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OTT'가 살풍경해 보인다면
언젠가 'OTT'가 살풍경해 보인다면
  • 배명현
  • 승인 2021.02.26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볼 게 없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넷플릭스와 왓챠, 웨이브, 티빙 전부를 구독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극장 대신 선택한 'OTT'(Over The Top,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지만 표면으로 드러나는 영화와 드라마는 한정적이다. 늘 순위는 고만고만하고 우리가 '보는' 속도에 비해 '창작'의 속도는 언제나 느리게 따라온다. 물론 여기에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퀄리티에 대한 불만도 한몫 보태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디깅(digging)을 해야 한다. 최소한 우리가 지불하는 한 달 요금을 수긍할 수 있을 만큼은 뽑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넷플릭스나 왓챠를 끼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시간을 들여 본 영화가 망작이 아니길 바라야 하는 것보다 조금 더 안전한 방법을 이렇게 제안한다. 믿어보시라. 가장, 객관에 '가까운' 기준으로 선별을 해보았다. 정말이다. 물론 누구나 다 알법한 영화는 배제했다. 우리 만원으로 후회는 하지 말자.

 

[WATCHA] <아이언 자이언트 The Iron Giant> 브래드 버드Brad Bird|1999

ⓒ
ⓒ (주)삼백상회

애니메이션의 명작을 이야기할 때, 픽사나 디즈니의 고전작품을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누군가는 지브리의 작품을 언급하지 않느냐고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명단 사이에 난 영화 <아이언 자이언트>를 넣고 싶다. <인크레더블>(2004)과 <라따뚜이>(2007)를 만든 감독 브래드 버드의 데뷔작으로 소년과 거대 로봇의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 양철 나무꾼이 심장을 가진 뒤, 새롭게 시작하는 스핀오프를 그린 것 같은 이 애니메이션은 영혼을 가진 로봇이 모종의 과정을 거치며 소년과 우정을 쌓아가는지를 그린다. 1999년에 나온 작품이지만 여전히 시각적 세련됨과 고전적 스토리가 주는 감동은 여전하다. 아쉬운 점은 현시점으로 바라본 정치적 올바름 혹은 윤리적 시각으로 이 작품이 로봇에게 너무 과한 희생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싶은 부분인데. 어쩌면 오히려 그 점이 이 작품의 해석적 다양성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WATCHA] <타인의 삶 The Lives Of Others>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2006

ⓒ 에스와이코마드
ⓒ 에스와이코마드

'도청'은 한국영화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되는 장치이자 소재이다. 하지만 <타인의 삶>은 흔하게 사용되는 도구로써 소모해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도청이란 소재를 가장 복합적으로 이용하며 설득력을 이끌어내는 데 사용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이 더욱 빛을 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그것인데 절시증과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예술에 대한 믿음을 교묘하게 엮어 보는 이를 끌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은 결말부에 가장 강력한 대사를 관객에게 던져놓는다. 이때 무너지지 않을 관객과 무너질 관객은 생각하게 된다. 이 인물들을 바라본 나는 또 어떤 시각에서 생각돼야 하는 것인가. 물론 이런 이야기 말고 '그냥' 보아도 좋은 영화이다. 어쩌면 이 글에서 가장 대중적인 영화일 것이다.

 

[NETFLIX·WATCHA] <조디악 Zodiac>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2007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사건과 함께 동행하는 장르가 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 징후를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사건의 이후에 시작되어 사건을 따라가는 장르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장르가 그럴 것이고, 두 번째가 공포영화이다. 세 번째는 추리 영화이다. 추리는 필연적으로 사건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디악>은 그런 영화이다. 조용하게 사건의 뒤를 따라간다. 조디악은 범인의 뒤를 쫓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사건의 뒤를 쫓아간다. 범인이 뿌린 흔적을 따라 아무 말 없이 조용하고 우직하게 심지어는 무식할 정도로 집착하며 따라간다. 그리고 결국 만나게 되는 진실은 우리를 아이러니에 빠뜨리게 된다. 데이비드 핀처의 최고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은 여전히 유효한 장르적 쾌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장르적 쾌감 그 이상을 상상하게 한다. 이 영화는 괜히 21세기의 고전이 된 것이 아니다. 분명 느낄 수 있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NETFLIX] <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션 베이커Sean Baker|2017

ⓒ 오드
ⓒ 오드

사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 고르기 조금 꺼려졌다. 하지만 결국은 고심 끝에 '이 영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빈민층과 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조망한 영화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 작품은 충분히 영화적인데, 여기에 션 베이커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가 리얼리즘과 환상적 상상력을 한데 엮는다. 이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불편함은 우리에게 동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역으로 지금-여기의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지금까지 시선이 집중되지 못하고 외곽에 있던 곳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이 영화는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NETFLIX]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SULLY>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2016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실화 기반 영화이다. 생존을 다룬 이 영화는 생존하는 방법이나 생을 향한 투구를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생존 그 이후를 다룬다. 모두를 살렸지만. 제 3자와 자본의 대표하는 기업은 그를 질타한다. 살아남았기에 겪어야 하는 이상한 아이러니 속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어떠한 방향성을 향해나간다. 노감독이 우직하게 보여주는 인물의 움직임은 여러 각도로 해석될 여지를 남겨둔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한국에서는 세월호와 엮이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감독이 선택한 이 실화는 그가 보여주는 미국이 당면한 어떤 윤리와 사회성을 함의한다. 그리고 결말부에 보여주는 어떠한 결단은 우리를 다시 사건 안으로 불러들이고 생각하게 한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