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th JIFF] '모든 곳에, 가득한 빛' 감각기관이 된 카메라, 그 축복과 저주
[22th JIFF] '모든 곳에, 가득한 빛' 감각기관이 된 카메라, 그 축복과 저주
  • 이지영
  • 승인 2021.05.24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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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의 카메라가 보아야 할 것, 보지 않는 것, 보여주고 싶은 것"

'카메라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테오 안소니(Theo ANTHONY) 감독의 <모든 곳에, 가득한 빛>은 인간의 시각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제3의 감각기관으로 자리매김해온 카메라의 역사적 발전 과정과 그것이 오늘날 인간 사회에 어떤 논의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탐구한 다큐멘터리이다. Axon이라는 회사 소개부터 볼티모어 주 경찰들의 바디캠 사용법 연수, 2019년 볼티모어 감시 프로그램(Baltimore Surveillance Program) 채택까지, 영화는 과거부터 현재 시점을 자유분방하게 오가면서 핵심적인 문제의식으로 서서히 수렴해간다.

Axon이라는 회사의 전신은 'Taser'로, 우리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테이저건과 바디캠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회사이다. 바디캠은 미국 경찰들이 범죄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게 되는 경우(이를테면 과잉 진압이었는지, 정당방위였는지) 증거 자료를 제공하는 블랙박스와 같은 기능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바디캠 기술은 적외선 카메라처럼 인간의 시각이 미치는 영역 이상을 촬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데, 그렇게 촬영된 자료는 결국 법정 증거로 채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인간의 시점 안에서 그가 놓치고 잊어버린 기억을 보조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때에만 촬영분이 유의미하다는 뜻일 것이다.

 

ⓒ Kambui Olujimi
ⓒ Kambui Olujimi

바디캠이라는 제품 하나로부터 문제의식을 서서히 베일 벗기듯 드러내는 감독의 능력은 출중하다. 이제 우리는 볼티모어 경찰들이 바디캠 카메라 사용법을 연수받는 장면을 엿본다. 바디캠은 위에서 서술한 법정 증거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먼저 24시간 동안 녹화되기 때문에 경찰관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한지를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찍히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범죄자의 행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테이저건의 '슈팅'뿐 아니라 카메라의 '슈팅'도 힘의 관계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아닌 일반 시민도 이 힘의 관계를 역전할 수 있다. 바로 현대인들이 신체 일부처럼 지니고 다니는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서다. 예컨대 한 경찰이 범죄자를 추격하는 중에, 범죄자가 스스로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는데 마치 경찰이 폭력을 행사한 것처럼 거짓 증언을 하면서 친구에게 그 장면을 찍으라고 유도하는 장면을 예시로 들고 있다. 이 사건의 전말을 바디캠이 모두 찍었고, 경찰관은 폭행을 했다는 누명을 억울하게 쓰지 않아도 되었다. 즉 카메라는 진실을 담기도 하지만 각자의 관점에 따라 연출될 수 있다는 양가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것은 편파되지 않고 조작되지 않은 기록뿐이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중앙에서 관리하는 자는 어떤 공공기관도 아닌, Axon이라는 사기업이다. 촬영된 영상은 Axon의 서버에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이 기록에 누가 접근하고 조회했는지 또한 실시간으로 기록되어, 법정 증거로 채택되는 데 무결함과 타당성을 갖추도록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신상정보가 자연스럽게 Axon 서버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사생활 침해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불편함을 느낄 만한 지점이다. 하물며 이것이 개인의 권리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자유주의를 선봉한다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세상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형태의 정보수집이 얼마나 더 만연해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 Kambui Olujimi
ⓒ Kambui Olujimi
ⓒ Kambui Olujimi

카메라 기술은 이제 인간의 시각을 보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사회를 내려다보는 전지적인 신의 관점에 근접해졌다. 종교가 사회 질서를 지배했던 전근대 사회에는, <하느님이 위에서 지켜보고 계셔>라는 말이 인간의 방종과 범죄를 억누르는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그렇다면 이제 전지적 카메라 시점이 그 역할을 도맡게 될까?

범죄 감시 프로그램의 도입을 놓고 볼티모어에서는 주민 간담회가 열린다. 찬성 측은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얻는 이점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볼티모어는 미국에서도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며 하루에도 수백 명이 범죄로 목숨을 잃는다. 사생활 침해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범죄 예방, 즉 사람들의 목숨이라는 의견이다. 반대 측에서는, 그 대부분이 생계형 범죄이기 때문에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범죄율을 낮추지도 못할 것이며, 개인의 사생활이나 권리만 침해될 뿐이라고 거세게 반박한다.

이런 열성적인 갑론을박이 무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볼티모어주는 2019년, 감시 프로그램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공공 목적을 위해 카메라에 상시 노출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이것은 일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엔딩에서 볼티모어 학생들의 영화 수업 모습을 찍은 촬영분을 덧붙이면서, 영화는 그 와중에 자라나는 가능성과 희망을 기다린다. 감독은 자신뿐 아니라 다음 세대가 카메라를 들어, 보여주고 싶은 것, 스스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찍고, 또 찍기를 기원하는 듯하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Kambui Oluji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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