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21세기 로드무비 서사
'노매드랜드' 21세기 로드무비 서사
  • 배명현
  • 승인 2021.04.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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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광활한 들판과 도시 사이에서 유랑하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미국의 평야를 달리는 벤 한 대가 있다. 이 벤에게 목적지는 없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다시 저곳에서 그곳으로 자리를 옮길 뿐이다. 계절을 따라, 길을 따라 이동한다. 사람과 접촉하긴 하지만 강한 유대를 가지진 않는다. 필요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꺼린다. 벤들이 있다. 그들은 잠시 군집 형태로 모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잠시일 뿐이다. 이들은 어딘가로 이동해야만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위해 그들은 움직인다. 이 영화 안에서 만난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주관적 논리하에 노매드적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이들을 낭만화하거나 아름답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의해 쫓기는 듯 다급해 보인다. 무언가가 이들의 뒤를 쫓고 인물들은 이를 피해 움직인다. 움직임을 멈추면 그대로 죽어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디론가 계속 이동한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들을 추동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안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듯, 펀은 사업 실패로 노매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중간중간 유통 대기업 아마존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이들의 뒤를 쫓고 있던 것은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대표되는 08년도의 세계 금융위기의 후폭풍이었다. 다시 말해, 펀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무형의 괴물을 피해 도망가는 작은 사냥감이다. 그렇기에 <노매드랜드> 이렇게 다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생존에 대한 실험인 동시에 서바이벌 다큐멘터리라고.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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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존극을 다루는 감독의 눈은 영민하다.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이라는 인물의 뒤를 따라 움직인다. 그렇다고 해서 하드 보일드한 시선으로 감정 없이 '사실'들의 나열을 우선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은 이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카메라에 배경과 함께 '색'으로 담아낸다. 하드보일드의 시작이 1차 세계대전과 자본주의의 모순이 결발한 경제 대공황을 기조로 탄생한 문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일종의 아이러니 혹은 블랙 유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펀은 08년도 이전까지 '집'에서 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경제 위기 이후 석고 사업이 망하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삶이 전환된다. 회사와 도시가 사라지고 남편과는 사별한다. '펀'은 상실을 경험한다. 그녀는 현재를 잃어버리고 삶을 기반 해주던 지지대 모두를 빼앗긴다. 펀은 그 공허한 자리에서 출발한다. 두려움을 딛고 작은 벤에 오른다. 이 유랑은 혹독한 추위와 불편을 동반한다. 세탁을 위해 코인 빨래방을 이용하고 주차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동한다. 정착한 사람들은 펀을 반기지 않는다. 얼마 전까진 그녀도 그들 중 한 명이었지만 정착민들에게 펀은 이방인일 뿐이다. 그녀의 자리를 누가 앗아갔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다. 정착민의 입장에선 세계에 대한 투쟁에 실패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 것 그들이 투쟁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당장 대공황이 일어나 도시를 휩쓸어도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 폭풍이 두려운 건 '어디까지와 얼마나'를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는 이유가 있다. 이 질문은 동시에 관객인 우리에게도 돌아온다. 우리가 펀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 스크린을 통해 마주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우리가 운이 좋았을 뿐이지 다음 폭풍에는 그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노매드의 삶은 발화 조건을 갖추었는가 아닌가의 차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폭풍이 지나간 폐허는 불운한 자들의 치지이다.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08년도 월 스트릿에서 성과급을 받은 그 날을 역사는 기억한다. 행과 불행의 희비는 이렇게 폐허에서 엇갈린다. 홉스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이후로 국가라는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말했으나, 현실은 여전히 개인의 투쟁은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 오히려 개인은 살아남기 위해 만인이 아닌 세계에 대항한다. 인간이 투쟁에 지친 것은 분명하나 합의를 선택하기보단 투쟁이 더 합리적이라 여기는 세계에서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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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이 싸움을 재편집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감독은 그 폐허의 뒷모습을 쫓아간다. 인물의 생존을 지켜본다. 그 대표인물인 펀은 절대 나약하지 않다. 어딘가에 기대거나 투정 부리지 않는다.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투쟁한다. 그 숭고한 삶을 그녀는 계속 유지해간다.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준다. 다시 상실을 경험할까 봐 거리를 유지하지만 결국 누군가와 아는 사이가 되고 다시 만나는 관계가 된다. 떠난 자리를 딛고 새로운 발판으로 이동해 다시 적응을 한다. 이 움직임들이 영화 안에서는 분절된 상태로 연결된다. 마치 수십 개의 시퀀스를 짜깁기한 것처럼 영화 자체도 노매드의 형태를 닮아 있다.

각 씬들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힘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다. 조용하고 정적인 영화의 형태 안에 생존의 문제와 추격 그리고 씬의 충돌까지 모두 들어있다. 이 영화 안에는 흥미진진한 장치와 구성 요소들이 넘실거리며 숨을 쉰다. 그것들은 함의를 풍부하게 만들고 이 영화의 장르적 존재를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씬은 각각 독립된 푸티지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씬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영화의 끝이 말해준다. 후반부에 펀의 고뇌를 다루며 원경으로 잡는 쇼트는 그야말로 폭풍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절벽에서 펀은 아주 작은 한 인간으로 위태롭게 서 있다. 이때 그녀는 정착이란 문제에 다시 부딪혀 있다. 안온하고 평안한 곳에서의 환대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에 길을 떠날 때의 두려움처럼 그녀는 지금 정착이란 두려움과 마주해있다. 그녀는 남자의 부탁을 거절하고 도망친다.

그러나 노매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아마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자본주의는 다시 한번 그녀를 혼돈 속에 빠뜨려 놓는다. 망가진 벤을 고치기 위해 동생에게 부탁을 하고 돈을 빌린다. 그녀의 동생은 다시 집에 올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살만한' 동생의 집에서는 08년도를 아름답게 기억한다. 오히려 당시 떨어진 주가를 '풀매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녀는 이 집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고 다시 길을 떠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리고 펀은 자신이 떠난 곳으로 돌아와 흔적을 쓸어본다. 그 씬 사이사이에 회상 씬이 난입하고 끼어든다. 집은 낡았고 남아있는 것은 없다. 공허한 땅에는 눈이 쌓여있다. 그녀가 공장에서 일하던 모습이 비춰진다. 흙이 묻어있는 얼굴이 비춰진다. 지금의 땅에서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활기가 과거에는 있다. 그녀는 다시 이 땅 위에서 움직일 것이다. 자신이 출발한 곳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한 인물의 뒤를 집요하게 응시하다 만나게 되는 경의가 거기에 있다. 다시 추동하게 하는 힘을 얻는다는 것. 한 인물이 희망을 얻었다는 데에서 느껴지는 환의 같은 것 말이다.

노매드랜드의 랜드스케이프는 끝없는 길,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움직임이 사냥감의 운명이라는 슬픔이 있지만 결국 굴복하지 않았음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긍정이 이 영화 안에는 있다. <노매드랜드>는 지금 이 시대의 노마디언들을 위한 존경을 담은 생존 다큐멘터리이자 현재의 문제들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오늘의 영화'이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노매드랜드
Nomadland
감독
클로이 자오
Chloe Zhao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Frances McDormand
데이빗 스트라탄David Strathairn
린다 메이Linda May
밥 웰스Bob Wells
샬린 스완키Charlene Swankie

 

수입|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8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04.15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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