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물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
[interview] 인물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
  • 오세준
  • 승인 2021.05.0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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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라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그리고 어디에서 살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미아는 즉흥적으로 시작했던 석사 학위가 끝나가는 단계에 있다. 비엔나로 이주를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친구인 나타샤까지. 이들은 떠돌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웃사이드 노이즈>(2021)는 아날로그 질감의 16mm 이미지와 방황하는 인물을 내세워 불면증적 만남을 그린 작품으로, <쇼트 스테이Short Stay>(2016), <고전주의 시대Classical Period>(2017)에 이어 일반인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아날로그 영화들을 만들어 온 테드 펜트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주를 찾지 못한 테드 펜트 감독과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Egle Cepaite
ⓒ Egle Cepaite=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해외감독 중 한 분이 아닐까.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작품상을 수상(<쇼트 스테이>),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 활동과 더불어 두 번째 장편영화 <고전주의 시대>가 초청. 그리고 올해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아웃사이드 노이즈>로 돌아왔다.

└ 테드 펜트 감독: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아웃사이드 노이즈>를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굉장히 기쁘다. 영화제 직접 가는 것을 선호한다. 이른 시일 내에 한국에 다시 갈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웃사이드 노이즈>를 포함한 감독님의 전작은 스토리텔링이라는 매체 영화의 거부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정지하고 지연시키고자 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이러한 형식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가적 고집'이 있는가.

└ 테드 펜트 감독: 이야기보다 캐릭터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강력한 캐릭터가 잘 구현된다면, 카메라를 통해서 이야기가 잘 전달될 것이고, 그것이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라 생각한다. 좋은 이야기를 통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지만, 나의 경우 캐릭터를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루는 영화를 선호한다. <아웃사이드 노이즈>의 경우, 영화를 촬영하기 전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처음에 만든 대본을 배우들에게 전달했더니 혹평을 들었다.(웃음) 배우들은 이 각본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다며, 여러 방식을 통해서 대화를 나누며 대본을 다시 만들게 됐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캐릭터는 분명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 안에는 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실제 요소가 한두 가지 담겨있다. 결국, 영화 속에서 인물은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가져온 현실적인 요소들을 조금씩 확장하여 만들어진 셈이다.

 

<고전주의 시대> ⓒ 전주국제영화제
<고전주의 시대> ⓒ 전주국제영화제

감독님의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감독님의 경험을 고스란히 옮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감독님의 일상, 즉 현실을 영화로 다루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일상의 소재를 허구로 가져오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변형하고 가공하는지 궁금하다.

└ 테드 펜트 감독: 평소 직관적으로 결정을 하는 편이다. 나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서 영화의 느낌이 달라진다고 느낀다. <아웃사이드 노이즈>의 경우, 관객들이 멜랑꼴리(melancholy)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아마 이 영화를 만들 당시 나의 기분이 멜랑꼴리했던 것 같다.(웃음)

나의 경우, 배우들 혹은 영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들로부터 많이 반응하는 것 같다. 서로 여러 의견을 제안하고, 일상을 이야기할 때, 나만의 필터를 통해서 영화의 무드, 그 무드가 영화의 필요한 이유 등을 결정한다. 보통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하면서 "학교 그만둘래!"와 같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지 않나. 어떤 이야기가 반드시 특정 장소에서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 여러 상황에서 이뤄지도록 하는 것, 즉 나의 필터를 통해서 누군가의 제안이나 여러 이야기들이 다시 합쳐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나의 이야기보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이야기에 감독이라는 이유로 나의 어떠한 것들이 많이 투영되거나 대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와 인물들 사이의 균형, 그 안에 물론 배우들도 포함되는 것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라는 게 사실 의도했던 것 말고, 의도가 빗나가면서 더 갑자기 살아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세상이라는 소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 영화'라고 들었다. <아웃사이드 노이즈>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테드 펜트 감독: <고전주의 시대> 촬영이 막바지로 접어들 때쯤 영화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미아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처음 시작됐다. 아침을 함께 먹고 있던 미아는 갑자기 "석사를 해야 겠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말이 흥미롭게 느껴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몇 달이 지나 비엔나에서 영화 속 다른 주인공인 다니엘라와 저녁을 먹게 됐다. 그녀는 최근 "불면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생각이 굉장히 독창적이었다. '미아의 이야기와 다니엘라의 이야기를 연결하면 재밌는 소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람들과 영화를 찍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소음'이라는 생각 자체는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에서 가져오게 됐다. 제1강 '존재자가 없는 존재' 부분에 "불면증을 생각해 보라. 이번에는 상상을 통한 경험이 아니다. 불면은 상태가 끝나지 않으리라는 의식, 즉 우리를 붙잡고 있는 '깨어 있음'의 상태를 벗어날 도리가 없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깨어 지키고 있는 상태, 여기에 묶여 있는 순간, 시작점과 종착점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과거에 용접된 현재는 모두 과거의 유산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새롭게 하지 못한다. 지속하는 것은 언제나 동일한 현재이거나 동일한 과거이다. 기억. 이것은 이미 과거에 대해 하나의 해방일 수 있다. 여기서 시간은 어디서도 시작하지 않는다. 멀어지는 것도 없고 흐릿해지는 것도 없다. 밖에서 들리는 소음만이 내가 잠들지 않고 있음을 알려 준다. (...) 새로운 시작을 끌어들이는 것은 밖에서 온 소음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 제목으로 이어지게 됐다.

