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게 지어진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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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민혁
  • 승인 2021.04.22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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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그 당연한 것을 위한 투쟁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우연한 만남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중학생 시절의 어느 날, 나는 친구 네댓 명과 함께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현장체험학습과 같이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로 등교해야 하는 날이었다. 종점 부근이었던 우리 동네를 벗어날 때쯤 한 중년 남성이 버스에 탑승했고, 우리가 앉아있는 좌석 부근에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자신을 학원 강사로 소개한 이 남성은 술에 취해 있는 듯했다. 그는 우리에게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머뭇거리다 대답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나는 장래희망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대낮에 술에 취했으면서도 주정을 부리는 것 같지는 않은 이 아저씨가 우리에게 질문을 건네는 의도가 무척 궁금하였으므로 그럴듯한 직업을 지어내서 대답했다. 우리의 대답을 다 들은 그는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그는 그러한 주장을 반복하여 이야기했다. 그의 주장은 내게 인상깊었고 살아오면서 때때로 그의 말이 일리가 있었음을 느끼며 그날을 회상하곤 했다.

이는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에게 전달받은 메세지가 인상 깊어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 만남인데, 다른 방식으로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만남도 있다. 앞서 말한 경험보다 오래전의 일이다. 초등학생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친구 한 명과 함께 동네의 공원에 가고 있었다. 사거리의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던 중, 한 남자가 말을 건넸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그는 우리에게 학교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지만, 그가 우리 말을 굉장히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에게로부터 명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선거에 나선 후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후보자들의 사진과 기호, 이름이 붙어져 있는 벽보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투표권도 없는 초등학생들과 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그가 당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거철이 지난 후에도 이따금씩 그와의 만남을 떠올리곤 했다. 그가 우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는 이유로 굉장히 따뜻한 어른으로 기억하였고 또한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데도 누군가를 대표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당선을 바랐지만 당선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으니 그렇지 않은 다른 후보들보다 유세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미 휠체어를 타고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유세를 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 넷플릭스(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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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 있는 화장실에 감사하는 데 지쳤어요. 정말 그렇게 느끼는 게 지겨워요. 내 생각은 이렇거든요.

접근성 있는 화장실로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면 내가 우리 사회에서 평등해질 날이 올까요?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中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감독 니콜 뉴넘·제임스 레브렉트)는 장애인들을 위한 여름 캠프 '캠프 제네드'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여 결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주역이 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장애로 인하여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던 청소년들이 모인 캠프 제네드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열렸던 청소년 캠프이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어려웠던 청소년 장애인들에게 이 캠프는 유토피아와도 같았다. 그들은 이곳에서는 '어디 아프냐'는 말과 같은 것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장애가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평범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또래들을 만나 서로에게 공감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을 배려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 세계에서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하며 구성원들이 무언가를 함께할 때, 그들은 각자 자신이 낼 수 있는 속도로만 하면 된다. 서로는 서로를 기다려주고 도움을 준다. 공감과 연대가 있는 만남을 통해 그동안 살아오던 분리된 일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 캠프 제네드의 참가자들은 자신들에게 잠재 되어있는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된다.

 

ⓒ 넷플릭스(NETFLIX)

캠프 제네드에서 행복해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는 동안 걱정이 되었다. 캠프는 언젠가 끝날 텐데, 이들이 돌아가야 할 일상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불행일까, 하고.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일회성이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맞게 지어진 마치 캠프 제네드와 같은 세계를 스스로 쟁취하고자 함께 노력한다. 캠프를 마친 참가자들은 장애인 인권 운동가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이끌며 장애인을 분리하지 않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투쟁한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나면, 역경이 곳곳에 가득한, 결코 순탄치 않은 이 여정을 결국 끝까지 완주해내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넷플릭스(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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