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h PIPFF] 'PIPFF클래스 : 모란봉', 북한과 프랑스 합작·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
[3th PIPFF] 'PIPFF클래스 : 모란봉', 북한과 프랑스 합작·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
  • 문건재
  • 승인 2021.06.21 1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과 프랑스의 최초 합작 영화인 장 클로드 보나르도 감독의 1958년 작 <모란봉>이 지난 6월 지난 19일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상영됐다.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모란봉>은 프랑스 출신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인 장 클로드 보나르도(Jean-Claude BONNARDOT)가 연출한 작품으로, 6.25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한 젊은 노동자와 판소리 음악가 딸의 러브 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특히, 1958년 촬영된 이 영화는 주로 로케이션 촬영으로 이루어져 대부분의 장면에서 실제 개성과 평양 당시 모습을 볼 수 있어 종전 직후 평양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진귀한 작품이다. 북한의 전폭적인 지지로 촬영되었으나 완성된 이후 전쟁으로 참혹하게 무너진 풍경으로 인해 완성 당시에는 북한에서 상영되지 못했고, 연합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프랑스에서도 한동안 공개되지 못했던 비운의 영화이기도 하다.

'PIPFF 클래스 : 모란봉'은 오후 2시 영화 상영 후,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진행됐다. 'PIPFF클래스: 모란봉'은 1958년 프랑스, 북한의 합작영화 <모란봉>의 영화사적 가치에 대하여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올해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준비한 토크 프로그램이다. 이날 자리에는 한상언영화연구소의 한상언 대표, 영화학자 이화진,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김형석이 참석했다.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김형석(이하 김) : <모란봉>은 북한과 프랑스가 합작한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라며 “올해 영화제에서 전설적인 이 영화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모란동>은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다. 영화 관련 연구자분들도 모니터로만 보고 극장에서는 처음 보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모란봉을 흥미롭게 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토크를 시작해 보겠다.

└ 영화사 연구자 이화진(이하 이) : <모란봉>이 공개된 것은 1960년대가 처음이고, 오랫동안 잊혀 졌었다. 후에 2010년에 프랑스에서 영화를 복원해 평양에서 상영된 것이 '북한에서의 첫 상영'이다. 1958년부터 1960년, 2010년까지 훑어보면 냉전의 시간을 보낸 긴 필름이다. 1958년에 북한에 방문했던 프랑스인들은 적극적으로 북한정부의 지원 아래 참여했다. '장클로드 보나르도', '크리스마커', '클로드란츠만', '아르망가티가' 북한에 방문한 프랑스 영화인들이다. '크리스마커'는 북한 방문 전 소련에 방문한 적 있다. 그의 사진첩과 겹쳐서 보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다.

└ 한상언영화연구소 대표 한상언(이하 한) : 프랑스 영화인들이 평양 방문 때 북한 영화촬영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계획없이 일정한 필름을 가져왔고 단편영화나 평양, 북한의 모습을 담은 기록영화 정도로 찍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검토 후 이왕이면 북한당국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만드는 것으로 결정했다. 북한에서 가장 유명했던 시나리오 작가 '주동인' 등 북한 전문 영화인들이 결합됐다. 아무래도 프랑스인이 북한의 세세한 것들은 알기 어려워 북한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북한 연출가 중 '주영섭'이 함께 했고 그는 도쿄의 유학생들이 중심으로 만든 극단의 리더였다. 그는 1950년부터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게 됐다. 타이틀 촬영은 '박경원'이 맡았고 <모란동>에 전적으로 촬영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한국영화보다 잘 찍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박경원'이 당시 최고의 촬영기사이자 북한의 자랑이었다.

 

한상언영화연구소 대표 한상언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영화의 출연배우 자체도 북한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들이다. 그 중 얼음장수로 나온 '강홍식'은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 중 한명이다. 1920년대 일본에서 영화배우로 데뷔 후 1920년~1930년대에는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또 1930년대에는 가수로 활동했고 193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한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최민수'의 외할아버지기도 하다. 그는 영화 앞부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영화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개성시대를 돌아보며 얼음장수의 얼굴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시나리오에서 얼음장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감독은 얼음 장수의 얼굴로 북한과 남한의 경계선을 보여주고자 했다. 주인공을 맡은 여성배우 '원정희'와 남자배우 '엄도순'은 일제강점기 때 전설적인 배우로 남아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2번의 호흡을 맞췄던 배우고, <모란동>에서 역시 두 명의 호흡이 두각을 나타낸다.

