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걸>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 초청작으로 <릴리아 쿤타파이의 6단계법칙>(2011), <타다나의 모든 것>(2014), <네버 낫 러브 유>(2018)로 알려진 앙투아네트 하다오네(Antoinette JADAONE) 감독이 연출했다. <팬 걸>은 2020 메트로 마닐라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을 포함한 8개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16세 소녀인 제인은 유명 배우 파울로에게 열광하고 있다. 그녀는 그의 첫 출연 방송부터 사생활에 관련된 소문까지,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열성적인 팬이다. 제인이 사는 동네의 쇼핑몰에 파울로가 무대인사를 하러 온 날, 그녀는 열성팬답게 수업을 빼먹고 파울로를 보기 위해 쇼핑몰에 방문한다. 무대인사가 끝나고 파울로가 퇴장하며 인파가 몰리는 혼란스러운 순간에 제인은 몰래 파울로의 차에 숨어든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결국 도시 외곽에 있는 그의 거처에 도착한다. 열성 소녀팬 제인에게 이것은 행운이 될까, 불운이 될까?
제인은 결국 파울로에게 발각되지만, 시간이 늦어 파울로는 어쩔 수 없이 그녀가 그의 집에서 하루 동안 머무는 것을 허락하게 된다. 제인은 꿈에 그리던 파울로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되는데 그녀는 이 사실에 매우 기뻐하고 이를 즐기면서도, 상상해본 적 없던 파울로의 개인적인 모습들에 놀라기도 한다. 파울로 실제 모습은 미디어를 통해 볼 수 있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욕설을 일삼았으며 음주와 흡연, 약물에 찌들어 있었고 치정문제에도 얽혀 있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모습들에 충격을 겪으면서도, 어쨌든 제인과 파울로는 소통하며 각자 자신이 가진 내면의 우울을 토로하는 교감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제인은 그녀가 원하던 대로 파울로와 가까워지는데, 다혈질의 파울로가 우발적으로 벌이는 위험한 행동을 지켜보게 되면서 결국 '탈덕'하게 된다.
한바탕의 사건들을 겪은 제인은 다시 원래 살던 도시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곳에는 피하고 싶은 일상이 있다. 제인의 모친은 애인에게 의존하고 있고, 그 애인은 제인과 제인의 모친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다. 제인의 침대 옆 벽에는 파울로의 사진들이 붙어있다. 지긋지긋한 일상의 해방구이던 파울로를 만나 그의 실체를 깨닫고 온 제인은 자신의 부정적인 상황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한다.
한 팬이 자신의 우상을 실제로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는 소재는 그다지 특별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진부하거나, 지루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대신, 몇 가지의 특별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깔끔하다는 것이다. 인물들의 사정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플래시백이 없으며 중요한 순간에 앞서 괜히 분위기를 잡지도 않는다. 캐릭터들은 각자의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코 단순하지는 않다. 또한 앙투아네트 하다오네 감독은 동경하던 스타를 만난 팬이 그의 실체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단지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로만 소비하지 않고, 주제의식을 이끌어 낸다. 영화는 남성권력과 폭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영화에서 이러한 질문이 등장하는 순간은 갑작스러우면서도 맥락이 맞아떨어져 꽤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제인이 영화의 결말부에 하는 행동은 러닝타임이 끝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준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