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는 유령처럼 떠돌아 다닌다 ['강호아녀' #2]
강호는 유령처럼 떠돌아 다닌다 ['강호아녀' #2]
  • 이현동
  • 승인 2021.07.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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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반사하는 인간이란 풍경화"

'지아장커'(Jia Zhangke)는 시간과 공간을 정교하게 조각하는 훌륭한 조각사다. 시대의 궤적을 온전히 담기 위해 카메라의 값과 시간을 등가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가령 <강호아녀>(2018)는 처음에 DV(Digital Video)로 촬영되었고, 다음에 HDV(High Definition Video)로 업그레이드를 한 후 Digital Beta, 16mm 필름 및 35mm 필름과 고급 디지털 장비로 점진적으로 촬영되었다. 지아장커는 왜 이러한 촬영을 고수할까? 그는 "다른 시대의 사진 장비로 찍은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시대감각을 갖고 있다"며, "무의식적으로 변화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관객들이 감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강호아녀>의 첫 숏은 <스틸라이프>(2006)를 닮았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카메라의 질감이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 <강호아녀>의 첫 장면은 2001년도에 미리 찍어 놓은 숏 중에 하나다. <스틸 라이프>는 '배'에서 <강호아녀>는 '버스'로부터 시작되는 이 시퀀스는 실제 존재하는 일상의 모습을 영화에 투영하고자 한 의도로 촬영됐다. 오른쪽으로 패닝 되어 사람들의 몽타주를 비추는 장면은 실존이란 붓점으로 밀도 있게 그려지는 인간의 풍경화처럼 보인다.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는 시대적 이미지들 속에서 지아장커의 영화는 사회에 고여 있는 고름을 송곳으로 날카롭게 찌르고 삶의 권태를 물리치며 저항한다.

 

ⓒ 에스와이코마드
ⓒ 에스와이코마드
ⓒ 에스와이코마드

<강호아녀>는 2001년부터 2018년도까지 무려 17년이라는 세월의 풍파 속에 강호의 의리를 지켜 내고자 고군분투한 강인한 여자인 차오(자오 타오)와 그녀의 남자인 빈(리아오 판)의 삶을 조명한다. 관객은 아들과 딸을 수식하는 '강호'의 의미에 대해서 기어코 물을 수밖에 없다. '강호'란 무엇일까? 우선 중국에서 '강호'라는 이미지는 코드화되어 있는 시간적·공간적 관념으로 정의될 수 있다. 빈은 '의리'를 상징하는 관우상을 내세워 형제들의 화해를 동요하고, 총소리가 난무하는 누아르 영화인 <강호정2-영웅호한>(1988)를 보면서 '강호가 무엇인지'를 시각화한다. 초반부에 클럽 장면이 대표적인데, 전국 각지에 있는 술을 가져와 대접에 전부 부은 다음 술잔을 들고서 '하나가 되자.' '의리를 위하여'와 같은 구호를 외치는 행위들은 강호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것들이다. 이쯤에서 <강호아녀>의 영어제목을 거론하고자 한다. <강호아녀>라는 직관적인 제목에 비해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영어제목은 'Ash is purest white'(재는 가장 순수한 흰색이다)이다. 영화에서 이름 모를 조직에게 외압을 당해 부상을 입은 빈과 함께 차오는 야외에 나가 앞에 있는 화산을 보면서 "화산재는 고온에서 연소되었으니 깨끗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 반대로 빈은 그녀의 말을 듣고, 다 태워버리면 아무것도 모를 것이며, 이 바닥(강호)에서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한다.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를 '강함'이라고 믿는 빈과 강호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말하는 차오와의 갈등은 총이 점멸할 때 비극적으로 극화된다. 이는 <천주정>(2013)의 에피소드들이 그러했고, <산하고인>(2015)에서도 총을 겨누는 아버지의 시선이 그러했다.

