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터졌다, 허망하게 사라지는 폭죽처럼
찬란하게 터졌다, 허망하게 사라지는 폭죽처럼
  • 코아르(CoAR) 편집부
  • 승인 2021.01.1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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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의 영화명장면]은 '코아르CoAR'의 필진들이 본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뽑은 명장면을 소개하는 연재입니다. 이 글에는 줄거리, 해석, 비평보다는 '왜 그 장면이 여전히 머릿속에서 선명한지' 필자 스스로 되물으며, 감독의 카메라를 언어로 기록합니다.

<퍼스트 러브 First Love> 미이케 다카시Takashi Miike|2019

ⓒ 와이드 릴리즈㈜

시한부 판정을 받고 방황하다가 어쩌다 보니 '퍼스트 러브'에 빠지고 있는 복서 레오(쿠보타 마사타카), 아버지에 의해 범죄조직에 팔려 감금된 채 생활하다가, 레오를 만나 뜻밖의 여행을 하게 된 모니카(코니시 사쿠라코),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몸담은 조직을 배신하고 도망치던 야쿠자 카세(소메타니 쇼타), 카세와 손잡고 마찬가지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경찰조직 몰래 불법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오토모(오모리 나오), 남자친구를 죽인 카세에게 피의 복수를 하려는 주리(베키), 맹자의 '인의'를 자신의 가치관으로 삼는 중국 조직 간부(후지오카 마미), 조직이 몰락해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야쿠자의 가치를 주장하는 보스 곤노(우치노 세이요) 등, 명확한 개성과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쌓다가 결국 한 장소에 모인다. 영업시간이 종료된 생활용품 아울렛에.

서로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를 전개해오던 인물들은 이곳에 모여 그동안 마구 뒤엉켰던 이야기들을 전부 풀어내려는 듯 유혈이 낭자한 한바탕의 활극을 펼친다. 아울렛을 포위한 수많은 경찰들로 이 소동이 정리되어 가는 듯할 때, 레오와 모니카, 곤노는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액션을 준비한다. 위층에 주차된 자동차를 전속력으로 몰아, 아울렛을 포위하고 있는 경찰병력을 넘어 탈출하려는 것이다. 돌진을 시작한 차가 허공을 가르려 하는 순간, 영화는 팝아트로 변하고 이들이 탄 자동차가 멋지게 탈출에 성공하는 것을 보여준 뒤, 능청스럽게 다시 실사로 돌아온다. 이 과감한 시도는 갑작스러우면서도 영화의 고유한 감성과 일치하였고, 관객석의 나는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애비규환 More than Family> 최하나|2020

ⓒ 리틀빅픽처스
ⓒ 리틀빅픽처스

인상 깊은 장면을 롱테이크(long-take)로 선정하는 것은 일정의 사기에 가깝다. 가장 손쉬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 영화과 교수들이 롱테이크만 등장하면 찬양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롱테이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애비규환>에서 가장 훌륭한 장면이 롱테이크이기 때문이다. 이 롱테이크 하나로 영화의 전체 주제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요약이 잘된 롱테이크이다. 카메라가 트렉 위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동안 주목해야 할 것은 인물들의 움직임이다.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인물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한다. 그리고 이를 다하는 순간 프레임 밖으로 밀려 나간다. 싸움에서 다른 싸움으로 넘어가는 장면(실제로는 3~4가지 싸움이 겹쳐져 있다)의 자연스러움은 배우와 감독의 합은 물론 호흡까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야 한다. 남편의 친구들과 붙은 싸움에서 한국 남성들의 문제적 의식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면 부모와의 싸움에선 혈육의 갈등 그리고 부모끼리의 싸움을 통해 진짜 아빠와 책임감 없는 아빠를 두드러지게 만든다. 다 제쳐두고서라도 일단 영화적 재미가 존재하는 순간이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어느 날 Oneday> 이윤기|2016

ⓒ CGV아트하우스
ⓒ CGV아트하우스

'강수'(김남길)는 파도가 치는 바다 앞에서 홀로 울고 있다. 그는 죽은 아내 '선화'(임화영)의 영혼과 마주한다. 투병 중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선화는 묻는다. “이제 나를 기억할 수 있지?” 강수는 선화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선화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 한마디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내는 강수. 어느덧 선화는 사라지고, 강수 혼자 남겨졌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른다. 빛의 산란으로 푸른 바다에 조금씩 변화가 일렁인다. 강수의 새벽은 고요함이 잠시도 머무를 수 없을 만큼 처연하고 슬프다. 그리고 그는 다시 '죽음'으로 향한다.

'미소'(천우희)는 영혼의 형태로 강수와 마주한다. 식물인간 상태인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엄마를 힘들게 한다는 것에 슬퍼하고 있다. 이 슬픔은 영혼으로 존재하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 자신의 처지를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아픔이다. 자신을 버린 엄마이고, 엄마를 찾아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지만,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죄책감에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일이 더 힘들다. “전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깐, 남은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어요” 영혼의 상태인 미소는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소멸하기를 택한다. 그녀는 강수에게 자신이 떠날 수 있도록 부탁한다. 그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강수 뿐이기에. 야속하게도 병원 옥상에서 두 사람이 마주한 노을빛은 마치 미소의 생(生)이, 또 그 하루가 타들어 가듯 적막하다.

<어느날>은 죽음과 소외를 인물들을 통해 천천히 풀어나간다.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강수가 미소의 죽음을 도와주는 이 장면은 90여 분을 달려온 영화가 진심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감정적인 호소로 치부되지 않는다. 천천히 쌓아 올린 인물들의 이야기는 영화가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수단으로 환원된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삶과 죽음 사이를 맴돌며 '아픔에 대하여' 쓸쓸히 고백한다. 어쩌면 라 로슈푸코의 "태양과 죽음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을까. 적어도 이 장면에선 그 말은 허용되지 않는 듯하다.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코아르(CoAR)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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