 

ⓒ Egle Cepaite=전주국제영화제

나타샤, 미아, 다니엘라가 도시를 유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인물들이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 테드 펜트 감독: 영화 처음 베를린에서 다니엘라가 아나를 만났을 때,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변을 관찰한다. 난 그 주변에 있는 모습들을 주목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 인물이 각자 서로에 집을 방문하고 여행을 감으로써 주변을 통해서 느껴지는 방향성 같은 것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원했다. 이로 인해 불면증과 유랑 사이에 어떤 연결 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요 인물들에게는 내면의 불안이 있어 보인다.(특히, 다니엘라와 미아) 이에 비해 영화의 시각적 분위기는 밝고 따뜻한 편으로 불안을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는 아닌 것 같다. 이러한 대비는 이들이 느끼는 불안을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감이 크다고 할 수는 없어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한 것, 그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의도한 바인가. 이들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졌는가.

└ 테드 펜트 감독: 영화 안에서 이뤄지는 많은 대화들에서 어떤 특정한 주제나 테마를 강조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인물들의 의상부터, 장소, 조명 등 최대한 통제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찍고자 했다. 심지어 어떤 것을 보완하거나 대조를 주려는 것조차 원치 않았다. 모든 것들이 인물들의 대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흐르기를 바랐다. 관계 설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기본적인 리얼리티는 비엔나에 사는 다니엘라와 베를린에 사는 미아가 서로의 집을 방문하는 것, 그들의 만남 속에서 이야기(픽션)가 생기는 것이다. 이 인물들이 계속 연락을 하고 만나고 이동하고 다시 또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체적인 구성이다. 원래 미아와 다니엘라는 서로 모르는 존재였는데 영화를 통해서 친구가 된 것이니. 석사를 시작하게 된 미아가 정해지지 않은 논문의 토픽을 두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대화는 죽음에 이르는 경계로 향하지 않나. 그 이야기가 나올 때, 카메라도, 공간을 비추는 빛도,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순간. 이러한 상황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 계획은 했지만,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영화의 스토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 이후 첫 번째 장면이 다시 나오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들이 앞으로도 비슷한 형태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나갈 것만 같다. 이것은 의도되었는가.

└ 테드 펜트 감독: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의 전개나 흐름, 특히 엔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영화 촬영이 끝날 때쯤에 결정이 났다.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인물들이 어디론가 계속 움직이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계속해서 다른 관점으로 (인물이나 도시) 보여주고 싶었다. 이러한 전개는 상황에 따라 평범하게 생각했던 것들(ordinary)이 이상하게 바뀌는 되는 것(Extraordinary), 이런 과정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전작들보다 <아웃사이드 노이즈>에는 여러 도시들이 등장한다. 도시의 모습이 카메라에 직접 담기기도 하고, 식물과 달 등 중간중간 삽입되는 이미지가 특별히 정적이다. 풍경과 사물이 주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는지. 무심코 지나는 도시의 풍경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 테드 펜트 감독: 비엔나와 베를린, 두 도시를 굉장히 좋아한다. 예전부터 두 도시에서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 <아웃사이드 노이즈>는 베를린, 비엔나 등에서 촬영했지만, 영화를 보았을 때 관객들이 단번에 '그 장면의 장소가 어디인지' 느끼지 않도록 촬영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관광명소가 아닌 특정 동네이다. 도시가 가지는 특정한 이미지를 강조하기보다는 장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부와 외부의 이미지를 통해서 그 장소만이 가지는 리얼리티를 전달하고자 했다. 참고로 영화에서 에펠탑을 보여주면서 자막으로 '파리'라고 쓰는 것은 관객을 인텔리하지 않게 본다고 생각한다.(웃음)

 

ⓒ Egle Cepaite=전주국제영화제
ⓒ Egle Cepaite=전주국제영화제

<아웃사이드 노이즈>는 낮의 영화로서 존재한다. 실내든 실외든 매 씬이 인물과 장소를 둘러싼 빛을 밀도 있게 담고 있다는 느낌이 짙다. 더군다나 영화 속 빛은 초반 불안한 성질을 내포하고 있던 것과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희망적으로 변화한다. 당신의 연출에서 빛은 얼마나 중요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테드 펜트 감독: 이전 작품들은 극심한 콘트라스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자연광으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인공적인 조명 세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작품은 날씨와 상관없이 자연광만을 가지고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따라준 촬영감독들과 작업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장소에 따라서,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서 변화하는 빛을 카메라 담아냈을 때, 얻게 되는 매력이 있다. 빛에 따라서 무드나 질감이 바뀌는 느낌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웃사이드 노이즈>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한없이 이어지는 화면의 연쇄이다. 마치 카메라가 인물들을 '찾아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모든 숏에 사람을 담는 것'은 처음부터 기획된 것인지. 촬영감독이랑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 테드 펜트 감독: 물론, 촬영감독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형태로든 인물들에게 아주 친밀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전작인 <고전주의 시대>는 정적이었다. 장소를 세팅한 다음 사람들이 앉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을 주로 찍었다. 이번에는 카메라가 패닝이 된다거나, 인물들이 자유롭게 움직인다거나 등 인물들에게 가깝게 다가감으로써 생동감 있게 보였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이러한 부분들은 촬영감독들과 많이 논의하면서 촬영했다.

[인터뷰 오세준, 선민혁, 배명현]

[취재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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