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인스포팅' 방황의 결말
'트레인스포팅' 방황의 결말
  • 선민혁
  • 승인 2021.06.24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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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인물을 담은 시선이 매우 흥미롭다"

1996년 제작된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에는, 자신이 선택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겪는 청춘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키즈 리턴>의 방황하고 실패하는 '키즈'들이 그려내는 스토리는 오히려 희망이라는 메시지에 설득력을 더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바보! 아직 시작도 안했어"라는 달콤한 한 줄의 대사로 기억하게 만든다. <키즈 리턴>과 동일한 해에 제작된, 청춘을 다룬 흥미로운 영화가 하나 더 있다.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1996)이다. <트레인스포팅>은 전반적으로 정적인 분위기의 <키즈 리턴>에 비해, 훨씬 역동적이다. 주인공 렌튼(이완 맥그리거)과 그의 친구 스퍼드(이완 브렘너)가 도주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에는, 렌튼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렌튼은 세탁기, 자동차, 보험, 대출 등 평범한 인생에서 이뤄지는 지루한 선택들을 나열하며, 자신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로 했고,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렌튼이 이야기하는 다른 선택이란, 헤로인이다. 렌튼은 헤로인에 중독되어 있다. 렌튼은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헤로인을 투약한다. 끊으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하지만, 실패한다.

 

ⓒ 채널4필름, 동하필림

렌튼과 친구들은 시스템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은 정규 교육 과정을 모두 마친 것으로 보이는데, 제도권으로 들어가 노동을 하지는 않으며 이는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렌튼은 채용 면접을 앞둔 스퍼드에게 취직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서도 채용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로 보여, 면접에서 불합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야만 정부 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렌튼과 친구들은 직장에 들어가 일을 하지 않지만, 돈은 계속 필요하다. 헤로인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들은 상습적으로 절도를 저지른다. 렌튼과 친구들은 이 행위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공권력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렌튼과 스퍼드는 결국 경찰에게 붙잡히고 만다. 스퍼드는 실형을 선고받지만, 렌튼은 헤로인을 끊기 위해 등록했던 재활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형 집행을 유예받는다. 렌튼은 스퍼드만 수감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헤로인을 하러 가고, 부작용으로 인해 응급실로 실려가게 된다. 렌튼에게 헤로인을 끊을 것을 지속해서 요구하던 렌튼의 부모는 그를 병원에서 데리고 와 방에 가둔다.

방에 갇혀 금단현상에 시달리고, 밖으로 나와서도 우울감에 시달리던 렌튼은 새로운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고향인 에든버러를 떠나 런던으로 간다. 렌튼이 찾은 '새로운 것'이란 제도권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렌튼은 대도시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며 정착한다. 렌튼은 내레이션을 통해, 수익, 손실, 이윤, 취득, 대출, 임대, 전대, 분할, 속임수, 사기, 분해, 분리라는 말들이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렌튼은 헤로인을 하며 살아가던 삶과는 전혀 다른, 도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함께 어울리던 고향 친구 벡비가 찾아온다. 벡비는 보석상을 털다가 지명수배되었고, 은신하기 위해 렌튼을 찾아온 것이다. 벡비는 그대로 렌튼의 집에 눌러앉고, 포주 겸 마약 밀매를 하는 또 다른 고향 친구인 식보이 마저 렌튼의 집으로 오게 된다. 이전과는 가치관이 달라진 렌튼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이들을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을 궁리를 하고, 그것을 실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고향 친구인 토미의 죽음으로 인해, 렌튼은 고향으로 돌아가 옛 친구들과 재회한다. 그리고 친구들이 계획한 마약거래에 동참하게 된다.

 

 

ⓒ 채널4필름, 동하필림
ⓒ 채널4필름, 동하필림

큰 규모의 마약 거래를 해본 적 없는 렌튼과 친구들은 허술했지만 결국 거래에 성공하고, 큰 돈을 얻게 된다. 렌튼은 기회를 엿보다가, 친구들 몰래 돈이 담긴 가방을 들고 도망친다. 유일하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스퍼드의 몫만 남겨둔다. 돈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렌튼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은 과거를 버리고 앞만 보고 나아갈 것이며, 영화의 오프닝에서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던 '인생'을 선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렌튼은 관객들을 향해 '바로 당신처럼 살 것이다.' 라고 말하며 오프닝에서 이야기했던 세탁기, 자동차, 보험, 대출 등 평범한 인생에서 이뤄지는 선택들을 다시 나열한다.

<트레인스포팅>의 청춘은 분명히 역동적이다. 주인공 렌튼은 가치관의 변화를 겪으며 '성장'이라고 볼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계획했던 일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리는 청춘이 희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시작도 안 한' 결말을 맞은 <키즈 리턴>의 주인공들과 달리 이미 끝이 난 결말을 렌튼이 맞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선택을 거부했던 렌튼은 결국 그 선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그것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까지 한다. 렌튼의 방황은 끝났다. 그는 결말부의 내레이션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말 앞만 보고 잘 나아갈 것이며 다른 선택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채널4필름, 동하필림
ⓒ 채널4필름, 동하필림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
감독
대니 보일
Danny Boyle

 

출연
이완 맥그리거
Ewan McGregor
이완 브렘너Ewen Bremner
조니 리 밀러Jonny Lee Miller
케빈 맥키드Kevin McKidd
로버트 칼라일Robert Carlyle
켈리 맥도날드Kelly MacDonald
피터 뮬란Peter Mullan
제임스 코스모James Cosmo

 

수입|배급 채널4필름, 동하필림
제작연도 1996
상영시간 93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199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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