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th JIFF] '코로네이션' 상실과 부조리의 두 얼굴
[22th JIFF] '코로네이션' 상실과 부조리의 두 얼굴
  • 이지영
  • 승인 2021.05.0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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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연출하는 재난 상황의 부조리극과 무력한 개인의 상실을 다루다"
ⓒ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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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코로나19)의 최초 기억을 되짚어 보며

왕웨이웨이의 <코로네이션>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우한시 시민들이 제보한 영상들을 편집 없이 이어 붙인 콜라주 같은 작품이다. 영화 도입부에서는 우한시를 상공에서 조감한다. 응급실 주위에 유일하게 반짝이고 있는 앰뷸런스들과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유령 도시와 같은 모습, 도시의 정적 그 자체를 보여주면서 SF 영화 같은 배경음악이 깔린다. 2019년 12월부터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세상은 뒤집힌 듯했고, 마치 재난 영화가 현실로 범람한 것처럼 현실은 더 현실 같지 않게 되었다. 바이러스가 단시간 내에 확산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가족과 친구를 잃었으며, 코로나19는 점차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 근처에 도사린 일상적인 위험이 되었다.

영화의 전반부는 내레이션이 전무한 상태에서 코로나 시대의 진풍경 자체를 보여준다. 예컨대 중국 의료진이 전국에서 우한시에 파견되는 모습과, 이들이 병원에서 진료하는 모습을 길고 느린 호흡으로 보여주는 씬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긴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서 카메라의 감시 아래 방호복을 입으며 손을 오래 비비면서 씻는데, 모든 프로세스는 기묘할 정도로 신중하고 천천히 진행된다. 통상적인 재난 영화들은 바이러스의 위력과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전 세계 퍼지는 양상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곤 한다. 반면 <코로네이션>은 이렇듯 정적이고 지루한 '영화적'이지 않은 현실을 무편집본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2시간 이내에 끝나는 블록버스터 재난영화가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도 지루한 체화된 공포이며, 그 시간은 누군가의 괴로운 노동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가 체험한 단 수십 분의 시간은 그것의 아주 작은 편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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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선은 비상 상황에 국가가 개인을 책임져주지 않는 부조리한 상황으로 향한다. 우한시에 파견되었다가 시가 폐쇄되어 고립된 건설현장 노동자가 등장한다. 그는 증명서를 떼고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교통경찰이 그를 회사로, 방역 담당 부서로, 구청으로, 민원국으로 넘기고 또 넘기는 과정은 부조리극에 나오는 인물들의 여정과 빼 닮아있다.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고위 간부가 그의 이야기를 듣더니 증명서를 발급할 수 없다고 최종 선고를 내린다. 건설현장 노동자의 이야기는 어딘가 카프카 소설 속에 나오는 일화 같기도 한데, 그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그는 모든 통화에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이때 이 감정은 절제된 것인가 통제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 어린 조카와의 안부 통화에서 한참 대화가 진행되다 "삼촌 보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통화가 끊기고 저편에서 대답이 없자 일순간 그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 표정에서 어떤 절망의 심연이 보인다.

위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의 시선은 점차 개인들의 삶을 파고든다. 국가와 당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노모는, 서구 사회에서 퍼져가는 전염병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우수한 체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자신을 인터뷰하는 아들에게 역설한다. 마오쩌둥 시대를 거쳐 70년대 노조위원장으로 활약한 이 노인은 시대가 낳은 인물로서 흥미로운 점이 많다. 아들이 끊임없이 현실의 문제를 제기할 때 노모의 당황하고 흔들리는 표정을 아들의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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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과 정 반대편에 서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전염병의 위험성을 은폐하려고 했던 당국의 초기 대응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도시가 폐쇄되어 유가족들이 망자의 유골함을 가져오지 못하는 상황, 공장에서 찍어내듯 나오는 유골함들, 유골함을 안고 통곡하는 사람, 망자를 기릴 장소를 찾지 못해 길거리에서 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강렬하여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초반에 이미 언급했던 SF영화와 같은 음악은 이제 점차 둔탁한 북 소리, 현 소리와 함께 위령제에 쓰일 것 같은 음악으로 변한다.

2020년을 다시 뒤돌아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정리하기에는, 바이러스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게 묻어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전 일인 것만 같은 작년의 일들을 타국 시민들의 시선으로 다시 복기할 수 있었다. <코로네이션>은 두 얼굴을 보여준다. 그것은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국가의 얼굴, 그리고 상실을 겪은 무력한 개인들의 얼굴이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영화 '코로네이션' 포스터
ⓒ 영화 '코로네이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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