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시네마 천국
[Essay] 시네마 천국
  • 선민혁
  • 승인 2021.03.23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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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

영화관 입구에 들어서면 소독 장치가 작동한다. 출입 명부를 작성하고 상영관 안으로 입장하여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는 좌석에 착석한다. 취식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상영 중에도 마스크는 계속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극장에서 겪게 되는 번거로움과 불안함을 제외하고 이야기하더라도 그렇다.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21시 이후 극장의 영업이 금지되어 있는 상황일 때, 마지막 상영 시각은 보통 18~19시 사이이다. 평일에 퇴근 후 영화관을 찾는 일상은 이제 가지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영화를 걱정하곤 한다. 그것에 큰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기우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다. 우리는 현대에 살고 있고 문명은 계속해서 발전한다. 우리에게는 OTT(Over The Top,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가 있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 등 선택의 폭도 넓다. 디즈니플러스, HBO맥스, 애플TV 등 아직 국내에 런칭하지 않은 OTT서비스 또한 곧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은 줄어들지만, OTT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월 2일 발표한 '2020년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결과에 따르면, 2020년 OTT이용률은 66.3%로 2019년 대비 14.3% 증가했다고 한다.

<사냥의 시간>(2020), <콜>(2020_, <승리호>(2020) 등 기대를 받던 작품들이 극장 대신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우리는 극장에 갈 필요 없이 기기만 있다면 어디에서나, 이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관에 자주 가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러 OTT서비스 덕에 오히려 이전보다 다양한 영화에 접근하기 쉬워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극장을 찾는 대신 OTT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거스르기 어려운 흐름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극장은 어떻게 될까? 극장산업은 코로나19의 한파를 직격으로 맞는 중이다. 많은 영화관 상영업이 폐업했고 매출 또한 급격히 감소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극장산업은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코로나19가 이미 예정되어있던 OTT서비스로의 전환을 앞당겼을 뿐이니,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OTT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매우 편리하다. 나는 그것을 이용해 보고 싶었던 작품을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었고 기대하던 작품이 공개되자마자 관람하는 즐거움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 aouna
일러스트레이션 'aouna'

학생시절,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어 한 달간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하거나 이국의 풍경을 즐기거나 하는 날들을 보내던 중, 어느 날은 영화가 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OTT서비스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어있지는 않았지만, 스마트폰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랩탑 또한 있었다. 그 기기들로 충분히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서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머물던 곳 근처의 쇼핑몰에 입점한 영화관에 찾아갔다. 그리고 출국 전 한국에서 이미 관람했던 <신과함께-죄와 벌>을 봤다. 상영이 끝난 후 이국의 사람들이 이 한국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여 최대한 귀를 열어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단지 영화를 보는 행위가 아니라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유년시절부터 영화관에 가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또한 보았던 영화와 장소가 함께 추억되기도 한다. 동네에 아직 영화관이 없을 때, 어머니와 시내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의 영화관에서 <극장판 포켓몬스터2: 루기아의 탄생>(1999)을 보았던 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동네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기자, 나는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한 달에 몇 번 그곳에 방문하여 <트랜스포머>(2007), <스파이더맨3>(2007), <즐거운 인생>(2007), <심슨가족, 더 무비>(2007), <아바타>(2009) 등을 관람했다. 집으로 걸어오며 그날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특정한 영화관을 좋아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그곳에 대한 특별한 경험이 생기거나,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 때였다. 홍대 인근을 구경하다가 KT&G 상상마당에도 영화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이 있었다. 그 순간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상영인 <잉투기>(2013)를 예매했다. 상영이 끝나자 영화에 출연한 엄태구, 류혜영 배우와 엄태화 감독이 상영관에 등장했다. GV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서 <잉투기>에 관련된 것들과 더불어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그날을 기점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오래된 극장의 분위기를 숨기지 않는 광주극장에서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를 관람하다가 학원에 함께 다녔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 영화를 다 본 후 그에게 '나는 뱀파이어가 아닌 인간이라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던 일도 있었다. 광주극장이 풍기는 분위기와 즐거웠던 만남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이러한 경험들을 OTT서비스가 대체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방식일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우리는 현대에 살고 있고 문명은 계속해서 발전하지 않는가. 그래도 영화관이 코로나19 이전의 힘을 찾기를 바란다.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싶을 때 도피처가 되어 주기도 하고,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 그 공간이 고맙기 때문이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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