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내일 또 봅시다, 같은 자리에서
'소울' 내일 또 봅시다, 같은 자리에서
  • 이지영
  • 승인 2021.02.11 1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과 삶

미국의 한 중학교 음악 수업 시간. 음악 선생은 산만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밴드를 힘겹게 이끌어 가고, 내내 불만을 품은 표정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동양인 학생이 합주를 하다가 스스로 트럼펫에 심취해 점점 솔로로 연주한다. 영화 <소울>에서 나오는 첫 몰입의 장면이다. 몰입한 독주자를 지켜보던 학생들은, 다음 순간 일제히 웃음을 터뜨린다. 이 영화는 몇 차례에 걸쳐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몰입의 순간을 보여준다. 그때마다 지켜보는 관객, 연주하는 동료도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들의 영혼은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아닌, 중간 어딘가의 차원으로 고양된다. 그러나 몰입의 신호가 끊어졌을 때, 그들은 타인에게 자신이 얼마나 정신 나간 것처럼 보였는지를 깨닫는다. 다시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어린 예술가들은 범상함의 가면 속에 숨어들고, 이들의 얼굴은 세월이 흘러 시니컬함의 가면으로 한 겹 더 무장하게 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삶과 죽음. 그 사이를 외로이 걸어가는 우리의 영혼에 대해 다룰 때, 그 어떤 예술보다도 음악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음악이 갖는 고유의 유한성과 일회성 때문일 것이다. 상상해보자면 우리는 평생에 걸쳐 한편의 아름다운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 각자의 악기를 가지고 무대에서 준비하고 연습한다. 행인들은 줄곧 무대를 스쳐 지나가고, 리허설을 한 번씩 할 때마다 구경하는 관객은 바뀐다. 우리(연주자)는 생각한다. '이번 연주는 이런 실수가 있었고, 저런 점이 아쉬웠어.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몰입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 리허설 보러 온 행인들의 기침소리도 신경 쓰였고 말이야. 내 최고의 연주는 아직 오지 않았어. 다음엔 더 잘할 거야. 관객들에게 끝내주는 연주를 보여주게 될 거야.' 그런데 끝내주는 순간은 끝내 오지 않는다. 언제나 조금씩 미숙하고, 항상 조금은 아쉽다. 무대가 막을 내릴 때에야, 우리는 그 모든 리허설이 매 순간 한 번뿐인 무대였고, 지나가던 행인 관객들이 나의 진짜 관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막이 내린다.

영화는 예술의 이면에 있는 기술(art)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둘은 마치 빛과 그림자 같은 관계이다. 기교를 연습하는 것, 예를 들어 피아노의 기본 스케일을 매일같이 연습하는 것은 지루하고 하품 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어떤 연주자가 그 매일 같은 기교 연습 없이도 예술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또 한편으로 기교만 영혼 없이 반복하여 예술적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AI가 작곡하고 연주하는 음악이 이미 우리의 영혼을 충족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기술은 꼭 예술적 기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성실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기술 (문윈드의 경우 뉴욕 거리에서 간판을 떨어뜨리지 않고 돌리는 기술), 어머니가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융통성 있게 안심시키는 기술,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무뎌지는 기술, 건강이 악화되지 않도록 밥을 챙겨 먹고 건강을 돌보는 기술까지도 모두 포괄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의 생활의 기술(art of living), 또는 생존 기술(art of surviving)은 우리의 삶이 단 한 번뿐인 예술적인(혹은 예술 같은) 퍼포먼스가 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밀란 쿤데라는 소설 <불멸>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숫자보다 그들의 특징과 성격의 수가 더 적을 것이라고 했다. 쿤데라가 의도했던 바와는 맥락이 전혀 다르겠지만, 요즘 사회의 군상을 볼 때, 단 16가지로 인간의 성격 유형을 구분 짓는 일에 점점 많은 이들이 심취하는 것 같다. 이런 유형의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는 스테레오타입은, 모자라고 이상 행동을 하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유형화하며 우리는 자신의 이기적인 면모, 온정적이지 않은 태도, 자의식 과잉, 시니컬함, 소심함, 내면의 불안을 해명한다. <소울>에서도 생전 세계(great before)의 영혼들은 지상에 태어나기 전에 인간이 갖는 특성들을 하나씩 교육받는다. 비슷한 특성을 지닌, 성분만 조금씩 다른 영혼들이 태어나는가 싶을 때, 그들은 인류사를 거쳐 간 멘토를 한 명씩 지정받아 교류한다. 그리고 그들 고유의 지혜와 삶의 목적(으로 간주되는 것)을 지니고 희망에 부풀어 지구로 떠나게 된다. 지상에서 비로소 영혼은 육체와 생이라는 것을 영접하게 된다. '22번 영혼'은 우리의 영혼이 상처를 받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말한다.

