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운이 말한다, 지켜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긴 여운이 말한다, 지켜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 코아르CoAR 편집부
  • 승인 2021.02.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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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의 영화명장면]은 '코아르CoAR'의 필진들이 본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뽑은 명장면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이 글에는 줄거리, 해석, 비평보다는 '왜 그 장면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선명한지' 필자 스스로 되물으며, 감독의 카메라를 언어로 기록합니다.

<운디네>는 VOD 서비스를, <차인표>는 넷플릭스(NETFLIX) 시청을, <소울>은 당장 극장으로 향해야 하는 각기 다른 위치에 머물고 있는 작품들. 판타지, 멜로, 코미디 각기 다른 장르의 작품들. 심지어 잘 어울리지도, 그렇다 할 교집합도 찾기 힘들어 보이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만의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과감히 행동한다. 예술을 위해서(조 가드너), 사랑을 위해서(운디네), 배우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차인표) 고군분투한다. 물론, 여기에는 긴 방황 끝에 '삶'을 살고자 지구로 뛰어내리는 <소울> 속 22의 모습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2월 영화 명장면들은 말한다. 필진들이 느낀 영화의 긴 여운에 대해서. 더 나아가 삶에서 무언가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당신의 발끝에 닿은 바다와 손 위에 놓인 단풍 씨앗

픽사의 스물두 번째 영화 <소울>은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예술에 관한 영화이다. 그리고 픽사는 이 둘을 매우 개연성 있게 연결했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 상상력의 한 차원을 앞세워 보여주었다. 그들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영혼계라는 곳. 오직 상상력으로 시각화를 해야만 하는 곳을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상상 속의 공간이기에 관객에게 시각적 판타지를 심어줄 순 있어도 촉각적 성질을 느끼게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픽사는 이 촉각적 성질을 이용해 관객을 홀리게 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것을 가장 잘하는 애니메이션 회사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 가드너와 22는 영혼계에서 지구로 돌아온 후, '신체적 감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느낀다. 피자의 맛, 바닷물이 파도치며 발끝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차가움과 간지러움, 하늘의 색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심상과 감상, 손 위에 떨어지는 단풍 씨앗의 가벼운 감촉과 생에 대한 이미지들. 픽사는 영상으로 감촉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 감촉은 관람객에게 상상하게 한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만들고 느끼게 한다. 관객의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자신의 삶과 영상의 충돌은 그야말로 새로운 몽타주 기법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이 영화의 전반적인 묘사가 모두 명장면,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엠엔엠 인터내셔널
ⓒ 엠엔엠 인터내셔널

Staying Alive

연인이 된 '운디네'(폴라 비어)와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는 함께 강바닥으로 잠수한다. 크리스토프는 그곳에서 신화와도 같은 운디네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 이름에 매혹된다. 그 찰나의 순간, 운디네는 물의 정령 "군터"에게 잡혀 저 멀리 떠내려간다. 그녀를 다시 뭍으로 끌고 나온 크리스토프는 운디네에게 비지스의 'Staying Alive'를 읊조리면서 디스코 박자에 맞춰 심폐소생술을 한다. 관객들도 아마 그러했겠지만,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운디네의 얼굴이 보인다. 심폐소생술의 효과인지 알 수 없지만 정신이 든 운디네는 다시 한번 자기를 살려달라고 말한다. 구사일생으로 이미 힘들게 구해줬건만, 왜 또다시 살려달라고 하는 것인가? 크리스토프는 "주변에서 보면 응급 상황인 줄 알 거야"라고 서둘러 얼버무린다. 운디네는 쉽게 수긍한다.

이미 우리는 앞선 장면 중에 둘이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지는―어항이 깨지는―장면을 본 적 있다. 사랑이라는 비현실적인 힘으로 어항이라는 프레임이 깨지고, 어항의 바닥은 어느 순간 융기한 하나의 섬으로 부상한다. 그런데 그 옆에서는 작은 물고기가 파닥거리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운디네의 운명의 프레임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대로 놔두면 물고기는 바로 죽게 될 운명이다. 카페 관리인이 그랬듯 물고기를 잘 담아서 어딘가로 보내줘야 하는 것이다.

운명에 종속되어있는 누군가를 살리는 방법은 한번 어항을 깨는 것을 감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존재를 옮겨서 어딘가 안전한 자신만의 공간에 보호해줘야 하는 두 번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어떤 악조건에 처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답답하게 살아"라고 한마디 해줄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그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책임지지 못하는 순간 그들의 말은 무용하다. 펫졸트 감독은 비단 연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만의 아날로지로 난민, 비정규직 등 현대 사회의 군상을 그리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그런 점에서 'Staying Alive'를 두 번 불러달라는 운디네의 요구는 좀 더 보편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이미지에 죽고 살던 '실제와 같지 않은 극 중 인물' 차인표는 무너진 건물에 갇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선다. 그가 갇힌 곳에 도착한 매니저 '아람'(조달환)은 다른 사람 몰래 그를 꺼내기 위해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아람은 그동안 참아왔던 답답함을 토로하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 화면은 우주 공간으로 바뀐다. 다소 어색해 보이는 CG이고 이전 장면들에서 이미 나온 적이 있는 배경이지만 묘하게 재미있다. 아람은 차인표가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이미지가 다른 사람들에겐 별거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차인표 가지고 영화에 투자도 안 된다는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며 당신은 이제 한물간 배우일 뿐이라고, 정신 차리라고 이야기한다. 이후 차인표는 아람의 말대로 자신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결국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다.

영화 <차인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직시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며, 나를 둘러싼 '이미지'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임을 이야기하는 영화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오히려 차인표의 이미지와 그것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경의를 표하게 되기도 한다. <차인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차인표의 기존 이미지'는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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