결국 '강호'의 도리를 내세웠던 빈과 그를 지키려고 마땅히 '강호'로 뛰어든 차오는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감옥에 5년 동안 수감된다. 출소한 후에 영화는 지아장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찾기'의 서사가 진행된다. 이미 4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먼저 세상으로 나온 빈의 행방을 찾기 위해 차오는 이곳, 저곳을 배회하면서 소동을 겪는다. 함께 배에 탑승했던 여자에게 지갑과 소지품을 절도 당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동생이 낙태했다는 거짓말로 남을 속여 돈을 갈취하기도 한다. 이는 곁가지처럼 보이는 플롯이지만, 자본의 순환구조 속에서 강요되는 사회구조의 조소로 보이기도 한다. 이 점이 극대화되는 순간이 있다. 겨우 연락이 되어 만난 빈과 차오가 모텔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강호'와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다. '강호'의 낭만은 이제 빈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차오가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돈 없이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차오가 빈을 구한 총의 방아쇠를 당긴 손을 왼손으로 착각해버린 그를 보면서 마음이 떠나버렸다는 것을 눈치챈다. 나는 이후에 바로 등장하는 공연 장면에서 차오가 따라 부르는 '사랑' 노래 가사와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강호의 '의리'가 아닌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에스와이코마드

 

"기다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랑이 이미 변해버린 그때도"

상실의 아픔을 절감하면서 차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러던 중에 그는 매점을 운영하고, 그는 차오가 감옥에 수감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로 관심을 끊고 차오는 알 수 없는 곳에 내리게 된다. 그곳에서 UFO를 보게 된다. <스틸 라이프>에서도 동일하게 오브제로 활용된 UFO는 어떤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아닌 존재할 수 있는 감정의 형태를 드러내는 소품으로 등장한다. 동시에 차오에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기쁨, 당황스러움들이 교차되면서 시간은 2017년으로 향한다. 이제 영화의 끝은 영어제목처럼 이미 재처럼 산화된 빈과 차오의 노화된 모습을 묘사한다. 뇌출혈로 몸을 자기 맘대로 가 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빈의 몸뚱어리를 응시하는 차오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듯 그를 간호한다. 역설적으로 차오의 돌봄으로 차츰 몸을 회복한 빈은 그녀를 뒤로 한 채 강호를 떠난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추측해 본다. 그 전과 같이 돈을 찾기 위해 이전과 같이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떠난 문을 서성이다가 이내 안으로 돌아온 차오를 비추는 CCTV는 한편의 공포영화를 보듯 섬뜩하게 느껴진다. 타인의 슬픔마저 쉽게 관측할 수 있는 근대화와 문명의 거대한 발전은 '강호' 뒤에 숨은 자본주의라는 무형의 형체를 직설적으로 표출한다. 강호의 도리를 끝까지 지킨 차오에게 주어지는 건 가루가 되어 부유하는 재와 같은 서글픈 형상이다. 그럼에도 시대가 직조하는 어떤 신념, 혹은 사회 시스템의 간극의 모순 속에서 차오의 선택은 인간이 본연적으로 지향해야 할 지점에 대한 고민들을 이끌어 낸다.

<강호아녀>는 장르적인 측면에서는 누아르의 옷을 입고 있지만, 이전 그의 영화가 그렇듯 사회비판적인 냉소와 은유들이 영화에 맴돌면서 때로는 처연하게 때로는 거칠게 웅변한다. 나쁜 세상을 부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의 다짐은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앞으로도 자본주의라는 유령을 퇴치하기 위해 영화가 해야 할 몫을 담대하게 해나갈 것을 기대하게 된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에스와이코마드

강호아녀
江湖儿女
Ash Is Purest White
감독
지아장커
Zhang Ke Jia

 

출연
자오 타오
Zhao Tao
랴오판Liao Fan
서쟁Zheng Xu
펑 샤오강Feng Xiaogang
댜오 이난Diao Yinan
장이바이Yibai Zhang
장역Yi Zhang
동자건Zi jian Dong

 

수입|배급 에스와이코마드
제작연도 2018
상영시간 13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06.10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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