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on Prime] '마이애미에서의 하룻밤' 기수가 궁지에 몰리다
[Amazon Prime] '마이애미에서의 하룻밤' 기수가 궁지에 몰리다
  • 이지영
  • 승인 2021.04.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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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물이 대변하는 60년대의 초상
ⓒ 아마존프라임
ⓒ 아마존 스튜디오 (Amazon Studios)

<마이애미에서의 하룻밤>은 1960년대 문화계 각 분야에서 전성기를 맞은 흑인 스타인 샘 쿡(레슬리 오덤 주니어), 무하마드 알리(일라이 고리), 짐 브라운(알디스 호지)과 마찬가지로 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이끌어간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킹슬리 벤-아딜)가 어느 허름한 호텔 방에서 한자리에 모인다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앞의 세 사람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인종에 대한 편견마저 뛰어넘으면서 당대의 예술, 체육계를 주름잡은 인사들이다. 이들은 초반에 백인들끼리의 리그를 자신들이 평정한 듯이 하늘을 찌르는 기운을 과시한다. 영화는 총기와 객기가 넘치는 건장한 젊은이들을 한 자리에 묶어놓고, 이들이 가리고 있는 진실된 감정은 무엇인지, 나아가 이들의 공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토론하는 장을 연다.

그토록 꿈꾸던 코파카바나 무대에서 백인 관객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음에도 거액의 돈을 받으며 꿋꿋이 노래하는 샘 쿡, 고향에 금의환향하지만 ‘검둥이는 실내에 들이지 않는다'며 환대도 문전박대도 아닌 대접을 받는 짐 브라운, 그리고 얕잡아 보던 백인 상대에게 패배하고 마는 캐시어스 클레이까지. 각자가 머무는 화려한 일터에서 내면에 머금고 있는 모멸감과 내재된 분노는, 맬컴 엑스가 이들을 한데 모을 수 있었던 단초로도 보인다. 한편 맬컴은 그가 한동안 몸담고 있던 이슬람 공동체 리더인 일라이자 무함마드의 비리와 실체를 알게 되고, 어떠한 지원군도 없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홀로 떠나야 하는 사상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가 아내 베티와 나누는 대화에서,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떠나게 된다면 그를 뒷받침해주는 세력도, 아니 어떠한 친구도 남아있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가 인생에서 한 막다른 지점까지 왔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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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존 스튜디오 (Amazon Studios)

이런 상황에서 맬컴은 상황을 타진하며 당대 문화계를 석권한 힘센 코끼리들을 한꺼번에 모는 기수가 되고자, 캐시어스가 월드 챔피언이 된 날 이들을 한 호텔 방으로 억지로 불러들인다. 술도 없고 바닐라 아이스크림밖에 없는 허름한 방에서, 마치 어린아이들을 달래고 감화하는 듯한 그의 시도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영화를 추동하는 사두(四頭)마차 중 주축이 되는 말은 분명 킹슬리 벤-아디르가 분한 맬컴 엑스다. 그의 연기는 어쩔 수 없이 덴젤 워싱턴 주연의 전기 영화 <말콤X>(1993)의 비장한 명연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마이애미에서의 하룻밤> 속 맬컴 엑스는 투철한 사상가로 무대에 등장하지만 끝내는 자신의 타깃들에게 역으로 시험을 당하고 회의감에 빠지게 되는 인물로, 킹슬리 벤-아디르는 인생의 한 갈림길에 놓인 맬컴 엑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연기에 더욱 집중한다.

도시에서는 챔피언의 승리를 축하하는 불꽃놀이가 보이고, 주인공인 챔피언이 빠진 파티가 이어지고 있다. 챔피언이 없는 데도 아무렇지 않게 진행되는 파티는 어딘가 미묘한 씁쓸함을 자아낸다. 그런데 허름한 호텔방 안에서도 아직도 승리의 여흥에서 못 벗어난 캐시어스가 있다. 그를 설명하는 단어는 한마디로 '자아도취'이다. 2016년 타계할 때까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유명한 말들을 남겼던 무함마드 알리의 어록 중, "I'm not the greatest; I'm the double greatest."라는 문장을 다시금 상기해본다. 22살에 생채기 하나 없이 세계 복싱계를 제패한 그는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외치는데, 링 위에 오르기 전에 맬컴 엑스 옆에서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면서 신과 믿음에 의지했던 기억은 온데간데없는 듯하다.

 

ⓒ 아마존 스튜디오 (Amazon Studios)

영화는 무함마드 알리라는 전설적인 캐릭터를 스스로 형성해 가기 이전의 아직 미숙하고 오만해 보이기도 하는 캐시어스라는 인물에 집중한다. 그의 자아 도취적이며 심지어 유아적인 태도는 1960년대 흑인 문화계 인사들이 때 이른 팡파레를 터뜨렸던 당대의 축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캐시어스라는 인물로 현현한 나르시시즘적 태도는, 특별히 흑인우월주의라는 급진 사상으로부터 수혈을 받았을 여지가 있다 (혹자는 이것을 감독의 상상력이자 역사적 해석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흑인은 위대하다. 어쩌면 백인보다 더 위대하다. 우리가 그동안 위대할 수 없었던 것은 백인 '악마'들의 억압 때문이다'라는 이분법적인 대적 논리이다.

