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삶과 세계는 아름답다
'소울' 삶과 세계는 아름답다
  • 선민혁
  • 승인 2021.01.27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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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정말로 그럴까?"

<소울>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주제의식은 명확하다. 삶에서의 기쁨은 거창한 목표를 이룸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들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즐기며 살아가면 된다. 달콤한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이제부터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울>이 이러한 주제의식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울>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말 삶과 세계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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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은 우리의 삶을 둘러싼 사소한 아름다움들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 듯하면서도,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이 머무는 세계에서 오랫동안 탄생을 거부해온 캐릭터 22번 영혼은 인간세계가 긍정적이지 않은 곳이라고 주장하는데 <소울>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 가드너를 통해 보여지는 인간세계는 그다지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조는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가고 싶으나 생존을 위해 비정규직 교사로 일한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설 기회가 찾아오는데, 이 기회를 잡으려면 고용주에게 아주 잘 보여야만 한다. 잘 보인다는 것에는 연주 실력 이외의 것도 포함된다. 조를 고용해 함께 무대에 서기로 한 도르티아는 업무 외 시간에 근무장소가 아닌 곳에서 마주친 조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그를 고용한 지 몇 시간 만에 다시 해고해버린다. 조에게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는 기회 따위는 없으며 그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는 도르티아의 피고용인이자 자신의 옛 제자인 컬리의 조언에 따라 최대한 잘 차려입고 ,공연 시작보다 일찍 공연 장소에 도착해 다시 한번 자신을 어필한다. 컬리의 조력으로 인해 조는 자신의 '꿈의 직장'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덕분에 조 대신에 고용되었던 다른 연주자는 공연 시작 직전에 해고된 것이다.

조가 컬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도르티아에게 다시 '잘 보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조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자신에게 주어졌던 정규직 기회를 붙잡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조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해왔고 고용주로부터 정규직 제안을 받을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해 성실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은 <소울>의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이발사 데즈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고객인 조가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돈을 내고 자신의 시간을 산 조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그와 재즈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눴다. 조의 어머니인 리바 가드너가 운영하는 수선집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고용주인 리바 가드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노력하며 자신들의 업무를 성실히 해낸다. 이들은 비록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는 못하더라도, 세계를 움직이는 논리에는 잘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 세계에 문윈드와 같은 인물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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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문윈드는 온종일 길거리에 서서 자신의 키만 한 간판을 들고 있는 것도 모자라 묘기 수준으로 돌리기까지 하는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그의 고용주는 문윈드가 잠시 자신을 찾아온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문윈드는 아마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 조나 데즈와는 달리 세계를 움직이는 논리에 잘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문윈드는 어떻게 자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오프닝 단편 애니메이션 <토끼 굴>의 세계에서는 살 집이 없는 토끼를 다른 동물들이 모두 도와 함께 살아나갈 수 있게 해주지만, <소울>의 인간세계에 그런 동화 같은 방법은 없기 때문에 문윈드는 영혼의 세계로 도피해버린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 탄생을 거부하는 22번 영혼과 어울리던 문윈드의 영혼은 결국 자신의 함선과 함께 영혼 세계에서마저 침몰해버린다.

분명한 부조리가 존재하는 <소울>의 인간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인간세계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에 기여했던 인물들이 심지어, 새롭게 탄생하는 인간들에게까지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의 세계에는 그들의 자아 형성에 도움을 주는 '멘토'들이 존재하는데 이 멘토들은 인간세계에서 살다가 죽은 이들이다. 그런데 모든 죽은 이가 멘토가 되는 것이 아니다. 멘토는 생전에 권위를 가지고 있던 이들만의 역할이다. 인간세계의 질서가 유지되기를 바라며, 그것에 기여했던 이들의 교육을 받고 탄생하는 인간들이 세계를 어떻게 대할지는 뻔하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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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때로 교육이 통하지 않는 존재가 나타난다. 22번 영혼은 인간세계에서 명성을 떨쳤던 수많은 멘토들을 거쳤지만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아 인간세계에 적합한 자아가 되지 못했고 탄생이 미뤄지고 있었다. 22번은 인간세계의 체제에 순응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 체제 유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를 부정하는 학생 코니에게 공감하며 동조하는 의견을 펼치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그것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22번 영혼 또한 체제의 무엇인가를 바꿀 수는 없다. 세계는 훨씬 강하다. 그 시스템에 불만을 품고 다른 이들에게 그것에 대하여 떠드는 이의 건방진 입에는 피자와 사탕을 물리면 그만이다. 그 감칠맛과 달콤함을 맛본 입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는지 잊을 것이며 입의 주인은 그렇게 부정하던 세계가 아름다운 곳으로 보일 것이다. 

22번 영혼에는 결국 멘토 조 가드너의 교육이 통하게 되고 22번 영혼은 고분고분한 상태로 인간세계로 가게 된다. 인간세계에는 문윈드와 같은 인물이 계속 생길 것이고, 영혼세계에는 '길 잃은 영혼들'이 계속해서 방황하겠지만 어쨌든 영화는 끝났으니 극장을 나온 나는 그것들을 신경 쓰는 대신 피자와 사탕이 있는 아름다운 사소한 순간들을 즐길 것이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소울
Soul
감독
피트 닥터
Pete Docter

 

출연(목소리)
제이미 폭스Jamie Foxx
티나 페이Tina Fey
다비드 딕스Daveed Diggs
필리샤 라샤드Phylicia Rashad
아미어-칼리브 톰슨Ahmir-Khalib Thompson

 

제작 디즈니 , 픽사
수입|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7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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