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스위트홈'에 관한, 혹은 그밖에 대한 이야기들
[NETFLIX] '스위트홈'에 관한, 혹은 그밖에 대한 이야기들
  • 배명현
  • 승인 2021.02.02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화적인 것 그리고 작품이 배치되는 매커니즘

온통 <스위트홈> 이야기이다. SNS는 물론, 영화·드라마와 전혀 관련 없는 유튜브 채널에서조차 스위트홈을 언급한다. 심지어 넷플릭스의 2020년 4분기 실적에 따르면, '스위트홈'이 공개 이후 첫 4주 동안 전 세계 2200만 유료 구독 가구가 시청했다. 필자는 솔직히 놀랐다. '대체 얼마나 훌륭한 드라마기에'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괴물이 주인공이다. 소년 만화가 떠오르는 설정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장르적 팬덤이 있는 좀비물이 아닌 크리쳐물이 이렇게 상업적 성공을 거두다니. 호기심과 함께 기대감이 증폭됐다. 

그 기대감을 가지고 <스위트홈>을 시청했다(웹툰이 원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화의 중후반부에서 괴물의 등장부터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장신의 괴물이 등장하고 엑스트라 한 명이 희생당한다. 사람들은 당황한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연급 인물인 '이은혁'(이도현)이 등장하고 소화기로 괴물을 무력화시킨다. 이때 배경음악은 Imagine Dragons의 'Warrior'다. 노래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왜 하필 LoL 월드 챕피언쉽(롤드컵)의 주제가인가. 모든 기호는 그 지시체 자체가 아닌 그 이면에 담긴 모든 것을 가져온다. 롤을 하지 않는 나조차 '페이커'(LoL 프로게이머 이상혁)가 떠오른다.

 

ⓒ 넷플릭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미리 말하지만 나는 <스위트홈>을 무작정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과 거리를 두며 완성도 혹은 기존에 설정된 기준에 맞게 완성된 영화·드라마만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이들과는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며, 이 인기의 근본 원인을 알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에 동의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 다가가기 전 나는 내가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들에 대해 솔직해지고 싶은 것일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두 가지 의제를 설정해보았다. 하나, 만화가 영상화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둘, 넷플릭스 오리지널아라는 '영토'가 가지는 힘은 어느 정도인가.

 

만화적인 것

먼저 전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모든 예술 장르는 고유한 특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특성이 잘 표현된 작품일수록 좋은 작품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영화화하기 쉬운 소설은 소설 고유의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오로지 '언어'적 감각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물론 영화라는 장르가 만들어 진지, 120년이 조금 넘었으므로 과거의 소설에까지 이 기준을 적용하기는 힘들 수 있다) 영화로 친다면, 도저히 언어로 표기될 수 없는 이미지의 움직임과 컷의 연결 그리고 몽타주들 말이다. 말 그대로 영화적인 것. <스위트홈>은 어떠한가. 스위트홈의 원작은 만화이다. 더 정확하게는 웹툰(webtoon)이다. 만화에서만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웹툰에서만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만화적 연출이 그것이다. 만화가 그 상태 그대로 영화가 되면, 유치해진다. 나는 지금 만화라는 장르를 폄훼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장르의 고유한 영역을 건드렸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영화 <간츠>(2011)를 생각해보자. 만화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모종의 감정들이 튀어나온다.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왜? 만화는 2D이지만 영화는 인간이 연기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구라'라는 은폐된 약속이 튀어 오른다. 그 순간 작품을 보지 못하게 된다. 부러 소격 효과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써 이런 일을 벌이는 영화도 있지만, 만화가 그대로 영화가 된다면 그건 이상한 것이 된다. 굳이 먼 길을 돌아 이야기를 꺼낸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스위트홈>에는 이 만화에서만 가능한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앙심 깊은 국어 교사 '정재헌'(김남희)이 사실은 알고 보니 검도의 고수였다는 설정이라거나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무기 제작자 '한두식'(김상호)이 그렇다. 물론 원작 설정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 실사화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예정된 일이었다. 설정을 더 자연스럽게 바꿀 필요 혹은 조금 더 설득력을 가져갔어야 했다. 만화에서 현실을 복각해내려 하는 것은 이질감이 없지만, 현실에서 만화를 복각해내려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질감을 동반하는 행위이다.

