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워킹> 그래도 속편을 기대한다
<카오스 워킹> 그래도 속편을 기대한다
  • 선민혁
  • 승인 2021.03.03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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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별로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유년 시절에는 망상에 시달리곤 했다. <토이스토리>(1995)를 보고 나서, 영화처럼 현실에서도 장난감이 인격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여겼다.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방에 CCTV를 설치해 놓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것을 눈치채고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토이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주변에는 나를 망상에 빠지게 할 만한 것들이 넘쳐났다. RPG게임은 사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NPC' 같은 것이고 프로그래밍 된 세계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트루먼쇼>(1998)와 <매트릭스>(1999)는 그런 의심을 강화했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게 할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망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나의 의심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뭐 어쩌겠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학생 시절,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이 영화를 추천한다. '곰플레이어'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정보와 함께. 그것의 제목은 <사토라레>(2001)였고 나는 방과 후에 그것을 보았다. 영화는 충분히 흥미로웠고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공상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는 그 영화가 흥미롭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토이스토리>와 <트루먼쇼>, <매트릭스> 등을 보았을 때처럼, 현실에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토라레>는 주인공이 속으로 하는 모든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들린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고, 나를 둘러싼 세계가 거짓이라는 것보다 훨씬 공포스러웠다. 생각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가. 게다가 생각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도 않는다.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 몇 차례의 실험을 거쳐, 내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카오스 워킹> 또한 속으로 하는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그대로 들린다는 설정을 가진 영화이다. <사토라레>와 다른 점은 특정 인물에게만 이것이 해당되지 않고, '뉴월드'라는 세계관의 모든 남성들이 이런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생각은 단지 소리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각화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이러한 현상은 '노이즈'라는 이름으로 개념화되어있다. 영화에서 이러한 설정은 꽤 흥미롭게 활용되기도 한다. 특정한 생각을 반복함으로써 노이즈를 잘 통제하여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키지 않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가 한 조직의 우두머리로 군림하고 있다는 점, 여성에게서는 노이즈가 발생하지 않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남성들이 한 마을의 여성들을 몰살해버렸다는 점, 주인공이 자신에게 약점이었던 노이즈를 이용해 역경을 물리친다는 점 등은 영화가 '노이즈'라는 소재를 단지 신선한 설정으로만 놔두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어떤 주제의식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 또한 하고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주제의식들에 대하여 별로 하고 싶은 말은 없다. 그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싶을 만큼 영화가 효과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가 늘어놓는 여러 가지 재료들은 분명히 흥미롭지만, 서사가 부족한 캐릭터와 무난한 스토리 전개는 그것들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톰 홀랜드, 데이지 리들리, 매즈 미켈슨이라는 강력한 매력을 가진 배우들이 등장하더라도 그렇다. 프렌티스 시장(매즈 미켈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던 주인공 토드 휴잇(톰 홀랜드)은 난생처음 마주하는 여자인 바이올라에게 매료되어 시장의 뜻을 큰 망설임 없이 거스르고 그녀를 돕는다. 우주에서 뉴월드로 착륙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바이올라(데이지 리들리) 또한 어떤 캐릭터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프렌티스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비밀은 밝혀지지 않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래도 이 영화가 별로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매력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지구가 아닌 인류가 새롭게 발견한 행성이며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류는 1차 이주민으로서, 정착한 지 그다지 오래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에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할 수 있게 만들어준 미래기술과 아직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대자연이 공존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흥미로운 설정을 시각적으로 꽤 잘 구현했다. 레이저를 발사하는 총을 들고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 숲에 버려진 거대한 우주선, 울창한 숲을 달리는 미래의 오토바이 등 인상적인 장면이 많다. 무엇보다 영화의 관객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 토드, 바이올라와 함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재미가 있기에, 속편을 기대하게 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카오스 워킹
Chaos Walking
감독
더그 라이만
Doug Liman

 

출연
톰 홀랜드
Tom Holland
데이지 리들리Daisy Ridley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
데이빗 오예로워David Oyelowo
데미안 비쉬어Demian Bichir
닉 조나스Nick Jonas
신시아 에리보Cynthia Erivo

 

수입|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9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02.24

선민혁
선민혁
영화를 보는 것은 현실을 잊게 해주기도 하고, 더 자세히 보게 해주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부분들을 기억하고 공유하고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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