '유머'에 대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고스트 스토리>의 고스트는 죽음 뒤에 침대보를 덮고 있는 한 생명체로 부활하면서 이내 곧 그가 응시하는 시선은 시간과 공간을 해석하는 동기로써 매설된다. <그린 나이트>는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애증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지점에서 '그린 나이트'의 의인화는 자연의 은유이자 표상이다. 일원화의 주체는 결국 인간과 세계가 맺는 관계이며 이로 인해 회귀하게 되는 인류의 형상을 상징적으로 모사한다.

<그린 나이트>는 그리스도의 태어남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와 등가적인 표현으로 정직하고 신실한 기사로 알려진 가웨인의 탄생을 여기저기서 축하하며 원탁에 기사들과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왕비는 가웨인을 비롯한 기사들에게 무용담을 재촉하며 '기사'의 덕목을 강조한다. 하지만 가웨인은 단 한 번도 기사로써 자신을 내세운 적도 없으며 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전연 묘사되지 않는다.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에서 묘사된 명예로운 기사 가웨인은 <그린 나이트>에서 섹스와 물질, 그리고 사사로운 명예욕과 탐욕을 추구하는 문명사회의 욕망의 주체자로 등장하며, 결국 그린 나이트의 목을 베면서 1년 뒤에 녹색 예배당으로 찾아오라는 약속과 함께 이 여정은 시작된다. <그린 나이트>에서 지속적으로 명멸하는 두 가지의 지평이 존재하는데, 이 지평은 영화의 방향성을 인상적인 방식으로 제시한다. 하나는 색, 또 하나는 원형이라는 지평이다.

"색체는 밝음과 어둠의 만남이고, 모든 색채는 그 경계선(Grenze) 상에서 만들어진다." - 괴테

왜 제목을 <그린 나이트>로 상정했을까. 녹색은 기본적으로 생명, 번영, 생산, 신선 등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연을 떠올리게 된다. 데이비드 로워리는 '녹색'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를 문명사회와 자연과의 관계를 녹색이란 색채로 병합하고 병치함으로써 전시적인 영화적 감상을 가능케 한다. 영화 초반부에 '가웨인'(데프 파텔)에게 목이 잘린 '그린 나이트'(랄프 이네슨)는 도끼를 떨어뜨린다. 도끼가 떨어진 곳에 피가 스며들다가 이내 녹색 이끼가 생성되는 장면은 생명의 재탄생의 신호로 관철된다. 이 장면은 도래하게 될 문명사회의 자연 파괴, 생성, 파괴라는 반복적인 구현 방식, 마치 <고스트 스토리>에서 붕괴된 집이 그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방식을 동일하게 구현하면서 이 메시지의 지향은 가웨인, 혹은 인간이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를 묻는 잠재태, 혹은 현실태적 발상이 녹색에 담겨 있게 되는 것이다.

 

ⓒ 찬란
ⓒ 찬란

다음으로 그가 성 위비 프레드와의 만남이라는 챕터에서 마주한 그녀의 부탁은 집 앞에 있는 호수 안에서 자신의 머리를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머리를 찾는 장면에서 앵글은 최초에 물에 빠진 가웨인을 상승과 추락이라는 기이한 움직임으로 어떤 변질적인 모순을 나타내고, 그사이에 깃든 배경은 빨간색으로 전환되었다가, 이내 파란색으로 변주하면서 자연이 내재하고 있는 위험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대비는 영주의 부인의 나누는 대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피의 색인 빨간색은 욕망을, 녹색은 욕망이 추동하는 정열이 사라졌을 때 남겨진 흔적이라 말한다.

결국 욕망(빨간색)으로 가득 찬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지만, 필연적으로 그 흔적을 응시할 수밖에 없는 어떠한 인간의 불완전함을 자연과의 연속성 안에서 상기할 수밖에 없음을 지시한다. 그가 영주의 부인을 통해 얻게 되는 녹색 띠도 그런 점을 직설적으로 반영한다. 영주의 부인과 가웨인의 성적인 스킨십이 발생했던 그 순간에 정액이 녹색 띠에 묻는 것도 인간의 '욕망'이 자연에 묻게 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자연과 깊은 관계를 형상하고 있는 녹색 띠의 실체는 인간의 죽음과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약관화하게도 이 영화의 메시지를 자연이란 꼭짓점을 향해 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그린 나이트>가 투사하는 어떤 색과 색이 이루는 대립항과 같은 속성들은 영화를 장악하는 에너지로 강렬하게 침전되어 시종일관 부유한다.

