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th JIFF] '크립토주' 환상으로 만들어낸 은유의 동물원
[22th JIFF] '크립토주' 환상으로 만들어낸 은유의 동물원
  • 배명현
  • 승인 2021.05.0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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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 연출로 다가간 환상의 영역"

사람들이 영화제에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단 한 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감독과 만나는 것이다. 물론 일 대 일 대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몰랐던 감독의 영화를 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만남이 좋았다면 감독의 다음 영화를 지지할 나만의 내적 동기를 품고, 기다린다. 실패할 때도 있다. 영화제 전 기간을 통틀어 마음에 들어오는 영화 한 편도 만나지 못한 적도 많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국제영화제

미국의 애니메이터 대쉬 쇼(Dash Shaw)는 현재 가장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국식 그림체와 일본식으로 대표되는 지브리의 장편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는 찾기 힘든 과감함이 눈에 띈다. 그림 작가와 그래픽 노블 작가 이력이 더 눈에 띄는 이 감독의 새로운 착품 <크립토주>는 시각적 독창성과 과감함을 러닝타임 91분 동안 쉴 새 없이 밀어붙인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관객은 환상에 빠져든다.

대쉬 쇼는 환상성이라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서사를 구축한다. 그가 영화 안에서 재현한 현실 자체는 그리 새로운 세계는 아니다. 내용은 신화적 동물 혹은 반인반수가 세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이 생물인 '크립티드'에게 우호적인 이들은 사냥과 남획으로부터 지키려 '크립토주'라는 동물원을 짓는다. 물론 이 크립티드에게 반 우호적인 이들도 존재한다. 군대는 이 크립티드들을 포획해 무기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크립토주로 침범한다. 선한 프로타고니스트와 악한 안타고니스트식 이분법으로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영화의 시작은 크립티드를 보호하는 진영의 입장에서 서술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경계가 모호해진다. 선은 없고 크립티드를 이용하려는 욕망만이 남겨진다.

 

ⓒ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국제영화제

배경이 냉전 시기임을 전제로 했을 때, 크립티드들의 은유는 역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소수, 취약 계층과 인종 그리고 역사에서 배제된 자들일 수도 있고 실제 동물일 수도 있다.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제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현실적 문제 혹은 필요에 의한 당위를 내세우며 보호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호가 그들 스스로 책임과 선택의 가능성마저 빼앗는 것을 아닐지 영화는 끝에서 제시한다. 하지만 걱정하진 말자 이 영화는 관객을 가르치려 드는 영화는 아니다. 일종의 SF적인 가상의 일화를 사용하여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긴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상상력을 통한 화풍에 있다.

그는 '동화'에서 가지고 온 듯한 환상성을 스크린으로 옮겨 가지고 온다. 관객은 이 때 생경한 감각을 느낀다. 본적 없던 그림체와 색감 그리고 연출. 그의 연출은 특별하다. 그림으로 영상을 만들어낸 다는 점 때문일까. 컷과 컷의 연결이 씬 바이 씬이 아닌 수채화로 때로는 A에서의 그림이 B의 그림으로 '침입'해 들어가듯 연결된다. 미술을 전공으로 한 필자가 정말 놀란 점은 대체 이런 침입이 어떻게 가능했냐는 점이다. 손 그림을 기반으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스톱모션도 아니고 전통적인 프레임 기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기법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대형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애니메이션에서 인물을 그릴 때 '호감'에 집중해 더욱 매력적인 인물 그림을 그려낼 때 대쉬 쇼는 자기만의 길을 간다.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는 생경한 색으로 얻어낸 생명으로 생동한다. 영화의 서사적 절정에서 혼란을 그려내는 필치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건 이 단단한 캐릭터들 때문일 것이다. 5년의 제작 기간 동안 얼마나 피나는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봉준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작업 경험을 회상하며, 하루 종일 그림 작업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상으로는 불과 몇 초에 불과해 힘들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번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 작품으로 넥스트 제너레이션 상을 수상했다. 그의 <크립토주>는 <나의 학교 전체가 침몰한다>(2016)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지금까지 일본과 미국에서 본적 없던 연출로 다음 세대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매력적인 그림과 독보적인 연출을 기반으로 약간은 빈약한 서사를 잡는다면―괜찮은 퀄리티와 그림에 어울리는 각본―다음 작품은 아마 정식 개봉을 통해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전주 국제 영화제의 발견은 대쉬 쇼 그리고 그와 함께한 스테프들이었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영화 '크립토주' 포스터
ⓒ 영화 '크립토주' 포스터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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