맬컴 액스가 60년대 흑인의 유망주 스타들을 자신의 무기이자 전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스스로 위대함과 능력을 맹신하도록 해야만 했다. 그다음엔 이들을 '신성한 사상의 전쟁터'로 내보낼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예비 전사들은 맬컴이 기대하는 것만큼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 격한 토론 과정에서 드러나고 만다. 캐시어스가 포효하듯 온 세상에 힘을 과시하는 것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뚜렷한 확신이 없었음을 방증한다. 그가 챔피언이 될 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을 오직 맬컴 혼자만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서로가 같은 처지인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오는 불안감을 은연중에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천하를 얻은 듯한 자신만만한 태도 뒤에는 자신보다 더 거대한 적, 눈에 안 보이는 세력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 아마존 스튜디오 (Amazon Studios)

다음 타자, 어쩌면 맬컴이 포획에 나선 가장 큰 타깃은 유명 가수이자 작곡가 샘 쿡이다. 맬컴은 그의 보스턴 무대를 보면서, 마이크도 없이 단순한 리듬 하나만으로 대번에 흑인들로 가득 찬 군중을 대동단결시키는 그의 음악이 갖는 힘을 절감한다. 그러나 애초에 맬컴이 생각하기에 샘은 피상적이고 대중적인 가사를 쓰면서 영리하게 세일즈를 하는 가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본주의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돌아가는 생리를 꿰뚫고 있는 그는 천상 사업가이다. 그의 원곡을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커버하고, 그 앨범을 백인들이 살 때 누구의 주머니가 불려지는가? 샘은 자신이 파이의 레시피를 아는 사람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친다. 그러나 토론이 진행됨에 따라 그 또한 청중의 영혼을 두드리고자 하는 목마름을 지닌 예술가였음을 고백하게 된다.

단순하고 충직한 캐시어스처럼 쉽게 침투하기에는, 샘 쿡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맬컴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때로 그와 대적할 만큼 일관적이고 논리정연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적 지도자는 자신이 시험하려고 했던 대상에게 도리어 역공을 당하며 점점 답답하고 꽉 조이는 양복 안에 갇혀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인다. 샘의 논리는 단순명료하다. 백인들의 ‘딴따라’가 되어 최정상에 이르게 된들 그 과정이 무엇이 중요한가? 다른 흑인들이 못 누리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백인들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연설보다 덜 고무적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그는 묻는다.

두 인물의 어긋남과 갈등이 점차 고조되면서 맬컴과 샘은 서로에게 칼이 되는 말을 내뱉는다. 맬컴은 고리타분하고 직업도 재능도 없이 스타들과 어울리려 하는 냉소적인 연설가, 샘은 백인들의 장단에 맞추어 얕은 음악을 하는 자기파괴적인 <원숭이 인형>이자, 영악하고 사업 수완도 없는 흑인 부르주아 사업가로 묘사된다. 그러나 샘이 맬컴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결국 그에게로 돌아오는 것은, 어쩌면 그가 가장 갈급했던 것을 정 반대에 있는 인물이 시원하게 긁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밥 딜런의 곡이며 존 바에즈 버전으로도 유명한 60년대 히피 저항 문화의 상징인 <Blow'in in the wind>는 반드시 맬컴의 해석대로 흑인 인권운동을 지지하기 위해서만 지어진 노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의 가사가 담은 풍부한 함의와 깊이는 샘에게 그만큼 깊고 큰 충격을 준다.

 

ⓒ 아마존 스튜디오 (Amazon Studios)

마지막으로 인물인 짐 브라운은 넷 중에서 타고난 솔직함의 화신이다. 그는 무슬림이 되기엔 할머니의 폭찹과 백인 여자들이 좋다고 말한다. 그는 연기가 하고 싶다면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NFL을 그만두는 직진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캐시어스를 대신하여 "쟤는 이길 거라고 예상 못했어"라고 대신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토론장에서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는 누구를 위한 무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맬컴 엑스는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영화의 말미에서 짐을 포함한 '스타'들은 더 승승장구하는 반면, 맬컴은 그의 모든 기반이 전소되는 비극을 겪는다.

<마이애미에서의 하룻밤>은 급진적인 흑인우월주의 운동이 결국 자기모순의 수렁에 빠지는 과정과 개개인들은 스스로 계속해서 재정비하고 단련하여 한 단계씩 다음의 족적을 남길 수 있었는지를 대조한다. 즉, 이들 운명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맬컴 엑스로 대변되는 60년대의 급진적인 인권 운동이 이 스타들을 완전히 길들이고 무기화하지는 못하였더라도, 분명히 이들 사이에서는 유의미한 작용과 반작용이 존재했던 것도 영화는 놓치지 않고자 한다.

영화는 맬컴 엑스의 중요한 사상적 전환점이 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후 그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완전히 떠날 뿐 아니라, 메카 성지 순례 등을 거쳐 급기야 자신의 사상의 한계점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여러모로 사상적인 수정을 시도하려고 하였으나, 너무 빨리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맬컴 엑스에 대한 평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분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지나 킹 감독은 세속주의 앞에서 점차 무너져 내리는 과격한 이상주의자의 상, 한 지도자의 고뇌를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나, 이 전환점이 갖는 함의나 이후의 행적에 대한 충분한 논의는 생략한 채 급하게 서사를 마무리한 감이 없지 않다. 또한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냄에 있어서 동어반복적인 대사들도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중 후반부의 격렬하게 벌어지는 네 인물의 토론에서는 오늘날의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이어지는 유효한 인종 문제, 인권 문제에 대한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아마존 스튜디오 (Amazon Studios)

마이애미에서의 하룻밤

One Night in Miami

감독
레지나 킹
Regina King

 

출연
킹슬리 벤-아딜
Kingsley Ben-Adir
엘리 고레Eli Goree
알디스 호지Aldis Hodge
레슬리 오덤 주니어Leslie Odom Jr.
랜스 레드딕Lance Reddick

 

제공 아마존 스튜디오 (Amazon Studios)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0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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