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O]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편집자O]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 오세준
  • 승인 2021.08.0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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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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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은 인간, 개, 곤충 그리고 알 수 없는 존재까지 밍의 가족을 향한 여러 악령들의 무자비한 참극을 그려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면 놀람‧공포‧불쾌 등의 '무거운 느낌'뿐만 아니라 슬픔내지는 무기력하게 만드는 우울한 느낌(feeling) 역시 진하게 마음속에 자리한다. 온갖 악령들을 마주한 다음에 남는 것은 '감정들의 뒤섞임'이다. 필자는 이러한 상태의 원인을 휘몰아치는 영화의 후반부보다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님의 고백'에서 찾았다. 악령들이 밍의 몸을 잠식하는 상황 속에서 랑종인 님은 계속해서 헛다리만 짚는다. 님과 함께하는 비얀신은 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과연 비얀신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그렇기에 영화 끝에 보여준 '비얀신의 존재'에 대한 님의 회의적인 태도는 처량하고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고백에는 자신의 일생을 다 바친 비얀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한순간에 부서져 불확실함과 불신에게 내어줄 자리만이 차지한다. <랑종>에서 님의 드라마는 악령을 쫓는 추격극이 아닌,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투쟁극이라 볼 수 있다. 더욱이 언니인 노이의 계략으로 원치 않은 랑종이 되었다는 점, 또 조카인 밍이 님이 랑종이라는 것을 두고 업신여긴 점을 생각한다면 극 안에서 그녀의 투쟁은 지독히도 외롭다. 결국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한 그녀의 욕망은 마비가 되어 무엇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목이 잘린 비얀신의 석상을 발견하고는 오열하는 님을 보며 '누가 석상의 목을 잘랐을까'라는 물음보다도, 그녀가 이제 그 어디에도 설 곳이 없다는 비통한 최후만이 스크린에 남겨졌다는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비얀신의 석상이 있는 곳은 의식을 치리는 중요한 장소이면서도, 비얀신을 향한 믿음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한 장소이다. 이렇게 '믿음'은 강력하면서도 언제든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르는 세계 속에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그녀는 필연적으로 주체로서의 실천능력을 상실한 하나의 가련한 짐승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그녀의 죽음은 자신의 육체가 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것이라 인지하지 못한 '믿음의 배반'이 일으킨 불가피한 희생이라 볼만 하다.

<랑종>에서 초반 님이 노이가 부탁한 옷을 '잘못' 가져왔을 때,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반드시 '잘못'되겠다고 생각했다.(혹은 무언가의 '잘못'이 모든 것을 망치겠구나 싶었다) 영화란 것은 허투루 쓰이는 것 없이 결국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예술이기에. 노이는 님이 자신의 말한 '그 옷'을 틀림없이 꼭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당연하게 있었겠지만, '그 옷'이 정확히 어떤 옷인지 알지 못하는 님의 입장에선 난감하기 그지없다. 믿음은 배반당하게 되어 있다. 어떤 때는 차라리 믿지 않는 것이 속 편할 일이라 생각하곤 한다. (8월 1일 기준) 26일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네 자릿수인 상황만 보더라도 그렇다. 작년 이맘때 '내년 말이면 분명 종식되겠지!'라고 생각했던 내 믿음은 순식간에 안일한 마음으로 변질됐다.

최근 모더나 백신 공급 차질 통보에 따른 백신 수급상황의 불확실성과 엉성한 코로나 백신 예약시스템으로 방역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는 것 또한 그러하다. 이와 반대로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접종률에 속도가 나지 않는 미국의 모습이나 특정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백신을 골라서 맞는 행위가 늘고 있는 브라질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델타 변이의 강한 감염력과 함께 백신 접종을 한 사람에게도 바이러스를 옮기는 '돌파 감염'이 가능하고 다른 모든 변이보다 더 많은 심각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과연 코로나19는 종식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마저 무의미해진다.

요사이 필자가 자주 가는 한 극장에 많은 관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마련해둔 대형 책상이 자취를 감추었다. 내심 아쉬웠다. 이따금 그 책상에 앉아 본의 아니게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는 게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내게 흥미로웠다. 코로나19로 곳곳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최근 들어 '그 변화가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계속해서 무기력해지기가 이제 2년을 넘어가려고 하니 어떤 식으로든 적응을 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도 건강하고 활기차게 시작했던 상반기 영화제 취재가 전주를 시작으로 평창(횡계)에 이어 부천까지 별 탈 없이 잘 마무리됐다. 아무래도 작은 매체이다 보니 편집장인 필자가 많은 업무를 맡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을 멈출 수는 없기에 꽤 무리해서 달려온 것 또한 사실이다. 오직 잘 해내야겠다는 '믿음'만으로 상반기를 보냈다.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가치 있는 글을 써준 필진들에게 많이 고마울 뿐.

하반기 코아르CoAR는 새로운 로고와 함께 새롭게 합류한 이현동 기자부터 지난달부터 시작한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에 관한 글을 준비 중인 이지영 기자와 국내영화제 주요한 작품들 리뷰를 마무리한 선민혁 기자까지 절반을 넘어온 만큼 남은 절반을 더 가치 있는 글들로 채워나갈 것이다. 역대급 폭염으로 펄펄 끓는 여름의 열기처럼 남은 올해도 열심히 불태워야겠다는 다짐을 둔다.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오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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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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