조 가드너의 몸에 빙의한 22번 영혼은, 그의 육체를 빌려서 일상의 기쁨을 온몸으로 알아가게 된다. 조 가드너의 몸은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는 아기의 걸음마를 다시 체험한다. 위에서 우리는 영혼의 예술-기술(Art-art)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몰입된 세계는 아름답지만 어딘가 어두웠고, 이상적이지만 그저 추상적인 모호함에 그친다. 이제 영화는 지상으로 내려와 육체의 차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이 주는 숨은 기쁨을 찬양한다. 예술에 대한 비유를 이어가자면, 물질적인 세상은 우리의 어둡고 외로운 콘서트장의 빈 여백을 채워주는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형태의 예술이다. 아름다운 자연의 빛깔, 규칙적이고 아름다운 몸의 동작, 미소를 짓게 하는 맛, 익숙하고 포근한 냄새…… 영화는 하프노트 클럽 앞에서 일생일대의 무대를 앞둔 조 가드너의 시선을 잠시 위로 들어 자연이 주는 한없는 고요한 평화를 바라본다. 이 풍경을 외면하고서는 결코 어둡고 외로운 무대에서의 공허감을 떨칠 수 없다는 듯이. 조 가드너의 데뷔 연주는 또다시 고양되고 아름답게 끝이 난다. 그가 그토록 살아 돌아오려고 발버둥 칠 만큼 운명적인 무대인 줄 알았건만, 이 또한 역시 하나의 작은 리허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관객은 알게 된다. 도로테아는 미소를 지으며 내일도 여기, 같은 자리에서 또 보자고 인사한다. 나는 그녀가 기약하는 이 두 번째 만남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하루의 일련의 사건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조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22번 영혼을 만나러 간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집어삼킨 영혼에 대해서 말할 차례이다. 영혼이 괴물이 된 연유는 다양하다. 영화 전반부에서 이미 보았던 헤지펀드 매니저의 영혼처럼, 가장 쉽게는 맹목적 탐욕이 영혼을 집어삼킬 수 있다. 때로는 시니컬함에서 벗어나 희망을 품었던 영혼이 다시금 좌절할 때, 그 심약한 영혼은 걷잡을 수 없는 좌절과 분노, 자기 멸시에 빠진다. 그들은 이 분노가 스스로를 향하는 것인지 타인을 향하는 것인지도 분간하지 못한다. 감정과 욕망의 파도에 집어 삼켜지지 않기 위해서 현대인들은 명상을 하며 내면의 감정을 응시하는 연습,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일 테다. 태풍이 올 때는 태풍의 한중간을 응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22번, 픽사에게도 의미 있는 숫자라고 들었다. 영화는 '2'번을 생전 세계로 갔다 온 영혼과, 지상의 삶을 살기 위해 '2'번째로 새로이 출발하는 '두' 영혼 사이의 교감을 그렸다. 살아가며 우리는 무수히 상상한다. 다시 태어나면 어떻게 살 것인가?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콘서트는 이미 끝났으며, 다음 콘서트가 (제발 한 번만이라도) 주어진다면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매 순간은 다시 삶이 부여한 또 한 번의 리허설이며, 무수히 많은 삶의 변곡점 중 하나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 그러나 도로테아의 말처럼 그 역사적인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시점은 연속선상의 스펙트럼 어딘가, 미분할 수도 없는 어떤 지점, 영적인 순간 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 순간이 본인도 모르게 도래할 때까지 우리는 삶의 기교를 부리고, 감각을 느끼고, 자신을 관조하기도 하며 삶이라는 예술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인파에 치이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우리는 각자의 일터로 간다. 같은 자리에서, 우리는 어제와 다른 서로를 마주한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소울

Soul

감독

피트 닥터Pete Docter

 

출연(목소리)

제이미 폭스Jamie Foxx

티나 페이Tina Fey

다비드 딕스Daveed Diggs

필리샤 라샤드Phylicia Rashad

아미어-칼리브 톰슨Ahmir-Khalib Thompson

 

제작 디즈니 , 픽사

수입|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7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1.01.2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