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거나 미쳤거나
어둡거나 미쳤거나
  • 배명현
  • 승인 2021.04.0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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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현의 영화가 필요한 시간]

'왓챠'와 '넷플릭스'로 당신의 취향을 찾기

그런 취향이 있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욱더, 격렬하게 좋아하는 취향. 남들이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기질을 전문성을 겸비한 '인싸'내지는 대중적이라고 부른다면, 후자는 좋게 말하면 마니악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변태라고 할 수 있다. 가끔 후자를 코스프레하는 전자의 경우도 있지만, 소위 말하는 '진짜'들을 만나면 그들은 학을 떼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짜들에게는 변태 혹은 마조히즘이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포기할 수 없는 확고한 '재미'가 있다. 쾌감 혹은 쾌락 같은 것들 말이다.

오늘의 리스트는 전자와 후자 사이에 서 있는 이들을 위한 영화들이다. 어쩌면 이 영화들이 전자와 후자 사이의 리트머스지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응용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간단하게 해보는 실험이라고 할까? OTT의 장점이 5분 만에 다른 영화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설명이 길었다. 이 영화들을 간단한 리트머스지로 확인해보자. 이번 추천은 '기괴한 공포영화'이다. 이 중 하나만이라도 당신의 취향에 적중하기를…

 

[NETFLIX] <더 위치 The Witch> 로버트 에거스Robert Eggers|2015

ⓒ 영화 '더 위치' 스틸컷

첫번째 작품은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더 위치>이다. 공포영화에서 종교와 악마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루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어딘가 다르다. <미드 소마>(2019)처럼 낮을 배경으로 하지도, <곡성>(2016)처럼 미친 짓을 하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공포영화의 큰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나 이 영화를 그저 그런 공포영화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이 영화의 성취는 잘 만든 시나리오에서 오는 사고의 전환이다. 거기에 더해 영상은 분위기를 포착해 공포 그 자체를 훌륭하게 살려낸다. 특히, 가족 중심의 서사와 적절하게 어울리는 감정의 고조는 배우들의 연기와 서사가 함께 어우러진 웰메이드라고 할 수 있겠다.

▷ 관전 포인트: 공포의 근원을 포착해 끝까지 밀어붙이는 감독의 집념―각본을 직접 썼다―과 <퀸즈갬빗>의 '안냐 테일러 조이'의 데뷔작임에도 훌륭한 열연. 그리고 공포영화 특유의 발암 유발자들.

▷ 다음 레벨: 로빈 하디 감독의 <위커맨>. 1973년작. 포크 호러무비의 시초.

 

[WATCHA] <성스러운 피 Holy Blood>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1989

ⓒ (주)율가필림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다운 영화. 그는 자신의 길고 특이한 이름처럼 괴상한 영화를 만들어냈는데, <성스러운 피>도 그의 괴이한 작품 중 하나이다. 영화 시작부터 부조리극을 연상시키는 인간 독수리가 나오더니 화면은 어딘가 이상한 지점을 점프를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화는 질주하기 시작한다. 분명 여기서 누군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중도 탈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겠지만, 끝까지 따라간다면 당신은 분명 보통의 취향은 아닐 것이다. 폭이 매우 넓거나, 변태이거나. 어쩌면 일본 영화감독 '소노 시온'(Sono Sion)이 작정하고 만든 영화도 그의 앞에 서면 초라해질지도. 서양의 근현대 서커스단이 배경이 되는 영화의 이야기는 인간성의 다양한 왜곡을 은유한다. 이 영화에 도전하려는 분들에게 한마디만 더 하자면,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니 그냥 받아들이는 영화이다.

▷ 관전 포인트: 대체 이 미친 이야기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

▷ 다음 레벨: <엘 토포>(1971), 조도로프스키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WATCHA] <안티크라이스트 Antichrist>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2009

ⓒ (주)마운틴픽쳐스
ⓒ (주)마운틴픽쳐스

한국에는 생각보다 많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팬이 있다. 하지만 나는 좀 의심스럽다. 그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어둠 속의 댄서>(2000), <도그빌>(2003), <멜랑콜리아>(2011), <님포매니악>(2013)과 같이 '그나마 대중적'인 영화만을 보고 팬임을 자청하는 경우를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 영화가 중요할지 모르겠다. 만약 <살인마 잭의 집>(2018)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 이 영화를 먼저 관람하시기를 추천해 드린다. 그의 진짜 광기가 어디서부터 본격적으로 발현된 건지를 여기에서부터 찾아보자.

▷관람 포인트: 윽! 소리가 나올 정도로 지나치게 친절한 절단 씬.

▷다음 레벨: <살인마 잭의 집>(2018) 더 길고 더더욱 참기 괴롭다.(만약 영화관이 아니었다면 나도 끝까지 모지 못했을 것)

 

[NETFLIX-WATCHA] <캐빈 인 더 우즈 The Cabin in the Woods> 드류 고다드Drew Goddard|2012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미국에는 하이틴 클리셰 호러무비가 많다. 요즘에는 비교적 덜하지만, 이전에는 수도 없이 개봉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알파메일(alpha male)의 근육남 주인공, 인기 많은 치어리더, 너드(nerd), 주인공을 도와주고 사라져버리는 서브인물 등등. 등장인물뿐만이 아니다. 공포를 유발하는 행동이나 패턴이 늘 반복되다 보니 이제 공포 유발은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붕괴되어 버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캐빈 인 더 우즈>는 메타공포영화라는 것이다. 기존의 클리셰를 부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벌어지고 붕괴된 서사 안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인물들은 나아가면서 영화는 제3의 길을 모색해 나간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그래서 공포 영화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다는 이 질문의 해답을 듣고 싶다.

▷관람 포인트: 신이 되기 이전 인간 '크리스 햄스워스'의 출연.
▷다음 레벨: 존 카펜터 감독의 <매드니스>(1995)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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