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BIFAN] '사악한 쾌락' 80년대 슬래셔 무비의 유쾌한 만남
[25th BIFAN] '사악한 쾌락' 80년대 슬래셔 무비의 유쾌한 만남
  • 배명현
  • 승인 2021.08.03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르의 풀 안에서도 자신의 것을 잃지 않는 법"

<사악한 쾌락>은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장편' 초청작으로 코디 칼라한(Cody CALAHAN) 감독이 연출했다. 감독은 장편 데뷔작 <안티소셜>(2013)로 호러영화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렛 허 아웃>(2016) 역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작 <오크룸>(2020)은 판타지아영화제를 비롯한 다수의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제작사 블랙폰필름의 공동 대표로서 2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했다. <사악한 쾌락>은 제39회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까마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알면서도 빠지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알면서도 먹게 되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상투성과 단 한 끗 차이지만 분명 다른 그 마성의 매력이 있다. 그런 작품이 존재한다 이 세상에는. 사실 우리는 그런 작품에 높은 점수를 매기지는 않지만 갈구한다. '그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그런 작품을 만날 기회는 적다. 생각보다 그런 작품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작품을 만날 때마다 '위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맛을 내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고유한 색 자체는 존재하는 작품. 대개 이런 작품은 흔히 장르라고 부르는 바운더리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코디 칼라한 감독의 <사악한 쾌락>(2020) 역시 그렇다. 배경은 80년대다. 아직 공포에 대한 '낭만'이 살아 있을 시절의 마지막 시기. 호러 영화 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는 주인공 조엘은 모종의 연유로 살인자들과 엮이게 된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 만남은 유쾌하다. 영화는 장르물의 이야기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구조물 안을 채우고 있는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전형적이다. 여기서 전형적이라는 단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전형성은 좋은 뜻에 가깝다. 만약 반대 의미를 사용하고 싶었다면 상투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사악한 쾌락>은 우리가 알고 있는 B급 영화들의 전형을 따라간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B급의 재생산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사악한 쾌락>을 고유한 색으로 채색한 건 주요 캐릭터들이다. 주인공 조엘은 너드이다. 그는 B급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동안 많은 공포 영화들은 피해자를 여성으로 다루어 왔다. 여성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공포로 치환하여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공포의 저택, 더 헌팅,엑소시스트, 싸이코, 심령의 공포 등등) 하지만 이 영화는 역으로 고통당했던 경험을 가진 여성이 복수를 한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물론, 이와 같은 성의 전환이 매우 새롭거나 매우 신선하지는 않다. 최근 개봉한 리메이크 작품들인 <할로윈>(2018, 감독 데이빗 고든 그린)이나 <인비저블맨>(2020, 감독 리 워넬)에서도 충분히 보여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코믹 슬래셔물 장르이다. 그녀는 그동안 남성의 영역이었던 '힘'을 가져와 복수한다. 그리고 이는 꽤나 설득력 있고 신선하며 '유쾌'하다.

이 점이 중요할 것이다. 이 영화는 유쾌하다. 스티븐 킹이 이야기한 '우웩'스러운 고어가 아닌 통쾌다. '사악한 적'의 원형에 가까운 인물들을 하나씩 죽여가면서 관객은 통쾌함을 성취한다. 여기서 우리는 알고 있다. <사악한 쾌락>은 악인들을 물리치는 영화라고. 결과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관객이 직접 '감상'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걸 '확인' 한다. 코디 칼라한 감독은 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감독도 80년대 슬래셔의 팬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팬레터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 Breakthrough Entertainment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