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종'에 대한 충돌
'랑종'에 대한 충돌
  • 배명현
  • 승인 2021.07.2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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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안에서, 스크린 밖에서, 그리고 영화와 스크린 사이에서

<랑종>(2021)은 올해 기다린 기대작 중 하나였고 이번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25th BIFAN)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에 개봉과 동시에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마주한 <랑종>은 다시 미끼를 던졌다. 이 미끼를 물것인가 말 것인가. 이 영화와 직접 대결을 해야 할 것인가 우회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이다. 미끼라는 것을 알고도 물어야 할 것인지, 미끼이기에 물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지만 이 고민 자체가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그 통과 과정을 담은 글이다.

 

ⓒ (주)쇼박스

원형적 이야기는 현실의 구체성으로부터 보편적 인간의 경험을 들어 올린 후 그 내부를 개성적이고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담고 있는 표현으로 감싼다. 전형적 이야기는 이것에 반대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내용과 형식 모두 빈곤에 허덕인다. 전형적 이야기는 그 내용을 협소하고 특수한 문화적 경험으로 제한한 후 낡고 몰개성적인 일반성으로 표장한다.1) 이 같은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기의 이론에 따르면, <랑종>은 전형적 이야기에 가깝다. 태국의 작은 마을에 일어난 구마의식(협소하고 특수한 문화적 경험)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빙의되어 죽어간다(공포와 좀비 장르에서 보아온 일반성)는 이야기는 분명 전형적 이야기에 속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 영화가 가진 기묘한 성취가 차마 이 영화를 버리지 못하게 한다. 전형적 이야기의 틀을 가진 영화가 원형적 이야기와 충돌한다.

 

1. 해석 하나 얹기

엔딩에서부터 이야기해보자. 영화는 '님'(싸와니 우툼마)의 고백으로 끝난다. 평생 자신과 함께 했던―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바얀신을 부정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상하다. 이 장면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이 씬이 자리한 위치가 이상하다. 왜 님의 고백이 영화의 엔딩이 되어야 하는가. 이전까지 지옥을 방불케 하는 도륙의 현장이 일어났다.(시간상으로는 님의 고백이 이전 이긴 하다) 그런데 왜 광기의 현장 이후 님의 고백이 엔딩이 되어야 하는가. 심지어 님은 신내림을 받기 전, 흔히 신기가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현상을 몸소 겪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과 함께 하는 신을 부정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계란을 이용한 의식에서도 검은 액체가 나온 후, '진짜 원인'을 찾아내지만 그녀는 바얀신을 부정한다. 물론, 그녀가 영검한 무당은 아니다. 맥과 관련된 사건을 잘못 짚기도 하고 영화 초반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상태를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영적 체험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한다. 그것은 곧 이전까지의 영화적 시간 이전에 일어난 사건 모두를 부정한다는 의미이다. 이 과감한 배치가 말하고자 하는 건,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트랩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엔 허무하다. 지독한 현실주의자 혹은 유물론자들은 찬성하겠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러닝타임 2시간 10분 동안 일어난 사건에 더 중심을 둘 것이다. 심지어 영화 안에는 어마어마한 떡밥이 뿌려져 있다. 우리는 미친 듯 그 떡밥을 주워 먹어야 한다. 무궁무진한 해석의 길을 만들어놓았다. 나홍진은.

 

ⓒ (주)쇼박스

다른 부분을 살펴보자. 영화를 본 우리를 경악하게 한 수많은 씬과 시퀀스가 지나가고, 절정을 이루는 구마의식이 행해진다. 여기서 내가 가진 의문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노이'(씨라니 얀키띠칸)에게 빙의된 신은 악귀인가 바얀신인가. 이때 관객을 가장 혼란케 하는 것은 '노이가 향을 거꾸로 꽂는 씬'이다. 이전까지 진정 바얀신을 만난 듯 일전 없던 의식을 진행하는 영검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끔찍한 괴성으로 빌던 간절함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그녀는 향을 거꾸로 꽂는다. 처음에는 그녀가 악귀에게 홀린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이 영화를 복기하던 중 이상한 지점 하나를 다시 발견하게 됐다. 향은 싼티의 제자들이 하나씩 노이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그리고 향을 거꾸로 꽂는 이후, 제자들이 빙의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향을 전달하지 않아 빙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식에 참가한 모두가 빙의되었지만 왜 그는 빙의되지 않은 것인가. 나의 추론은 이렇다. 노이에게 빙의된 바얀신은 진정으로 밍을 구원하려 한 것 같다. 바얀신은 자신이 원래 원했던 몸을 되찾았고(노이가 자신을 바치는 듯 보인다), 그에 대한 거래로 노이의 목적을 이루어 줄 수 있다.

