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토양에서 잠시 머물기 ['미나리' #1]
낯선 토양에서 잠시 머물기 ['미나리' #1]
  • 배명현
  • 승인 2021.03.09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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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보여준 '한국적인 것'의 의미

<미나리>에는 모종의 한국적인 것이 있다. 물론 한국인들이 영화의 주인공이고 한국의 언어가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대체 그것에 무슨 의미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국적인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뛰어 넘어 '보이지 않는' 한국적인 것이 있다.(이쯤에서 오해를 막기 위해 거추장스럽지만, 군더더기 같은 문장을 붙여야겠다. 나는 이 영화의 성취와 한국의 '국뽕'을 엮으려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또 정이삭 감독이 '한국계'라는 점을 빌어, 되도 않는 민족적 우수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이 한국적이란 것은 대체 무엇일까. 영화 내내 등장하는 이들의 한영혼용에서조차 느껴지는 친숙하며 익숙한 것들 말이다.

 

ⓒ 판씨네마
ⓒ 판씨네마

영화의 시작은 움직임이다. 이들은 어딘가로 이동한다. 아이의 지루한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차를 타고 먼 길을 온 것으로 보인다. 차창 밖으로 끝없는 평야가 이어지고 지평선이 보인다. 이곳은 좋은 땅을 지닌 곳, 미국이다. 이 좋은 땅에서 제이콥(스티븐 연)은 농사를 지으려 한다. 한국 이주민들에게 팔 농작물을 키울 생각이다. 하지만 모니카(한예리)는 영 탐탁지 않다. 이들이 살아야 하는 집이 차를 개조한 곳이기 때문이다. 집이라 불러야 할지도 미묘한 이곳은 태풍이 불면 날아갈 위험성이 존재하고 비마저 새는 열악한 공간이다. 모니카는 제이콥을 설득해보지만 그는 요지부동이다. 물론 이는 가부장의 엄존이다. 아들의 심장병이 위급할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 이것은 남성적인 가장의 욕망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제이콥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 말이다. 수컷 병아리가 폐기되며 나오는 연기를 보며 그는 담배를 태운다. 자신의 삶을 깎아가며 태우는 연기는 자신의 쓸모를 만들기 위해 점점 죽음으로 향하는 은유로 느껴진다. 그는 아들에게 가르친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농사는 시작된다. 제이콥은 '한국의 방법'으로 우물을 판다. 운과 감에 맡기는 미국의 방법보다 합리적인 한국의 방법으로.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한국인은 머리를 써" 그의 예상대로 우물이 발견되고 농사는 순조롭게 시작된다. 하지만 순조롭지 않은 부분도 여전하다. 데이빗(앨런 김)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이 순자이다. 그녀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평범한 한국의 노인이다. 심지어 영화 안에서 결혼식 사진에 72년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들은 80년대를 살고 있을 것일 텐데. 당시의 교육 수준으로 생각해본다면 이주가 더욱 힘겨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자는 이 땅으로 도착했고, 한국에서의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 하지만 데이빗은 할머니가 싫다. 할머니 같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주민 2세대로서 느끼는 이질감을 감각한다. 데이빗는 혈통의 선대가 유지하는 문화와 그들의 익숙함과 그 맞은편에 있는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 익숙해진 것들의 경계, 그 사이에 서 있다. 2세대의 문제이다. 이는 어쩌면 1세대의 적응의 문제와는 다른, 오히려 해결하기 더욱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리지만 그것을 촉각과 냄새로 느끼고 있다. 익숙지 않은 할머니의 냄새와 할머니의 살결로 말이다.

 

ⓒ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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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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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의 거부는 순자에게 피피(오줌)를 먹이는 것으로 명징하게 드러난다. 이전까진 어린아이의 투정이었다면, 이 행동은 그가 가지고 있는 거부감을 해악으로 실행함으로써 직접 적의를 표현하는 능동적 자아표출이다. '마운틴듀'를 '산이슬'이라고 말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어딘가 엉성하게 엮여있다. 유대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각자 분열되어있다. 그 가족 사이에 들어온 순자는 이 분열에 엮기보단 분열을 확산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작동된다. 혈통을 중시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에게 순자는 베이비시터보다 믿을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개념이 다르게 정립되어 있는 데이빗에게는 그렇지 않다. 데이비드에게 할머니는 혈통이 아닌 이미지이다. 때문에 자신의 혈통을 부정하고 싶은 반동 효과만을 낳는다.

