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제한' 이 복수는 너무나 개인적이다
'발신제한' 이 복수는 너무나 개인적이다
  • 선민혁
  • 승인 2021.06.30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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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 아쉬운 부분이 더욱 아쉽다"

평범한 가장, 사연 있는 악역, 밀폐된 공간에서의 스릴러, 무능한 공권력, 그리고 가족애. <발신제한>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를 나열해 놓고 보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흔한 영화로 보일 수 있으며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분명히 흥미롭다. 무난하지 않고 준수하다. 주연을 맡은 조우진의 연기는 인상적이며, 달리는 차 안에서 이뤄지는 스릴러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고, 가족 간의 애정이 나타나는 장면도 '신파'라는 이름으로 비판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적당하다. 94분의 러닝타임이 끝났을 때 만족스러운, 전반적으로 꽤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다.

 

ⓒ CJ ENM

그래서 주제의식에서 드러나는 약간의 허술함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은행 센터장이자 한 집안의 가장인 주인공 성규(조우진)는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일터에 가는 길에 두 아이도 학교에 데려다주려 한다. 운전석에 앉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지만, 아이들도 등교시켜야 하고 중요한 계약이 있는 바쁜 하루이기도 하기 때문에 냄새에 집중하는 것을 그만두고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도로를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성규의 휴대폰은 아니다. 딸 혜인(이재인)의 휴대폰도 아니다. 조수석에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고, 성규는 대리기사가 놓고 간 것으로 생각하고 전화를 받는다. 화면에는 발신번호 표시제한이 나타나 있다.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성규에게 당신의 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성규는 보이스 피싱 전화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끊어버리지만, 전화는 반복해서 걸려오고, 결국 성규는 휴대폰 너머의 남자가 제시하는 근거들을 통해, 자신의 차 안에 폭탄이 정말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성규는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면서, 여러 가지 위기들을 맞이하게 된다. 성규는 나름대로 위기들을 헤쳐나가고,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는 긴박감과 주인공의 캐릭터는 꽤 흥미로워 극에 몰입을 할 수 있게 돕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이 범인이 '왜 성규를 협박하는가'이다. 범인과 성규의 대화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뉘앙스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는 성규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듯하고, 왠지 납득할 만한 이유일 것이라는 예상이 된다. 사실 이것은 예상이기보다는 기대에 더 가깝다. 과연 이 인물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떤 흥미로운 이유일까, 성공한 직장인이자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 성규의 내면에는 어떤 추악함이 있는 것일까. 그는 과거에 무슨 악한 일을 저지른 것인가. 아쉽게도 이런 기대는 채워지지 않는다.

범인의 복수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범인의 아내는 6년 전, 성규가 다니는 은행에서 제공하는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당시 과장 직급의 은행원이던 성규는 고객들에게 이 상품의 높은 기대 수익률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높은 리스크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덕분에 많이 팔았다. 그런데 고객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던 리스크가 터지고 만다. 많은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보았지만, 성규는 실적을 인정받아 본사에 발령받고 센터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다. 범인의 아내는 당시 입은 손해의 충격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만다. 성규는 손해를 입은 후 조언을 구하는 범인의 아내를 외면하고 자리를 피한 적이 있다. 성규는 분명히 도의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범인이 성규라는 개인에게 복수심을 가진다는 것은 납득이 가능하다.

 

ⓒ CJ ENM
ⓒ CJ ENM

서사를 흥미롭게 만들기 충분한 동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영화가 범인의 행위를 단지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희생되는 개인이 취하는 어떤 행동으로 보이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규를 향한 범인의 복수는 상징이 될 수 없다. 그가 복수의 상대로 삼은 은행 센터장 성규는 너무 만만한 상대이다. 성규는 시스템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 역시도 시스템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개인일 뿐이다. 성규는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일을 열심히 했다. 어느 직장 상사가 성규에게 '금융상품의 리스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고 높은 기대 수익률만을 어필하여 많이 팔아라'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월급을 받는 성규가 조직에서 그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판단만으로 리스크를 숨기고 금융상품을 판매했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그러한 영업방식이 조직이 구성원에게 제시하는 방향과 관계없는 성규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면, 성규는 요직에 오르는 대신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같은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피해를 본 사람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해온 범인은 소송에 들어간 돈을 성규로부터 받아내 함께해온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려 한다. 그는 이를 행하기 위해 중범죄도 마다하지 않았고 자신의 목숨까지 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건 복수의 칼날이 왜 한낱 은행원인 성규에게 향하는가. 적어도 해당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한 은행의 한 지점이라도 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운이 나빠 복수의 대상이 된 성규는 한바탕의 사건을 겪은 뒤 반성을 하고, 피해자 측의 증인이 되어 은행과의 소송에 참여한다. 영화가 부조리한 시스템을 개혁하거나 그것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개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이러한 결말은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CJ ENM

발신제한
HARD HIT
감독
김창주

 

출연
조우진
이재인
진경
김지호
지창욱

 

제작 TPS 컴퍼니 , CJ ENM
배급 CJ ENM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94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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