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국내영화제 취재기①] 달콤한 전주국제영화제
[2021 국내영화제 취재기①] 달콤한 전주국제영화제
  • 문건재
  • 승인 2021.05.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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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2021.04.29-05.05) 취재기
ⓒ 문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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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의 풍경 속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다. 코로나19의 멈추지 않는 질주로 한국영화산업이 불안정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 영화산업의 전체 매출은 전년보다 63.6% 감소했고, 제작 및 배급 부문의 총 피해 규모는 329억 원이었으며, 상영 부문은 무려 1조 원의 피해를 기록했다. IMF 사태, 국제 금융위기 등 힘든 시간 속에서 꿋꿋하게 성장을 거듭했던 한국 영화산업이 코로나19 사태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그런데도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열렸다. 난 전주국제영화제 취재를 위해 전주로 향했다. 그곳에는 48개국 193편의 영화, 그리고 영화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인 '영화는 멈추지 않는다'를 몸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전주에 도착 후, 제일 먼저 영화 <열아홉>(감독 우경희)을 보기 위해 CGV전주고사점을 찾았다. <열아홉>은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예상치 못하게 자유를 얻게 된 소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소정(손영주)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 속에서 그녀는 곧장 불안함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열아홉 소녀의 자유와 책임에 따른 두려움. 아이러니하게도 책임에는 항상 고통이 뒤따른다. 삶을 책임지고 산다는 것은 "내가 다 책임질게"와 같이 쉽게 뱉을 수 없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녀를 지켜보며, 문득 '책임'이란 단어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재밌게도 영화보다 내게 더 큰 떨림을 준 것은 좌석 간 거리두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극장의 풍경이다. 기침소리, 핸드폰 불빛, 대화 등 코로나19 이전에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들이 어느새 그리웠던 '추억'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한 편의 추억을 더 쌓고 왔다.

 

ⓒ 문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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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팔복예술공장에 갔다. 이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100 Films 100 Posters' 전시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2015년부터 전주국제영화제가 주최하는 포스터 페스티벌 '100 Films 100 Posters'은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중 100편의 영화에 대해 100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다. 정보 전달이라는 포스터의 본령을 넘어 영화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상업 포스터의 규칙과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상상력과 실험성을 펼치기 위해서 해마다 100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7회를 맞아 팔복예술공장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전시장 입구에는 한국경쟁작 10편의 포스터들이 줄지어 붙어있다. 그 옆으로는 이번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들의 포스터가 나를 맞이 했다. 하나하나 들여다본 포스터에는 감독이 나타내고자 했던 함축된 메시지들이 담겨있었다. 전시장을 한참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포스터 2장을 구매했다.

다음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산업프로그램인 전주프로젝트가 올해 첫선을 보이는 전주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전통문화전당 공연장을 찾았다. 이날 나는 '세션1: 한국 영화산업 대표 대담' , '세션2: 한국의 영화제작과 OTT의 만남' 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영화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영화 산업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희망적인 대화를 나눴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의 영화, 드라마 등 많은 콘텐츠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고, 이것이 한국의 미디어 산업에 큰 기회라는 말을 전했다. 섹션이 끝나니 어느새 하늘의 질감이 더욱더 깊어졌다. 친구와 늦은 저녁 약속을 잡고 전주의 시내인 객사길로 향했다. 맥주를 마시며 본 객사길에는 젊은 남녀뿐만 아니라 가족,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가 오던 밤의 풍경 때문인지, 제각각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풍경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오묘했다.

 

ⓒ 문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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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영화의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아마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곳에는 연인이 서로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거나 친구끼리 서로를 찍어주며 즐거워하는 모습. 또 나이가 있는 부모를 모시고 거리 곳곳을 소개해주는 사람, 손을 잡고 아이를 목말 태운 사람,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촬영을 하는 사람, 좁은 골목길 구석에 숨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머물러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전주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주국제영화제를 찾는 이유는 뭘까. 사실 무슨 이유로 오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본 사람들의 모습은 특별했다. 그 '특별함'이 코로나19로부터 잠깐의 해방인지,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인지, 재밌는 영화를 볼 수 있어서인지, 2년 만에 다시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의 식지 않은 열기인지는 모르겠다.

특별하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발생하거나 번쩍하고 솟구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과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내리는 비를 보며 감수성에 젖어 들 때, '흔함'이 '흔하지 않음'의 배경이 될 때 삶은 우리에게 '특별함'이라는 선물을 선사한다. 이번 취재를 통해 나 역시 특별한 경험을 했다. 무던한 일상 속 돌아볼 필름을 여러 장 추가하게 됐다. 오늘만큼은 달콤한 꿈을 꾸며 잠들 것 같다.

[글 문건재, ansrjswo@ccoart.com]

문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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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운영위원 및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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