여기서 영화가 재현하는 것은 일종의 '방공호'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토지 위에 혈연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하지만 이곳은 위태롭다. 영화 시작에서 다른 주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겨우 바퀴 달린 집이 나온다는 것은 이들이 외부와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영화적 힌트이다. 이는 친절하게 대사로도 반복된다. "도시까지는 한 시간이나 걸리잖아!" 심지어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물들조차 서로 다른 욕망으로 추동된다. 각자가 느끼는 정서적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결국은 결속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이들이 교회를 다시 간다는 점은 그렇기에 중요하다. 모니카는 100달러를 헌금한다. 이들이 그렇게 부유한 이주민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액수의 가치는 더욱 커 보인다. 그렇기에 그 의미가 궁금해진다. 정말 텃새 때문에 그 액수를 냈다면 설득이 되지만 집으로 향하는 차에서 다시 이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다. 미국의 시골에선 생경할 동양인에게도 친절했다.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순자의 브로큰 딩동 때문일까. 성적 은유로 읽힐 수 있는 멘트를 다른 아이에게 부끄럼 없이 내뱉는 순자를 보며 결코 섞일 수 없다는 이질감을 느낀 것일까. 물론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후 이들에게 위기가 계속해서 당도한다. 농사가 위기에 처한다. 물이 문제다. 작물은 마른다. 우물이 문제다. 순자가 쓰러진다. 데이비드에게 스트롱 보이라 처음 말한 순자에게 환대는 허락되지 않는다. 심지어 폴에게 엑소시즘을 통한 도움을 요청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부여되는 고통은 불가항력적인 운명으로 보인다. 극복할 방법이 보이지 않은 고통이 이들 가족의 표면을 덮친다. 점점 무너져가는 모니카 앞에서 무덤덤한 척하는 제이콥은 자신의 불안을 분노로 표출한다. 이들은 끝까지 살아남으려 하지만 이 불안한 유토피아에서 평안한 삶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병아리의 성별을 감별하는 이주민적 직업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은 낯선 곳에서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이토록 어두운 앞날에서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종교도 사이비스러운 폴의 해답도. 그러던 어느 순간 이 불가항력은 절정에 도달한다. 데이빗이 쓰러지고 농작물을 팔 판로가 막힌다. 하지만 이건 영화적 갈등을 고조시키기 위한 엄폐물에 불과하다. 진정한 갈등의 끝은 이혼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음. 유토피아가 존재하는 이유는 가족을 존속시키기 위함이다. 그 의미를 잃어버린 유토피아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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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가족은 의외로 순자의 희생을 통해 유지된다. 그리고 화재로 욕망을 강제로 거세당한 제이콥은 미나리를 딴다. 이 미나리를 팔지 이들이 섭취할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계속 살아갈 것이다. 이 가족은 서로에게 누구도 무해하지 않다. 모두에게 서로가 빚을 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해했지만,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낯설고 불안한 유토피아에서 계속 살아간다. 순자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위험하다. 이들은 명백하게 보이는 문제보다 안으로 숨긴 문제를 품고 살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외부적 불합리, 그리고 세계에 대한 공포를 의미할 수도 있다. 보이진 않지만 냄새로 느끼는 축축한 분위기와 녹진한 공기가 오히려 이들에겐 '물가'를 상징할 수도 있겠다. 이 지점에서 미나리는 그 의미를 성명하게 드러낸다. 물가 근처라면 별다른 노력 없이 잘 자라는 미나리라는 대사처럼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먼 나라의 익숙하지 않은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미나리이다. 물가 근처에서 자라는 미나리는 다른 이들은 찾지 않는 곳에서 자라난다. 어쩌면 이 영화 안에서 인종적 차별이나 마을 사람들의 텃세가 없었던 것도 '보이지 않는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미나리 속 이 과거의 시간이 애잔하다. 이들이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한국적인 것'을 포기하고 선택하게 된 '미국식 우물파기'는 이들의 삶에 또 어떤 변화를 주게 되었을지 나는 상상한다. 낯선 땅에서 머물기 위해 선택한 바퀴 달린 집, 그 이후는 안온하길. 미나리는 끈질기게 살아가겠지만 그 끈질김이 애달프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판씨네마
ⓒ 판씨네마

미나리
Minari
감독
정이삭
Lee Isaac Chung

 

출연
스티븐 연
Steven Yeun
한예리Ye-ri Han 
윤여정Yeo-Jong Yun
앨런 김Alan S. Kim
노엘 조Noel Cho
윌 패튼Will Patton
스콧 헤이즈Scott Haze

 

제작 Plan B
수입|배급 판씨네마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15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03.03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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