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류승완표 종합선물세트
'모가디슈' 류승완표 종합선물세트
  • 이현동
  • 승인 2021.08.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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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한번만 더 믿어도 될까요?"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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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을 원인으로 더 이상 당도할 수 없는 땅인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는 이제는 회귀할 수 없는 세계사의 비참한 역사를 반영하는 표본으로 존재하는 땅이다. <모가디슈>(2021)는 실제 존재했던 사건을 토대로 1980년대까지 UN 가입 승인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교를 목적으로 파견된 한국 대사관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소말리아 내부에 깊이 침전되어 있는 제국주의의 반발심과 바레 정부의 독재 정치로부터 기인하는 내전의 양상이 점차 가속화되면서 이내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카오스가 그들에게 덮쳐오기 시작한다. 사건 기록 자체가 전무한 이 사건은 소말리아 국영 방송의 간부가 내전 당시를 탈출하면서 기록했던 내용과 추후 미국 대사관의 공식 자료가 기밀 해제가 되면서 내전 상황을 더욱더 긴밀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모가디슈 전쟁을 배경으로 한 <블랙 호크 다운>(2001)의 프로덕션 매니저와의 협업이 이뤄지면서 감독이 상상하던 소말리아의 공간 구조를 고스란히 구현할 수 있었을뿐더러 영화의 현실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로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적 관심사는 꽤 인상적이다. 조셉 프랭크 키튼이나 샘 페킨파,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기아 리치 등을 모델로 삼고 있는데, 이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마초적이며 야성적인 성질, 혹은 불균질적으로 다가오는 몽타주들과 더불어 당시에 혁명적이라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카메라 앵글, 편집 기술 등의 과감한 테크닉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감독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류승완의 영화는 끊임없이 변주하며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대중적인 인기를 이끌었던 <베테랑>(2015)에 이어 <군함도>(2017)의 실험적인 시도로 보이는 실제 공간의 재현들, 이 두 가지 측면을 적절하게 배합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모가디슈>는 대중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모가디슈>는 전작인 <군함도>(2017)에 과도하게 들어갔던 힘을 한층 더 빼고, 그간 흥행공식으로 꼽을 수 있었던 류승완식 유머, 그 가운데에서도 사회 비판적이며 제도적인 문제에 대한 신랄함과 동시에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성찰을 끌어낼 수 있는 함의들이 호쾌하게 녹아 있다. 세 네 가지 정도의 유머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한신성 대사(김윤석)가 당뇨를 겪고 있던 림용수 대사(허준호)에게 인슐린을 건네주면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한 대사가 왼손으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림대사가 보고는 왼손잡이로 사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물을 때, 양손을 펴면서 말한다. "양손 다 씁니다. 왼손만 쓰면 좌파라고 해서" 이는 당시에 대한민국의 혼란스러운 정세를 대변하기도 하지만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에게 양손은 그 자체로 속임수이면서 생존을 위한 방편이지만 더 나아가 북한을 향한 염원이기도 한 것이다. <모가디슈>의 화룡점정인 장면으로 후반부의 거대한 카 체이싱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마치 <매드맥스>(2015)를 연상시키는 것 마냥 차량과 차량 사이를 관통하면서 시작되는 줌 인·아웃, 계속해서 이어지는 미들 슛, 롱슛, 트래킹 샷 등의 현란한 카메라 앵글, 종횡무진하는 어트랙션의 마술이 오락적으로도 충만한 재미를 대중들에게 선사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류승완 표 대비(對比)