 

'원형'이란 기호로 진입하는 경로에서

원형은 인간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생이란 것이 원형을 이루면서 영원히 반복되는 영원회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삶의 굴레 속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는 출생과 죽음은 원형 속에서 반복적으로 태동하고 반복적으로 멸절한다. <그린 나이트>에서 부지기수로 등장하는 이 원형은 인간과 자연이 생존할 수 있게 하는 근원적인 에너지로 필연적이며 선형적인 방식으로 구현된다. 그린 나이트가 출현하기 전에 왕과 함께 원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출신성분을 '기사'로 한정 짓지 아니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걸치고 있는 정돈되지 않은 옷매무새와 몽타주들은 지구에 거처하는 인류가 원형이라는 동일한 일상성에 기거하는 것을 드러내고, 가웨인과 그린 나이트의 사건을 묘사하는 인형극 쇼트에서의 뒷배경도 원형으로 한 번은 가웨인이 그린 나이트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 등장했다가, 반대로 돌 때에는 그린 나이트가 가웨인의 목을 자르는 장면을 비추기도 한다.

 

ⓒ 찬란

원형이란 형상을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내는 카메라 앵글이 두 부분이 있는데, 강도를 당해 묶여 있는 가웨인의 오른쪽으로 천천히 패닝되어 비추는 쇼트는 자연의 오염을 점차 가리키면서 해골로 변해버린 그의 모습을 조명하고 다시 왼쪽으로 패닝 되어 돌아온 가웨인은 줄을 끊고 탈출하는 장면에서의 원형은 영원회귀 하는 인간의 모습을 지시한다. 이와 동일한 쇼트가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전쟁의 위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상황에 처한 가웨인의 몽타주를 기점으로 왼쪽으로 패닝 되어 돌아올 때 그가 허리춤에 매고 있던 녹색 띠를 분리하자마자 그의 목이 잘리며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쇼트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놓인 인간의 상태를 암시한다.

<그린 나이트>는 모든 오브제들이 색과 원형이란 기호로 매설되어 있으며, 데이비드 로워리의 지평을 통해서 일원화된 세계와 존재론적인 결합을 이루면서 산재하고 있는 상징들을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묶는다. 인간과 자연의 애증 속에 발현하는 인류의 종말. 그리고 회귀하는 본래의 모습. 반복. 그리고 또 반복. 결국 <그린 나이트>는 '색'과 '원형'이라는 기호를 가지고 일관적인 태도로 말하는 영화다. 그러니까 이를 드러내는 몇 가지 소품을 나열하자면 눈을 가리고 있는 하얀 띠(문명사회가 접근하지 못하는 자연적 순수함과 같은), 인간의 머리, 영주 부인이 가웨인에게 주는 원형의 책과 녹색 띠, 영주 부인이 그려준 가웨인의 초상화가 태양(원형)을 통해 완성되는 어떤 근원적 에너지에 대한 고찰, 강도에게 준 동전 등등의 상징들인데, 이는 영화의 에너지가 결코 분산되거나 좌초되지 않는 견고하고도 촘촘한 구성을 엮어내면서 주제 의식이 기민하게 이미지로 묶어 대중에게 전달한다.

<그린 나이트>를 감상하면서 들뢰즈가 '철학'은 추리소설과 공상과학소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영화'로 치환하여 다시금 상기해본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당혹감과 동시에 그의 무의식을 탐험하고 싶다는 간절한 동경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린 나이트>도 그때와 같았다. 엄숙하고 장엄하게 인간의 심연을 두드리는 영화. <그린 나이트>를 보면서 꽤 분량을 메모했다.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영화라는 띠를 매고 있는 나에게 이 영화는 매몰되어 있었던 오랜 동경심을 깨우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화였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영화를 사랑했던 처음으로 회귀하고, 또 한 번 힘을 내어 글을 기록한다. 영원히 변질되지 않을 곳이라는 어떤 동경심과 소망을 간직한 채.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찬란
ⓒ 찬란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감독
데이빗 로워리David Lowery
 
출연
데브 파텔Dev Patel
알리시아 비칸데르Alicia Vikander
조엘 에저튼Joel Edgerton
사리타 초우드리Sarita Choudhury
랄프 이네슨Ralph Ineson
케이트 딕키Kate Dickie
배리 케오간Barry Keoghan
숀 해리스Sean Harris
 
수입 찬란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0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08.05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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