만화가 실사화되기 위해선 거쳐야 하는 필터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관람자에겐 영상은 실사지만 내용 자체는 만화 그대로인, 약간은 과잉된 영상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설정의 문제를 조금 다르게 비틀어 들어가 보자. 이 드라마는 '크리쳐물'이다. 물론 인간이 욕망에 의해 변형된 형태긴 하지만 기존의 좀비를 대입하기엔 외형적으로도 특징적으로도 정합하지 않는다. 특히 좀비는 개체의 차이가 거의 없다면 스위트홈에서 나오는 괴물은 그 형태와 특성이 제각각이다. 이 점이 장르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차이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 특징에 따라 끌고 갈 수 있는 스토리도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스위트홈>은 크리쳐라는 곳에 방점을 찍기보단 인간들에게 방접을 찍었다. 그러나 이건 좀비에서 보여주는 행태이지 크리처물에서 보여주는 인간군상이 아니다. 좀비물을 보는 이유는 느린 좀비에게 먹히는 것이 아닌 인간끼리의 다툼과 인간 본성의 야만성이라면 크리쳐물은 생존본능에 특징이 있다. 이 생존본능을 따라 소수의 인원끼리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것, 한 명씩 사라지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 바로 그것이 재미이다.

하지만 <스위트홈>은 인간 군상이 섞여 있다. 사실상 인간 군상을 다루는 것이 거의 전부에 가까울 정도이다. 장르의 장치를 빌려다 사용하는 적절한 활용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특징을 위해 희생되는 인물이 너무나 많다. 너무 많은 인물들이 그저 분위기 형성 혹은 캐릭터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드라마 안 인물들의 생존권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인물을 활용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칠드런 오브 맨>(2006)처럼 중요한 인물이 가볍게 죽음으로써 감독 혹은 작가의 '쿨함'을 살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인물이 생동감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성격을 살리고 캐릭터와 서사의 유기적 연결성을 이룬 뒤에 작품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하지만 <스위트홈>은 그렇지 않았다. 중심 서사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아니라면 (거의) 모두 죽였다. 시즌 2에서 나올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군대와의 접점 또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나는 그게 두렵다. 인물을 다루는 데 있어 너무 가벼운 건 아닐지 고민이 조금 더 필요한 건 아닐까.

 

ⓒ 넷플릭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 넷플릭스

작품이 배치되는 매커니즘

그럼 이제 후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넷플릭스의 첫 페이지로 들어가 보자. 가장 처음 보이는 것은 넷플릭스 시리즈를 홍보하는 영상이다. 그 아래로 '내가 찜한 콘텐츠'가 보이며 휠을 내리면 '시청 중인 콘텐츠'가 나온다. 계속해보자면 '한국의 탑 10위 콘텐츠', '지금 뜨는 콘텐츠', '최신 등록 콘텐츠' ,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지막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사이즈이다. 다른 콘텐츠에 비해 유난히 큰 사이즈를 자랑하는 이 칸은 인지적 차원의 문제이다. 사람의 주시(主視)가 향하는 방향에 있는 대상을 주로 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자연스레 눈이 향한다. 자주 눈이 간다면 우리는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선택한 콘텐츠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콘텐츠를 우리가 보는 것이다. 여기에 자본을 쏟아부은 홍보까지 겹쳐진다면?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신들이 투자해 만든 콘텐츠를 키우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엔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들이 만든 작품이 우리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다. 하지만 더 나중에, 넷플릭스 혹은 다른 플랫폼이라 하더라도, 빅데이터에 의해 '추천'을 해준 작품을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 미래는 조금 아쉬울 것 같다. 이건 다양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 기준이 생긴다면 그 기준에서 이탈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전에는 공중파 방송국이 그 역할을 했다면 현재는 그 권력을 문화 자본 시장에서 가장 큰 회사가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들이 홍보하고 추천한 <스위트홈>을 보며, 스펙터클을 느끼며 모종의 짜릿함을 느끼는 것이 단순히 영상을 소비하는 것 이외에도 이면의 위험이 숨어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이 지점은 <스위트홈> 작품 하나가 저지른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품을 볼 때 작품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닌, 작품이 놓인 맥락, 그러니까 그 작품이 다수에게 회자되는 방식이 과연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사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순위가 자본적, 미디어 권력적 방식이 개입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저 쉽게 만 작품의 순위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즌2를 우리가 선택한다기보다 넷플릭스가 지정해주는 대로 보게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넷플릭스

스위트홈

Sweet Home

연출

이응복

극복

홍소리

김형민

박소정

 

출연

송강

이진욱

이시영

이도현

김남희

고민시

박규영

고윤정

김갑수

김상호

 

제작 스튜디오 드래곤, 스튜디오N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497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0년 12월 18일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