<모란동>은 1958년 여름부터 촬영해서 1959년 봄까지 촬영했다. 후에 1960년 4월 19일 4‧19혁명이 터지자마자 북한에서 혁명을 주제로 한 영화 <항쟁의 소쟁>을 만들었다. <모란동>에 출연했던 배우들 그대로 출연한다. <모란동>은 국악 혹은 창극에 관심 있던 분들이 재밌게 보셨을 것 같다. 1940년대 가장 유명했던 창극배우들이 출연한다. '공기남', '신우선' 역시 1940년대 우리나라 최고의 창극배우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악이 나온다. 당시 최고의 국악인 중에 한 명인 '정남희'가 영화의 작곡에 참여했다.

 

영화사 연구자 이화진(이하 이)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이 : <모란봉>을 볼 때 신기한 점은 '춘향전'이다. 이 영화의 중요 모티브이자 1950년대 후반 북한에서 '춘향전'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1950년대 후반 북한에서 '춘향전', '심청전' 등 사회주의 진영 속 국제적인 문화를 영화형태로 소개하는 작업들이 있었다. '춘향전'의 경우 영화 속 전쟁 중, 후반부에 이전과는 다른 버전의 춘향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 한 : 북한에서는 창극이 1940년부터 시작되지만 본격적인 제작이 이뤄진 때는 6.25전쟁 이후다. 판소리 자체가 남쪽지역 음악이다 보니 관련인들이 주로 서울, 영남, 호남지역에서 활동했다. 1950년 전쟁 때 서울에 있던 창극배우들이 북한쪽으로 넘어갔다. '정남희', '박동실' 등 유명한 창극인들이 북한지역에 합류하며 역대 가장 크고 화려한 '춘향전' 공연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창극이 시작됐다. 

└ 이: 새로운 스토리의 창극을 만들어냈던 창극작가 '김아부'는 창극계의 중요한 인물이다. <춘향전> 자체가 한국사회에선 기술적으로 중요한 최초의 발성영화이다. 북한에서의 '춘향전'은 남한보다 계급문제, 부패한 관리에 대한 저항, 주체적인 여성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느낌이 강하다. 1958년 프랑스인들의 방문을 통한 기록에 의하면 북한은 독립영화를 제작했다. 서부 영화인들과의 합작이 이례적이지만, 1950년대 후반에 북한에서는 체코와의 합작 등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모란동>이 프랑스인들이 만든 영화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공식적으로 공동제작에 대한 협의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검열에서는 비행기가 폭격하는 장면이나 포로 수감 장면에서 인민군 포로들이 옷을 벗어 던지는 등의 장면이 문제가 됐다. 북한을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자 프랑스인 눈에 특이하고 담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전쟁 중에도 공연을 하고 있다는 전쟁에 대한 태도, 폭격의 소음을 지우기 위해 높은 소리를 내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헤어진 연인이 새로 지운 대동강 다리위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배우들의 표정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전쟁 후 재정의식, 재정의 증거로 끝나는 것이다.

└ 한 : 영화의 시작과 끝이 다리로 시작해서 다리로 끝난다. 다리를 통해 과거와 현재 혹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을 대비시켜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6.25전쟁에서 받은 고통과 평양의 파괴에 대해 서양세계에 강조하고 싶어 했다.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모란동>이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의 반응이 궁금하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서양 사람들의 시선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 이 : 안타깝게도 칸국제영화제 상영 당시의 관객들 반응에 대해서 아는 건 없다. 하지만 영화가 어려워서 검열과 관련된 프랑스 내부의 논란이 기록에 있다. 글로벌 이슈가 뜨거웠지만,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이후 영화는 1964년 이후에 상영이 가능하게 됐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 김 : 당시는 모더니즘 영화들이 힘들었던 시기다. <모란동>은 당대 미약적 트랜드와는 거리가 있었던 영화다.

└ 한 : <모란봉>은 영화제에서만 상용될 수 있던 영화라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없던 영화라 생각한다. 1964년 이후에는 관심이 월남전으로 향해 급격하게 잊혀진 영화다.

 

한편, 2021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6월 17일부터 22일까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와 알펜시아 일원에서 열리며, 총 26개국에서 온 78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코아르CoAR 문건재 기자, ansrjswo@ccoart.com]

문건재
문건재
《코아르》 운영위원 및 취재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