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th JIFF] '로비' 잘 죽어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22th JIFF] '로비' 잘 죽어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 이지영
  • 승인 2021.05.0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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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죽음의 사유 안에 관객을 초대하다"
감독 하인츠 에이미홀즈(Heinz EMIGHOLZ) ⓒ Filmgalerie 451=전주국제영화제

영화가 내포하는 자본주의의 역설

하인츠 에이미홀츠 감독의 <로비>는 <마지막 도시>의 속편이다. 1시간 16분 동안의 다소 짧은 러닝타임 동안 로비에 앉은 남자(존 어드먼)의 긴 독백을 우리는 듣고 앉아있어야 한다. 마치 대화를 하는 듯이 그는 카메라를 응시하지만 사실 그는 관객을 볼 수 없고, 양자 간에는 어떤 대화도 성립되지 않는다. 해가 지고 사람들이 퇴근해서 로비에 들어올 때까지, 남자가 다루는 주제의 핵심은 시종일관 '죽음' 그 자체이다. 전편 <마지막 도시>의 리뷰에서는 서로 다른 인간들이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유한한 시간에 대해 언급을 한 바 있다. 이 속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단지 죽어가는(lying) 과정에 불과한 우리의 유한한 시간이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블랙홀 너머 우주의 원자로 돌아간 죽은 상태(death)의 무한한 시간에 대해 생각해야 할 뿐이다.

예컨대 누군가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 죽어간 그 과정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함으로써 상대가 진정한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빼앗는다. 종교, 마약, 섹스가 주는 황홀경 또한 죽음 자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한데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나, 황홀경은 우리가 삶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속 살려는 의지를 갖게 하는 무언가이다. 누군가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어떤 극단적인 표현일 뿐, 가족 혹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종교, 마약, 섹스에 탐닉하지 않더라도 일과 성취와 예술에 몰두하고, 새로운 경험에서 황홀경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물들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이렇듯 삶을 바라보는 영화의 냉소적인 태도는, 보통의 관객이 영화에게서 바라는 바를 충족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영화관을 나서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나와 주변 인물들,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면서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란 우리들의 평범한 기대치를 보기 좋게 꺾는다.

 

ⓒ Filmgalerie 451=전주국제영화제

게다가 주인공의 냉소적인 태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자서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그는 <산 것, 아직 사지 않은 것, 여전히 사고 싶은 것>의 목록이 바로 한 사람의 자서전이 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냉소의 극치이다. 자본주의적 삶은 우리 스스로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면서, 각자의 독자성을 갖는다는 착각을 하게끔 한다. 사람들은 선망하는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망하면서 같은 물건을 사고, 같은 행동양식을 따른다. 하지만 시니컬한 자의 관점에서 이것은 비슷한 소비 습관을 추종하고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면서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모 일본 컨설턴트이자 쇼 호스트가, 몇 년 뒤 자신의 쇼핑몰을 창업했던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남자는 애초에 이 영화가 어떤 관객에게는 어떤 '인사이트'도 '감동'도 주지 않는 영화임을 스스로 자처한다. 자기 내면의 고백도, 교훈적인 설교도 아닌 이 장광설을 왜 1시간 16분 동안 듣고 있어야 하는지, 혹자는 불평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사실은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전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고, 어떤 행위에 깊게 도취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직 사지 않은 원하는 대상(이를테면, 집)을 사기 위해 시스템 안에서 부지런히 노동하는 것. 이것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죽음만 생각하면서 식물처럼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 밖의 세상은, 미생물과 박테리아로 가득한 이 세상은 단연코 그럴 수 없다. 주인공이 말하길 이에 비해 영화의 세계는 유토피아이다. 먹지도 배설하지도 않는 이 이미지와 사유의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제 고민할 시간이다.

주인공은 본인 스스로가 이 영화에 투자했기 때문에 관객의 이 시간을 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관객과 평단의 눈치를 볼 것도, 흥행을 걱정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무도 듣지 않으려는 주제, 바로 죽음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마음껏 펼쳐 놓겠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을 때만큼은, 관객들은 세상사에서 잊고 있던 어떤 무한한 시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영화는 관객들의 이 시간을 산 것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자본주의의 역설인가.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영화 '로비' 포스터
ⓒ Filmgalerie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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