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오늘의 영화와 용기
[Essay] 오늘의 영화와 용기
  • 배명현
  • 승인 2021.06.15 1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 '미노'
일러스트레이션 '미노'

영화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무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도 매우 자주.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나의 글을 읽어 줄까와 같은 걱정 때문이 아니다. '관람이라는 행위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영화가 '삶의 알파'(α)라고 생각한다. 영화계와 관련이 있거나 영화에 대한 어떤 열망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영화는 삶의 알파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영화의 알파 중에서도 알파를 다루는 비평을 적는 이 행위가 자주 무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적는다. 누군가는 그 알파를 읽을 것이라 생각하며 적는다. 물론 형편없다고 욕을 할 수도 있고, 몇 줄 읽다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거나 스크롤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 이야기에 공명해주지 않을까. 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지겠만, 지금까지 글을 쓰고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 하찮은 글이 누군가에게 미약하게나마 인상을 주었다면 그것만으로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과 대화들이 게으른 나를 추동하게 만들었고 키보드 앞에 앉게 만들었다.

당연히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응당 훌륭한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훌륭'이라는 단어에 집중해야 한다. '썩 좋아서 나무랄 데가 없다'는 사전적 정의는 뉘앙스와 이미지를 전달하지만 어떤 형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의 기준으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오늘의 내가 보는 방식으로 사유하고 기록한다. 이후에 다시 이 글을 읽었을 때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의 기준으로 훌륭하게 적어내려 한다. 그리고 지금의 눈으로 지금의 영화를 보려 한다.

글을 쓰면서 가장 고민한 것은 '지금'에 대한 문제이다. 명작 영화들을 나열할 때 사람들은 늘 어제의 영화들을 나열한다. 차라리 어제라고 표현할 수 있으면 다행일 정도로 오래전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훌륭한 영화라고 낙인 찍인 영화를 기준으로 오늘의 영화를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오늘의 영화에서 내일의 영화의 가능성을 찾아야한다. 그렇기에 이 연재를 결정하면서 오늘을 대표할 수 있는 감독들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 이름들이 생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두 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해본 감독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미리 언급해 보자면, 오늘의 공포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 대한 이야기, 그 이름에는 '아리 애스터'(Ari Aster),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David Robert Mitchell), '트레이 애드워드 슐츠'(Trey Edward Shults), '로버트 애거스'(Robert Eggers)가 있다. 이들의 공포는 기존의 공포와 무엇이 다르며, 극장에 잠깐 걸리고 마는 공포영화와 무엇이 다른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오늘의 영화 그 자체가 되어버린 '사프디 형제'(Joshua Safdie, Benny Safdie)가 될 것이다. 그들의 작품을 중점으로 오늘의 리얼리즘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리스트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될지는 모른다. 다만 나는 이 생각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유효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영화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보단 미미하고 미비하지만 내가 영화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행하려 한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한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