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h PIPFF] '바이크 도둑' 불안 속을 유영하는 라이더
[3th PIPFF] '바이크 도둑' 불안 속을 유영하는 라이더
  • 오세준
  • 승인 2021.07.13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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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흐릿한 빛줄기처럼 스크린을 비추는 내면의 불안함"

영국 런던의 야심한 밤. 한 오토바이가 도로 위를 유유히 달린다. 이내 어느 집 문 앞에 도착하더니 '라이더'(The Rider, Alec Secareanu)는 오토바이에 실린 음식을 고객에게 건네주고 돈을 받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그의 하루는 먼동이 트기 전, 아직 빛을 허락하지 않은 밤과 새벽 사이의 언저리쯤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그의 드라이빙(driving a motorcycle)은 끝나지 않는다. 몇 시간도 채 자지 않은 라이더는 아내를 일터로, 딸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주고 나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이렇듯 <바이크 도둑>은 야간 피자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한 라이더를 스크린에 담는다.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바이크 도둑>이 관객으로부터 불러일으키는 주요한 긴장은 배달 일을 하거나 가족들을 각자의 목적지에 태워다주는 '익명의 라이더'의 일상을 단순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일상을 더는 지속할 수 없도록 하는 '불안의 씨앗'을 스크린에 심는 데 있다. 이 씨앗을 나타내는 시퀀스가 영화 초입에 등장한다. 배달 일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정차한 후 집으로 들어서는 주인공은 다리 밑에서 세 명의 무리가 자동차를 훔치는 상황을 목격한다. 이때, 카메라는 다리 위에서 계단을 지나 아래로 길게 시점숏으로 담는다. 이 불안함을 길게 담는 카메라의 행위가 곧장 영화가 주는 긴장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익명의 라이더가 누군가의 사물이 누군가로부터 훔쳐짐을 목격하는 순간, 어느 노동자의 일상을 관찰할 것 같았던 영화의 드라마는 순식간의 전복이 되고, 불안감을 원동력으로 삼은 심리 스릴러로서 변모한다. 좀 더 곱씹어봐야 하는 점은 '영화가 심리적으로 어떻게 뒤흔드느냐'이다. 씨앗에서 새싹이 막 튀어나오는 순간의 흔들림. 그것은 '라이더의 사정'에서 비롯된다. 도난당한—기어코 사라져버린—라이더의 오토바이. 이 오토바이는 라이더가 근무하는 사장이 소유하는 것으로, 그것이 없다면 직장을 잃고 임대한 아파트를 잃을 수 있으며 루마니아에서 넘어온 라이더의 가족(국외거주자)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영화가 긴장감을 지속하고자 하는 방식에 있어서, 관객의 심리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것은 '라이더의 사정'으로 하여금 증폭되어지는 곤경함에 있다. 그 '곤경의 질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하고 딱한 형세로서 유럽 내 이민자들의 삶이 나타내는 무력함과 황량함, 이와 동시에 한 가족의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빠로서 라이더에게 향하는 시선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위태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사라진 바이크를 찾는 라이더의 움직임은 비극의 전조를 알리는 몸짓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해 나아가기 위한 용기가 필연성(necessity)과 결부되어 극적으로 표출되어 진다.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결국, 라이더와 더불어 관객 역시 좌절케 하는 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오토바이'라는 사실—한 가족 전체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거대한 불행의 상징—이다. <바이크 도둑>은 더 나은 삶을 희망하며 런던에 도착한 루마니아 가족의 일상적인 투쟁에서 오토바이가 얼마만큼 필수적인지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사장에게 오토바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모습이나 끝에 이르러 누군가의 오토바이를 훔쳐야 하는 모습은 마치 투쟁을 위한 투쟁으로 처연하게 다가온다. 런던이라는 대도시의 광활함은 비좁은 라이더 가족의 아파트와 대조를 이루면서도 라이더의 바이크를 숨기두기에 지독하게 야속하다.

카메라는 도시의 불빛에 감싸인 모습으로 오토바이를 탄 라이더를 밀접하게 따라간다. 라이더가 도로 위를 달리는 장면들은 마치 구불구불하게 자라난 어느 식물의 줄기처럼 위태하다. 어쩌면 이건 관객의 시선이 불안해진 탓일 수도 있겠다. 극단적으로는 라이더가 도로 위에서 언제라도 사고를 당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이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서 스크린을 적시는 듯하다. 그러나 이 시선도 결국에는 영화가 동요하고자 했기에 발생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런던 안에서 도둑맞은 바이크를 찾기 위한 라이더의 돌고 도는 고립된 방황이 영화와 관객 사이 또한 시선을 통해서 불안함을 공유하며 맴돌고 있다.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을 모티브로 삼은 <바이크 도둑>은 런던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영화감독 맷 챔버스의 첫 번째 장편영화로, 올해 평창국제평화영화제(2021 PyeongChang International Peace Film Festival)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1948년 네오리얼리즘의 문제를 현대적인 의미—현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문제—로 재해석하여 보여준 드라마틱한 작품이다.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영화 '바이크 도둑' 포스터 ⓒ Beta Cinema Gm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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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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