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웰' 어떤 가족 이야기
'페어웰' 어떤 가족 이야기
  • 선민혁
  • 승인 2021.02.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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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점점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광고를 보지 않기 위해 티켓에 적힌 상영시작 시각으로부터 10분이 지난 뒤에 입장하는 관객들도 있지만, 나는 해당 관에 입장이 허락되자마자 자리에 착석하는 편이다. 이러한 행위에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집중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데, 그보다는 단지 시작 전 광고를 보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일찍 들어간다. 극장마다 광고의 종류와 수를 정확히 세어본 적은 없지만 CGV아트하우스와 같은 독립, 예술영화 전용관에서는 영화 시작 전 다른 영화의 예고편을 자주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들을 보다 보면 볼만한 영화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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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드 AUD

<페어웰>의 예고편 역시 영화관에서 처음 보게 되었는데, 궁금하고 기대가 됐다. 영상이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예고편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영화의 소재가 흥미롭게 여겨졌다. 극적인 플롯 전개가 이뤄지지는 않아도 몰입이 되는 이야기일 것만 같았고 결국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영화일 거라고 기대하며 개봉 날짜를 기다렸다.

<페어웰>은 기대한 대로 특유의 영상미가 있었으며 소재도 흥미롭다고 할 만했다. 지극히 단순한 플롯이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몰입이 되는 이야기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빌리(아콰피나)와 가족들은 고향 중국에 있는 할머니(자오 슈젠)가 시한부라는 소식을 듣는다. 고향의 문화에 따라 가족들은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하고, 빌리의 사촌인 하오하오(한첸)의 결혼식이라는 명분을 꾸며내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 오드 AUD
ⓒ 오드 AUD

'실제 거짓말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하는 이 영화는 할머니에게 당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거짓말'이라는 행위를 주요한 소재로 다루려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소재는 문화의 차이를 드러내는 장치로만 기능할 뿐, 관객의 흥미를 유도하지 못한다. 영화는 할머니에게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게 옳은가 아닌가에 대한 딜레마를 마치 중요한 이야기인 것처럼 꺼내 놓고는, 막상 그것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한다. 할머니에게 알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는 빌리(아콰피나)와 그래서는 안된다는 아버지(티지 마)를 비롯한 어른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이라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이게 문화라서 어쩔 수 없단다."라는 식의 짧은 언쟁 몇 번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빌리가 어른들의 의견을 확실히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며 이에 대해 별다른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빌리는 어른들의 계획에 잘 따른 뒤 무력하게 뉴욕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럴 수도 있다.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인물끼리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인물이 딜레마에 대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딜레마인 양 어떤 소재를 꺼낸 후 그것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영화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야기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4인으로 구성된 핵가족 안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형제자매가 많은 부모를 둔 덕에 다수의 친척과 교류할 수 있었고 그들은 나에게 따뜻함을 경험하게 해주기도 했다. <페어웰>에 등장하는 가족의 형태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혈연으로 맺어져 있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는 <페어웰>이 나에게 그 따뜻함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 주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페어웰>의 가족 이야기가 단지 남의 가족 이야기로만 다가오기 때문이다.

 

ⓒ 오드 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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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어렵다. 빌리는 할머니를 왜 그렇게까지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단지 혈연이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부모나 다른 친척들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할머니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 돌봐줘서', '할아버지처럼 잃고 싶지 않다'는 등의 대사로 쉽게 설명하고 넘어갈 뿐이다. 빌리의 감정에 몰입이 안 되어 있는 채로 아이코(아오이 미주하라)의 귀걸이를 찾다가 돌연 울음을 터뜨리면서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고 할머니 곁에 남겠다고 소리 지르는 빌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당황스럽다.

게다가 인물들이 소통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할머니를 위하는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고 그녀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이 가족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고향에 모인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빌리와 할머니도 포함된다. 둘은 서로를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으나 깊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조차 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인물들이 불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의도라고 여겨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는 문제가 된다.

<페어웰>을 보는 대신 룰루 왕 감독의 기억 속에 들어가 이 영화의 원작인 감독의 경험을 보았다면, 나는 분명히 감동했을 것이다. 그 이야기에는 생동하는 인물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벌이는 사건은 흥미로울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꼈을 수 있을 것 같다. <페어웰>에서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오드 AUD
ⓒ 오드 AUD

페어웰

The Farewell
감독 
룰루 왕
Lulu Wang

 

출연
아콰피나
Awkwafina
자오 슈젠Shuzhen Zhao
티지 마Tzi Ma
다이애나 린Diana Lin
홍 루Hong Lu
장용보Yongbo Jiang

 

수입|배급 오드 AUD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00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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