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ING] '서브마린' 레이더가 닿지 않는 곳
[TVING] '서브마린' 레이더가 닿지 않는 곳
  • 선민혁
  • 승인 2021.02.05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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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모르는 것은 상대방의 내면 뿐만이 아니다

<서브마린>(2010)은 영국 드라마 <IT 크라우드>(2006)에서 모스 역을 연기한 배우로도 유명한 '리차드 아요아데'(Richard Ayoade)의 감독 데뷔작이다. <서브마린>은 국내에서 개봉한 적이 있는 그의 두 번째 작품 <더블: 달콤한 악몽>(2013)에 비해 덜 알려진 작품인데, 현재 티빙의 'TVING ONLY'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시간을 내서 볼 만한 작품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 WARP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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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청소년기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그것은 현재의 나에게 추억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후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때는 왜 그렇게 많은 것들에 어색하고,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고, 나 자신을 몰랐을까. <서브마린>의 주인공 올리버 테이트(크레이그 로버츠) 역시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상태로 청소년기를 보내는 중이다. 올리버는 제 죽음과 부활을 상상하기도 하고, 미국 연속극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부모의 부부관계 여부를 체크하곤 한다. 가끔 사전을 읽으며 어떤 단어의 의미에 몰두하기도 한다.

<서브마린>은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올리버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동급생 조다나 베번(야스민 페이지)과의 사랑이다. 올리버는 산발적 습진을 앓는다는 한 가지 단점보다, 매력이 훨씬 더 많은 조다나를 좋아하게 된다.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자신과 비슷하게 학교에서 적당히 겉돌기 때문에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분석까지 마친다. 학급의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반대하는 올리버는, 그것을 즐기는 조다나와 가까워지기 위해 같은 반 친구 조이의 가방을 들고 달아나는 괴롭힘에 동참한다. 조이를 괴롭힌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올리버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조다나는 자신을 위하며 의외로 용기도 있는 올리버의 모습에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고 둘은 결국 사귀는 사이가 된다.

올리버와 조다나는 애칭, 손잡기, 그리고 감정을 금지하는 것을 관계의 규칙으로 세우지만, 이들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감정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기도 한다. 올리버가 조다나 이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가족의 존폐이다. 안방 전등의 조도로 부모의 부부생활을 측정해 온 올리버는 그들이 7개월째 부부관계를 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집에 엄마 질 테이트(샐리 호킨스)의 첫사랑인 그라함(패시 콘시딘)이 이사를 오기까지 한다. 올리버는 질과 그라함의 외도를 의심하며 가족의 존폐를 걱정한다.

 

ⓒ WARP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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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가 가진 걱정의 근거가 부모가 부부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점과 그라함과 모친의 의심스러운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리버의 부모 역시 평범하다고 하기 어려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올리버의 귀가가 늦으면 납치되어 죽었다고 생각하고, 올리버가 편집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아는 질 테이트를, 올리버는 신경과민이라고 표현한다. 동영상 강의와는 맞지 않는 어색함으로 통신 대학 강사에서 잘린 해양생물학자 부친 로이드 테이트(노아 테일러)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질과 로이드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 사소한 취향에서부터 다르며 조용한 성격의 로이드는 질의 삶에 활력 대신에 권태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리버는 엄마가 당장 집을 뛰쳐나간다고 하더라도 아빠는 옆에서 짐을 싸는 것을 도와줄 것이라고 표현한다.

질과 그라함의 만남이 잦아지는 것을 지켜보던 올리버는 이 불안을 조다나에게 털어놓고 의지하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조다나가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큰 불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다나의 엄마는 암에 걸려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올리버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은 조다나는 올리버에게 이전보다 더 의지하게 된다. 올리버를 가족식사에 초대하기도 하며 엄마가 중요한 수술을 하는 날 올리버에게 병원에 올 것을 요청한다. 올리버는 부담을 느끼지만 조다나와의 갈등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날 병원에 갈 것을 약속한다.

 

ⓒ WARP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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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리버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조다나의 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모른다. 겁이 난 올리버는 회피한다. 조다나에게 연락하는 대신 올리버는 질에게 로이드가 쓴 것처럼 꾸민 거짓편지를 써 그들의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역효과를 부르고 질은 오늘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쪽지를 남기고 그라함과 해변에 간다. 올리버는 결국 조다나와의 관계에서도 문제를 만들게 되고, 가족의 화목을 위해 노력한 일도 잘 풀리지 않게 된다. 올리버는 이것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올리버는 백과사전을 보다가 '초음파'에 꽂힌 적이 있다. "수중 물체를 탐지하는 기술로 쓰이는 고주파 소리인 초음파는 잠수함, 수중 폭뢰나 아틀란티스 등을 찾는 데에 쓰인다고 한다. 박쥐, 돌고래, 개와 같은 동물은 초음파를 들을 수 있지만 인간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내면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레이더를 피해 수중을 운행하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다"고 올리버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것은 상대방의 내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아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어려움을 느낀다. 올리버는 조다나가 기다리는 병원에 가지 않기로 결정하게 만든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몰라 혼란스럽다. 바다의 깊이가 몇 미터인지는 대답할 수 있지만, 넌 대체 왜 그 모양이냐는 조다나의 질문에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성장 영화의 소년 주인공인 올리버는 결국 조다나에게 자신의 진심을 표현할 수 있게 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내면을 알고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질은 결혼생활에서 느끼는 권태가 자신의 어떤 곳에서 오는지 몰라 로이드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로이드 역시 질을 사랑하고 신뢰하지만 질이 만족할 수 있도록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미 성장한 이들 역시 올리버와 마찬가지로 미성숙하다. 그런데 이들의 미성숙과 불완전함은 영상미, 음악과 함께 <서브마린>을 아름다운 영화로 만드는 큰 요소로 작용한다.

이따금씩 지나갔던 일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떠오르곤 한다. 그 기억들은 후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추억이 되어 현재의 나를 계속해서 살아나가게 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티빙
ⓒ 티빙

서브마린
Submarine

리처드 아이오와디

Richard Ayoade

 

출연

노아 테일러Noah Taylor
패디 콘시딘Paddy Considine
크레이그 로버츠Craig Roberts
야스민 페이지Yasmin Paige
샐리 호킨스Sally Hawkins

 

제작 WARP FILMS, Film4 Productions

제공 티빙(TVING)

제작연도 2010

상영시간 97분

등급 12세 관람가

공개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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