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모나이트> 분명한 매력
<암모나이트> 분명한 매력
  • 선민혁
  • 승인 2021.03.20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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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사라질 영화는 아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中

(1964년 10월 <사상계> 발표)

1840년대 영국 남부 해변 마을 라임, <암모나이트>에서 그려지는 이곳은 해무가 낀 것처럼 흐릿한 이미지로, <무진기행>의 무진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두 주인공 중 하나인 고생물학자 '메리'(케이트 윈슬렛)가 이곳에 살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이곳에서 자라온 메리는 화석 발굴에 큰 재능을 보였고, 가치 있는 발견을 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가 발굴한 희귀한 고생물 화석은 다른 남성의 이름으로 기증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 소니픽처스코리아

메리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의 뛰어난 재능과 결과물은 유명했기 때문에 그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메리와는 달리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던 남자들은 메리가 발견한 화석들을 사고 싶어하기도 했고, 작업을 함께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샬롯'(시얼샤 로넌)은 이러한 이유로 메리를 찾은 한 남자의 아내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샬롯은 바다를 방문해 해수욕을 하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아내의 권유로 서울을 떠나 무진을 방문한 윤희중처럼― 런던을 떠나 라임에 왔다. 메리를 고용하여 함께 화석을 발굴하는 경험을 한 샬롯의 남편은 화석을 발굴하는 일이 샬롯의 우울증 호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메리에게 샬롯을 데리고 화석 발굴 작업을 해줄 것을 요청하고는 샬롯을 라임에 남겨두고 떠난다. 메리도, 샬롯도 처음에는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결국 샬롯은 메리를 찾아가게 되고 메리는 샬롯을 화석 발굴 현장에 데리고 나가기 시작한다.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서 화석 발굴 작업을 함께하는 일상을 보내던 메리와 샬롯은 사랑에 빠진다. <암모나이트>는 둘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랑 이야기 자체가 그다지 흥미롭지가 않다. 아무리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지만, 메리와 샬롯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너무나 갑작스럽다. 영화의 주된 소재인 메리와 샬롯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은 큰 단점인 것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모나이트>를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질 것 같은 그저 흔한 영화들 중 하나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에 가깝다. 개연성을 제외하고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곳곳에 심어져 있는 상징과 아이러니도 꽤나 흥미롭다고 할 만하지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캐릭터들이 가진 매력과 조화가 그것이다. 여덟 명의 자식을 잃은 노쇠한 어머니와 단둘이 살며 홀로 화석을 발굴하고 그것을 판매하는 일상을 보내는 메리는 고독해 보인다. 흐릿한 회색빛의 해안 도시와 잘 어울린다. 메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도 그다지 능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의사의 초대로 방문한 사교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그것을 즐기는 샬롯과는 반대로 메리는 겉돌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자신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필포트(피오나 쇼우)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 소니픽처스코리아
ⓒ 소니픽처스코리아

그러나 메리는 차가운 인물이 아니다. 어머니에게 친근하게 대하지는 않아도 병간호를 소홀히 하지 않고 귀찮게 여기던 샬롯이 무리한 해수욕으로 인하여 앓아눕게 되자 그를 돌보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메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샬롯을 위해서 마을의 의사가 초대한 음악회에 참석한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먼 과거의, 움직이지 않는 유물을 발굴하는 메리는 계속해서 스스로 움직인다. 남성 중심의 사회가 그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멈추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을 계속하며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존재하는 세계를 메리가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굴복하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는 메리는 샬롯을 사랑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샬롯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떠나야 하는 샬롯을 보내줄 줄 알고, 런던에 있는 자신의 집에 머물라는 샬롯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샬롯은 메리와는 달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근하게 대하는 것을 즐긴다. 남성 중심 사회에 더해, 남편에게 직접적인 억압까지 받고 있는 탓에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성격은 메리를 통해 발굴되고, 샬롯이 지닌 본연의 모습은 메리의 캐릭터와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이 조화는 케이트 윈슬렛, 시얼샤 로넌의 연기에 의해 완성된다. 이 두 명배우가 펼쳐내는 호연은 스토리의 부족한 개연성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만들고,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분위기는 영화를 기억하고 싶은, 기억하게 될 것 같은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암모나이트>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 소니픽처스코리아

암모나이트
Ammonite
프란시스 리Francis Lee

 

출연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
피오나 쇼우Fiona Shaw
젬마 존스Gemma Jones
클레어 러시브룩Claire Rushbrook

 

수입|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18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1.3.11

선민혁
선민혁
영화를 보는 것은 현실을 잊게 해주기도 하고, 더 자세히 보게 해주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부분들을 기억하고 공유하고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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