류승완은 '선과 악'을 극명하게 대비할 때도 있지만, 구조적으로 그 대비를 전략적으로 배치함에 따라 사건의 원인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일깨울 때가 있다. 첫 번째 경우의 영화가 <베테랑>(2015), <짝패>(2006),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 등에 있다면, 두 번째의 영화들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화일 것이다. <모가디슈>는 두 번째의 경우에 해당되는 영화다. 먼저 <모가디슈>에서는 각각의 시퀀스들이 극적인 측면을 점진적으로 고조하는 방식을 통해 구성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가령 아프리카 음악이 흘러나오는 부분이 딱 두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공항, 혹은 사람이 붐비는 시장에서의 장면들이다. 활력이 넘치는 장소인 시장은 내전의 위험이 은폐된 채 언젠간 촉발될 전쟁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소품으로 위치한다. 반면에 세 번째 시장이 나오는 시퀀스에서는 특유의 음악이 흐르지 않는데, 왜냐하면 발발한 내전으로 인하여 죄 없는 시민들이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쓰고 반군에게 총살을 당하는 잔혹함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시장이라는 공간은 실상 내전이 있기 전과 후의 역동적인 대비로써 극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부분적 요소이자 확장해서 본다면 이는 '대비'라는 영화적 주제를 끝까지 끌고 가는 주체적인 힘과 상응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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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비'라는 것은 캐릭터 혹은 한 공동체가 소유하고 있는 가치관, 세계관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남북과의 관계, 소말리아의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타국과 혼재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지금 서 있는 '땅'이 누구의 것인지를 묻게 되는 것으로 나아간다. <블랙 호크 다운>(2001)에서도 그렇지만, <모가디슈>에서도 '영토'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영토'의 의미는 모순적으로 어떤 '대비'적 양상이며,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저항하며 불가항적인 희생을 치를 때에 아이러니하게 평화가 찾아온다는 점에서 기묘하다. <블랙 호크 다운>에서 인용되었던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난다'라는 플라톤의 격언처럼 후반부에 죽음을 무릎쓰고 이탈리아 대사관에 당도한 남북 사람들이 조우하고 있는 상황은 영토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의 실존과 무기력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영화는 '영토'의 문제를 '대비'라는 비범한 방식으로 다룬다. '영토'를 외치는 반군의 등장 속에 희생자인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의 몽타주는 플라톤의 말을 의식한 것과 같이 위기에 처한 각국이 국가로 돌아가기 위한 휴전의 결과로써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결말 부분에서 남북이 각각 남과 북으로 차를 타고 돌아갈 때 교차편집으로 연출되는 한 대사와 림 대사의 시선의 방향이 좌측과 우측으로 서로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은 차분한 마무리처럼 보이는 동시에 어떤 강렬한 열망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군함도>의 아쉬움을 토로했던 이들에게 돼 갚아주는 듯한 느낌의 영화인 <모가디슈>는 모범적인 웰메이드 영화라 불릴 수 있을만한 구색을 모두 갖춘 영화이다. 류승완 감독이 제법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테랑>의 흥행에 힘입어 <군함도>에서의 사뭇 진지해 보이는 시도들은 호평과 혹평을 오고 갔고, 결국 4년 만에 선보이게 된 <모가디슈>가 올 로케이션이라는 거대한 규모로 제작되는 만큼 그동안 류승완 감독의 흥행공식에 부합하는 영화를 제작해야겠다는 어떤 관성적인 심리가 작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모가디슈>는 대중들에게 성공적인 시도로써 보이며 더 나아가서 류승완 감독의 액션 영화가 한층 더 진화할 수 있게 된 초석이 될 수 있었다는 지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가디슈>는 한 대사를 제외한 캐릭터들이 영화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소품으로 소모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드러난다. 특히 북한의 캐릭터들은 한동안 한국 영화에서 묘사되었던 이미지, 행동방식, 성격 등이 다소 전형적이며 평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측면은 결국 <모가디슈>가 '캐릭터'의 성격을 축소시키면서 얻은 어떤 '모범'성처럼 느껴져서 그가 기존에 선보였던 파괴적인 연출과 개인과 사회 사이에 긴밀하게 응집되어 있는 주제의식들이 단순히 오락영화로 희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모가디슈>는 '모범'적인 작품일 수 있지만, 류승완의 필모그래피에 '걸작'이란 이름으로 기록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방대한 올 로케이션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오락영화로써 또 한 번의 재미를 소환했다는 점에서 볼거리는 충분하다. 이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그 다음번에도 믿어볼 만 하지 않을까? 이렇게 난 류승완 감독에게 이번에도 속았고, 또 속을 예정이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모가디슈
Escape from Mogadishu
감독
류승완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김재화
박경혜

 

제작 덱스터스튜디오, 외유내강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1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07.28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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