둘째로, 밍을 살리면 노이에 이어 자신이 머물 몸을 가질 수 있다. 때문에 바얀신은 밍을 구할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혈육과 상관없는 싼티의 제자들에게 밍의 몸에 있는 악귀를 넣음으로써 구제하려 한 것이다. 게다가 '이 차는 빨간색 차'라는 스티커가 보여주듯 결국은 악귀를 속일 수 없다면, 님과 노이도 바얀이 착각했을 리 없다. 바얀은 결국 자신의 목적을 성취해야 한다. 그렇기에 노이의 몸에 들어갔을 것이다. 여기서 실수한 것이 있다. 바얀신은 카메라맨에게 향 하나를 회수하지 못했다. 모든 악귀를 뽑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남은 악귀가 노이를 화형에 처하게 한 것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이 해석놀이를 보며 즐거워할 사람은 아마 나홍진이 아닐까. <곡성>에 뒤이어 <랑종>에서도 그는 악취미적 떡밥들을 풀어놓았다. 그는 영화 밖에서 쳐놓은 덫에 걸린 우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렇다고 내가 덫 밖에 있는 건 아니다. 나홍진 감독의 광기에 가까운 촘촘한 시나리오는 알면서도 당하게 한다. 알면서도 당하는 게 제일 끔찍하긴 하지만 말이다. <랑종>후기는 해석들의 충돌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 (주)쇼박스

2. 형식에 대하여

영화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시작은 '이산'이라는 태국의 시골 지역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축축한 공기가 전달하는 스산함과 으스스함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로 시작한다. 이때 <랑종>은 관객에게 게임을 신청한다. 이것을 현실의 일부로 볼 것인가로 말이다. 영화의 액자인 형식이 먼저 관객을 혼란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 게임을 느린 속도감을 견딜 관객이라면 즐겁게 임할 수 있다. 인물들의 배치와 관계를 보여주고 마을의 영적 믿음을 '사실'로써 전달한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은 페이크든 아니든 다큐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니까. 이 다큐멘터리는 추격한다. 밍을 홀린 '진범'을 쫓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 진범의 정체는 영화 중반이 넘어가면서 밝혀진다. 밍의 할아버지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불을 지른 공장의 노동자들이란 것이다.(또 여기에는 노이가 죽인 개들의 영혼을 포함해 만물의 영혼들이 들어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구마의식이 끝난 뒤 영화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로 전환한다. 모든 카메라맨이 죽은 후 누군가가 이 카메라를 찾았다는 식으로. 이 형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현실이 '다른 현실'로 전환된다. 결국 이 영화는 누군가 찾아낸 다큐멘터리 팀의 소실된 파일이었던 것이다. 관객에게 도달한 이 영화는 현실에서 또 다른 현실로 자리바꿈을 한다. 형식의 이동. 영화가 작동하기 위해(설득력을 가지기 위해) 형식을 바꾸었다. 이것은 일종의 실험이다. 파운드푸티지라는 설정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 형식 자체에서 공포감을 느꼈다. 왜? 그것이 현실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떠한가.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자리를 바꾸는 것은 어색하지 않았고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포라는 장르가 가진 첫 번째 요건인 무서웠는가 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반전으로써 의미가 있었는가를 생각해보아도 그렇다고 답하기 힘들다. 작품으로써의 액자의 역할은 충실히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었는가에 대해 말하자면 쉽게 긍정하기 힘들다. 형식의 만남이라기보다 일종의 충돌에 가까워 보인다.

 

ⓒ (주)쇼박스

<랑종>은 트라우마를 공략한다. 그로테스크로 통합될 수 있을 트라우마는 관객들의 과거를 공격한다. 이 트라우마는 스크린 앞에 있는 관객의 표정을 일그러트린다. 하지만 이것이 공포를 의미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스너프 필름(snuff film)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지만, 분명 트라우마를 통해 공포에 도달하고자 한 점은 나에겐 의문이 따른다. 공포는 감정에 기반하고 트라우마는 기억에 기반한다.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영화는 끝났지만 아직 찝찝함―차마 여운이라 부를 수 없는―기분은 여전하다. 이 영화가 노린 지점은 정확히 어디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영화적의 성취나 영화적 호평이 뿐 아닌 영화의 바깥마저 노리는 나홍진의 목표는 이번에도 유효―절반의 성공일지는 모르겠으나―한 것 같다. <랑종>에 대해 악평 할 순 있지만, 그마저도 쳐놓은 덫에 걸린 꼴이니 말이다. 결국은 덫에 관한 이야기. 나는 이번에도 완벽하게 패배했다.

 

1) 로버트 맥기 <시나리오는 어떻게 쓸 것인가>, 믿음인, p.10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주)쇼박스
ⓒ (주)쇼박스

랑종
The Medium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Banjong Pisanthanakun

 

출연
나릴야 군몽콘켓
Narilya Gulmongkolpech
싸와니 우툼마Sawanee Utoomma
씨라니 얀키띠칸Sirani Yankittikan
야사카 차이쏜Yasaka Chaisorn

 

제작 (주)노던크로스, GDH
배급 (주)쇼박스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1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1.07.14

배명현
배명현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인생의 어느 순간 아! 하고 만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을 만나려 자주 영화를 봤고 여전히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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