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리턴' 이 희망에는 설득력이 있다
'키즈 리턴' 이 희망에는 설득력이 있다
  • 선민혁
  • 승인 2021.06.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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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작도 안 했다."

2017년 여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종로 주변을 걷고 있었고 날씨가 매우 더웠다. 나는 일행과 실내로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근처에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다. 들어가서 가장 상영이 빠른 아무 영화를 보기로 할 만큼의 용기가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뭘 상영하는지 보기로 했다. 영화관에 들어가니 '웃음과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기타노 다케시 회고전을 하고 있었다. 당시 학교 강의에서 <하나비>(1997)를 인상 깊게 본 상태였기에 상영 시간이 가장 가까운 <키즈 리턴>을 예매하고 상영관에 입장했다.

<키즈 리턴>을 본 사람들은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어."라는 마지막 장면의 대사로 이 영화를 기억하곤 한다. <키즈 리턴>의 이야기는 이 한 줄의 대사로 요약이 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장영화의 전형적인 대사 중 하나로 보일 수 있는 이 문장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한 줄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절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키즈 리턴>은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라는 한 줄의 대사로 설명되나, 이 한 문장이 풍기는 분위기와 영화가 유지하는 전체적인 분위기 사이의 거리는 멀다. <키즈 리턴>에 등장하는 '키즈'들은 발랄하거나 유쾌하게 그려지지 않으며 영화는 청소년들의 마냥 희망찬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 La Rabbia / Bandai Visual Co. Ltd. / Office Kitano / Ota Publishing

신문배달을 하던 신지(안도 마사노부)가 우연히 학생시절의 친구인 마사루(카네코 켄)를 만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신지는 마사루에게 예전처럼 자전거 뒷자리에 타보라고 권유하고, 영화의 시간은 신지와 마사루의 학창시절로 이동한다. 항상 붙어 다니던 신지와 마사루는 학교생활에 충실한 학생들이 아니었다. 수업 시간인데도 교실에 들어가는 대신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탔고, 학교 옥상에 올라가 장난을 치기도 했다. 비행 청소년에 가까웠다. 거리에서 다른 학생들의 돈을 빼앗기도 했으며 기분을 나쁘게 만든 선생님의 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성인 전용 극장에 나이와 신분을 속이고 출입하려 했고 마사루는 술과 담배를 즐겼다. 학교 선생님도 이들을 포기해 교실에 들어오지 않아도 좋으니 다른 아이들을 방해하지만 말아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그런데 하루하루 그저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내던 이 둘에게 무언가에 열중하게 만드는 일이 생긴다. 다른 학생의 돈을 빼앗았던 마사루가, 그 학생의 지인에게 복수를 당하게 된 것이다. 마사루는 자신을 때려눕힌 남자가 복서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권투를 배우기 위해 체육관에 다닌다. 신지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사루와 함께한다. 그런데 마사루는 머지않아 권투를 그만두게 된다. 신지의 스파링에서 큰 역량 차이로 패배하기 때문이다. 신지 역시 마사루를 따라 그만두려 하나, 신지의 재능을 알아본 체육관 관장과 코치의 만류로 권투를 계속하게 되고, 결국 프로선수가 되기까지 한다.

신지는 자신의 의지로 권투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프로에 입문하게 되고, 마사루는 자신의 의지로 권투를 시작했지만 그만두게 된다. 마사루는 대신 폭력조직에 들어간다. 말단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한동안 신지 앞에 나타나지 않던 마사루는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난 뒤, 매일 체육관으로 신지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신지는 반가워하지만, 신지가 운동을 하는 사이 체육관 관장에게 무슨 말을 들은 마사루는, 신지에게 "넌 챔피언이 되고, 나는 보스가 돼서 다시 만나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한동안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신지는 챔피언이 되지 못하고, 마사루도 보스가 되지 못한다. 촉망받는 신예였던 신지는 자기관리에 철저하지 않은 동료 하야시와 어울리며 느슨해지게 되고 중요한 경기에서 패배하고 만다. 마사루는 감정적으로 행동하다가 조직에서 쫓겨나게 된다.

 

© La Rabbia / Bandai Visual Co. Ltd. / Office Kitano / Ota Publishing

신지와 마사루에게 의도한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신지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권투를 시작했지만 어쩌다 보니 프로가 되었다. 챔피언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어울리다가 실패하고 만다. 마사루는 권투를 열심히 해보려고 했지만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조직에 몸을 담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키즈 리턴>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청춘을 살아가는 인물은 신지와 마사루 뿐만이 아니다. 카페 점원을 사모하여 그녀를 보러 매일 같이 카페에 가던 성실한 한 학생은 졸업 후 그녀와 결혼하게 되고, 저울 판매원으로 취업하여 생계를 이어 나간다. 그는 직장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함께 일하던 동료를 따라 택시회사로 이직하는데, 새로운 직장의 환경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과노동에 시달리다가 사고를 당한다.

학창시절부터 재미가 없다는 평가를 듣고, 노인 몇 명뿐인 무대에서 만담을 펼치다가, 결국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그들의 코미디를 성공시키는, 어린 시절부터 코미디언을 꿈꾸던 두 친구를 제외하고, <키즈 리턴>에서 희망적인 결말을 맞는 인물은 없다. 영화의 주인공인 신지와 마사루가 어떤 고난에도 절망하지 않고 밝은 모습을 드러내는 캐릭터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메세지는 희망으로 기억되고 그것이 필요할 때 <키즈 리턴>을 다시 찾게 된다.

권투를 그만두고 신문을 돌리고 있는 신지와, 새 일자리를 구하러 집을 나선 마사루는 우연히마주치고, 둘은 자전거를 타고 이미 졸업해버린 학교의 운동장으로 향한다. "우리 이제 끝난 건가요?"라고 말하는 신지의 말에, 마사루는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어."라고 대답한다. 영화는 과잉되지 않은, 모호하지만 그래서 사실적인 감정들을 차분히 쌓아 올리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가볍게 터뜨리고, 그것의 효과는 크다.

[코아르CoAR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한아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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